책은 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다.
내가 외롭고 힘들 때 유일하게 내편이 되어줬다. '그래서 그런가? '무슨 책이 든 책을 마주하면 애틋하다.
14년 전, 제2의 인생이 시작되던 그때가 사뭇 떠오른다.
주말부부라 신랑도 없는 집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왔을 때부터 아이와 함께 독박 육아로 지칠 대로 지쳐있을 때도 '너는 최고야, 너는 할 수 있어'라고 꾸준히 치켜세워준 책이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
결혼 후 나의 삶은 책으로 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마가 처음이라 낯설 때도 많았지만 줄곧 옆에서 등대가 되어줬다.
아이만 바라보고 살 때는 유일한 벗이자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도 했다.
시내까지 나가려면 버스도 몇 시간에 한 대씩 있는 시골인 데다 직접 운전해 아이를 태우고 시내를 나간대도 갈 곳도, 특별히 만날 친구도 없었으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로 나를 지켜내야 했다.
"무슨 취미가 좋을까?"
"아이 키우면서 취미는 무슨... 부족 한잠이나 더 주무시게"
친구들의 만류에도 나는 그때부터 독서와 바느질, 그리고 간간히 다른 취미들로 나의 허한 마음의 빈 구멍을 메꾸기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유튜브나 넷플릭스같이 다양한 사이트도 없었다. 직접 마주해야 하는 취미만이 나를 숨통 트이게 했다. 라디오를 들으며 다른 인생들에게 기웃거려보기도 했고 아이와 함께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가 낮잠이라도 들면 나는 어김없이 책과 함께했다.
아이가 온다는 건 또 다른 우주가 온다고 했다든가! 그때는 이 말이 실감 나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낄 여가도 없었다. 이 작은 생명을 어떻게 지켜나가느냐에 초집중되어있었다. 어느 엄마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나는 뒷전이고 우선시 되는 건 아이였다. 나 또한 그랬다.
대변 횟수와 기저귀까지도 하나하나 체크했고 완모(순전히 모유로만 수유)를 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군분투했다.
나는 그 전쟁 통속에서도 약 3년 차이 나는 두 아이에게 처음으로 줄 수 있는 엄마의 선물인 모유를 2년 이상씩 선물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완모에 성공했고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줄 수 없는 선물을 줬다는 사실만으로 엄마 부심을 지킬 수 있었다.
아이가 자랄수록 패턴이 생겼다. 낮잠도 짧아지는 시기가 오니 집안일을 하다 보면 내 시간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밥때는 어김없이 다가왔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오로지 그 시간만 기다려졌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
육퇴라 부르고 자유라고 쓰는 그 시간을 말이다.
20대 후반, 그나마 젊어서 그랬던 것일까?
자유시간에 눈을 뜨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꿈만 같았다. 행복으로 젖어들던 그 시간의 달콤함은 아직도 쉬이 잊히질 않는다.
잃어본 자가 소중함을 알 수 있다 했다. 자유로웠던 일상에 아이 하나 들어온 게 다인데 나의 전부가 변하게 되니 새삼 임신 전이 그립기까지 했다.
그렇게 육퇴를 맞이하면 그 참맛을 책과 함께 즐겼다.
그때는 육아서가 전부였지만 그렇게 읽고 나면 아주 조금은 좋은 엄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길을 코치 받은 것 같아 행복했고 뿌듯했다. 그 기쁨이 계속 계속 쌓이다 보니 좀 더 나은 인생을 원하게 되어 자서전이나 경제서적에도 점차 눈이 갔다.
그렇게 15년째 책과 멀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지금은 글쓰기에도 도전하는 엄마가 되었다.
스웨덴 격언 중에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었다. 길을 잃을 것만 같으면 책부터 펼쳤다. 그렇게 나를 잡아서 이끌어 왔다.
고시와 고문을 엮은 '고문진보'라는 책에도 비슷한 글이 있다.
서중자유천종록(書中自有千鍾祿)
서중자유황금옥(書中自有黃金屋)
'책 속에 천 섬의 녹봉이 있다. 책 속에 황금으로 된 집이 있다.'라는 뜻이다.
송나라 왕벽지란 사람이 잡다한 일화들을 모아 엮은 <승수연담록>에도 태종의 이야기가 나온다.
태종이 침신을 잊고 독서에 열중하자 신하들이 건강이 염려돼 휴식을 취하며 읽으라 했으나 왕이 답하길,
책은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오. 나는 수고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開卷有益 朕不以爲勞也/ 개권유익 짐불이위로야)
라고 했다. 그렇다. 책은 백익 무해하다. 버릴게 없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외로움에 바둥거릴 때, 힘겨움에 지쳐 쓰러지려 할 때 책은 위로가 되었고 응원이 되었다. 다른 그 누군가에도 이 세상 살아갈 힘이 되어주고 응원가가 되어주고, 더 나아가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길, 그래서 책과 평생 친구가 되는 길을 선택하길 간절히 바라본다. 내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