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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수 할배 Aug 03. 2024

부산교육대학에 합격했다

(27화) 하나님이 보우하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성경 잠언


대학 예비고사를 보기로 마음을 다잡고, 9월에 학원에 등록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교회는 계속 다녔는데, 나는 청년부 회장이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청년부 모임을 가졌고 회장으로서 그 모임을 주관하였다. 학원 야간반에는 청년부 자매 두 명(S. K)도 함께 공부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입시공부에 집중하려면, 청년회 회장을 하지 않아야 된다고 강조하였다. 교회의 감독님께 말씀드리면 해임된다고 조언하였다. 


그들의 조언대로 감독님께 그러한 내용의 편지를 썼다. 편지를 감독님께 드리기 전에 교회 행정을 맡은 청년부의 K형제에게 보여 주면서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는 편지를 읽어 보더니, 감독님께 드리지 말고 만나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언하였다. 그의 제언대로 감독님을 만나 나의 상황을 자세하게 말씀드렸다. 그 분은 예비고사 시험을 치를 때까지는 청년회 모임에 매주 참석하지 말고 격주로 참석하라고 권하셨다. 배려해 주는 정이 느껴저셔 그대로 하였다. 


8월 한달을 쉬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9월과 10월은 직장을 그만 두고 공부에 매진하기로 하였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받은 월급이 생활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래서 두 달 동안 직장을 그만 둔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말리지는 않았지만 근심하는 눈치였다.  


어머니가 이모님에게 말씀드렸는지, 이모네 집에 들렀을 때, 친척들이 염려하는 마음을 보였다. 나의 현재와 미래를 염려하는 외사촌 누나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내가 2개월 동안 직장을 다니면 우리 집이 부자가 되겠습니까?” 

그들은 아닐 거라고 답하였다. 추가로 물었다. 

“내가 2개월 동안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 우리 집이 더 가난해 지겠습니까?” 그것도 아닐 거라고 답하였다. 

“그러면 2개월만 시간을 주세요. 2개월 뒤에는 직장에 다니겠습니다”라고 부탁하였다. 누나들도 알았다고 하였다. 


직장에 다니지 않아 공부 방식이 변하였다. 낮에는 인근 공공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학원에 갔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은 4시간 정도였다. 그렇게 2개월을 보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몇 가지 노력을 하였다. 

첫째, 밥은 국이나 물에 말아서 먹었다. 

둘째, 어두운 화장실에서도 공부했다. 

셋째, 길을 걸을 때 밝은 태양 아래에서도 책을 보며 걸었다. 

넷째,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책을 보았다. 

다섯째,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밤 12시까지 공부하고, 일요일은 쉬었다. 


1979년 10월에는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된 사건이 일어났다. 부마사태라고 당시 부산과 마산에서 정부의 유신 정책에 반대하는 데모가 크게 일어났다. 학원이 위치한 서면은 부산의 중심지라서,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상황이 주말마다 계속되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하여 최루탄을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데모 시간에 거리를 지나가면 최루가스 때문에 눈이 따갑고 눈물이 많이 나와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10월 26일에 대통령이 서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밤 9시가 넘었을 때 학원에서 갑자기 수업을 중단하고 학생들을 집으로 보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른채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큰길로 나와 보니 거리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대신 군인들이 총을 들고 10m 간격으로 서 있었다. 그래서 그 밤에 학원이 있던 서면에서 초량동 집까지 걸어갔다. 1시간 반이 넘는 거리였다. 


이런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예정대로 11월에 예비고사를 쳤다. 점수는 246점이었다. 이 점수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점수표를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75년의 예비고사 커트라인은 176점이었으므로 내 점수가 낙방 최고점인 175점이었다고 가정하더라고 4년 뒤에 치른 시험에서 내 점수는 최소한 71점 상승한 것이다. 


마음먹은대로 부산교육대학에 지원하였다. 실은 부산교대 한 군데만 원서를 접수했다. 그 곳만이 목표였고 심사숙고하고 기도한 결과 합격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정말 합격하였다. 꿈에 그리던 부산교육대학에! 


In their hearts humans plan their course,  but the Lord establishes their steps.

Proverbs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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