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윷

by 교수 할배


윷놀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백제 시대에 생겼다느니, 그 이전 부여 시대 윷놀이 유적이 발견되었다느니 하는 여러 가지 설이 떠돈다. 우리 집안에 예로부터 이어져 온 윷놀이 비화도 그중 하나다.

이야기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6부 중 설 씨 마을에 살던 한 아버지는 슬하에 아들 둘 딸 둘을 두었는데, 결혼한 후 자녀들이 서로 친하지 않게 보여서 고민이었다. 자식들은 명절날 아버지 집에 와도 떡이나 과일만 조금 먹을 뿐 식사도 하지 않고, 다른 동기가 오기 전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딸은 어릴 때 서운한 게 있었는데 아직 풀리지 않은 듯하고, 아들 둘은 며느리들 사이가 서먹하댄다.


하루는 집안 어른인 설총 댁을 방문하여, 하소연하면서 조언을 구하였다. 애로사항을 귀담아들은 설총은 친척에게, 고생이 많으시다고 위로하였다. 그리고는 요즈음 임금님의 부탁으로 화왕계를 쓰느라 바쁘지만, 사정이 급한 것 같아서, 좋은 방안을 생각해 둘 테니 이레 뒤에 다시 오라고 말하였다. 그날은 부인, 자녀와 배우자들을 모두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설총은 어깨가 축 처져 떠나는 가장에게, 주막에 들러 맛있는 거라도 먹으라면서 엽전 몇 닢을 쥐어 주었다.


칠일은 길고도 짧았다. 자식 걱정하는 아버지는 일주일 내내 정화수를 떠 놓고 설총이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빌었다. 설총도 시간을 벌 요량으로 7일 후라고 말했지만 뾰족한 수가 얼른 떠오르지 않아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설총은 우선 동서양의 형제 화목에 관한 자료를 조사했다. 동양에서는 중국, 몽골, 한국에서 ‘나뭇가지 이야기’가, 서양에서는 노에 출신 작가 이솝이 ‘묶은 막대 이야기’를 지었다. 이 두 이야기는 내용이 매우 비슷한데, 나뭇가지 하나는 꺾기 쉽지만 여러 개를 묶으면 꺾기 어렵다는 의미다. 동서양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설총은 친척 자녀 수만큼의 막대를 활용하여 뭔가를 만들고 싶었다.

설총은 친분 있는 학자들은 물론 집안일을 돕던 평민들과 막대기 네 개로 할 수 있는 놀이를 궁리하느라 난상토의를 벌였다. 설총은 유교 경전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이두를 체계화하여 오랫동안 가르쳤기 때문에 서민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이레째 되는 날이 밝았다. 동네에서 가장 큰 기와집의 대청마루에 설총이 앉았고, 섬돌 옆쪽에는 하소연했던 친척 부부가 서 있었다.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구경 왔는데, 마당의 낯선 모습을 궁금해하면서 삼삼오오 모여 소곤거렸다.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멍석이 깔리고, 양쪽에는 젊은 부부가 두 쌍씩 앉아 있었다. 멍석 중앙의 큰 동그라미와 그 안에는 열 십자 위로 여러 점이 찍혀 있었다.


설총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한자가 쓰인 젓가락 길이 막대기 네 개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윷가락, 윷판, 말 등의 놀이 도구와, 도개걸윷모, 말 이동 거리, 한 번 더 던지기 등의 규칙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이 놀이는 처음 만들었으므로 놀이 중간에 설명하지 않은 상황이 생기면 서로 의논하여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날은 네 부부를 두 조로 나누어 경기하며 이기는 조에게는 40냥, 지는 조에게는 20냥의 상금을 주기로 하였다.

누구인가가 징을 울려서 시합 시작을 알렸다. 자녀들 부부는 윷놀이가 생소한 데다 관객도 있어서 그런지 매우 어색하게 시작하였으나, 던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흥이 무르익었다. 잡고 잡히고, 도망가고, 연거푸 나오는 윷이나 모에 손뼉 치고, 갈길 바쁜데 뒷도에 발목 잡히고 한숨짓는 등등. 구경꾼들은 평소에는 말을 걸기도 어려운 학자의 집이라 분위기가 무거울 거라 생각했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생전 처음 보는 놀이를 신기해하였다. 이 시합에서는 두 조 모두 말 세 개씩 날 정도로 진행되어 참여자와 구경꾼이 모두 즐거워하였다.

윷놀이 한 판을 마치자 설총이 양편에게 지정한 상금을 준 다음, 네 쌍의 부부에게 일렀다.

“윷가락 네 개는 너희 형제 수를 나타낸다. 세상살이를 윷과 같은 놀이라고 생각하고 오누이들이 힘을 합하여 즐겁게 살기 바란다. 윷가락은 단단한 박달나무로 만들었는데, 후손들이 강하고 당당한 정신을 가지고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윷가락은 윷짝이라고도 부른다. 부부가 서로를 짝이라고 하듯이 결혼 전에는 각자 속마음이 달랐더라도 이제는 한 몸이니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란다. 사위와 며느리가 우리 가문으로 시집 장가온 걸 환영한다. 우리 집안은 다른 가문에 비하여 사람 수는 많지 않지만, 나의 어머니가 요석공주니 자네들도 왕족의 후손 가족임을 명예롭게 생각하며 지내기를 바란다.

형제들이 단결하면 쇠도 자른다는 말처럼, 네 부부가 단합하면, 가정이 화목하여 너희가 하려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윷놀이를 만든 정성이 열매 맺게 될 것이니 나에게도 큰 보람이다. 여러분이 가지고 놀았던 윷과, 윷판이 그려진 멍석은 부모님께 선물로 줄 테니, 명절마다 모여 윷판을 벌이기 바란다. 특히 설날은 우리 성(설, 薛)씨 집안이 모이는 날을 전 백성이 축하한다고 생각하며 놀면 재미있겠지. 부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훌륭한 가문을 이어 가기를 당부한다.”

설총이 말씀을 마치자, 부모와 자녀 부부는 모두 큰절을 올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날 이후 신라의 여러 고을에서는 가족들이 설날에 모여 윷놀이를 하였다고 들었다. 이후 네 오누이 부모 집은 명절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단다. 자녀 부부가 손주들과 함께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도착했고, 차례를 지낸 후 윷놀이를 하였다. 놀이를 마치면 아버지가 부부 별로 성적 구분하지 않고 복돈을 넉넉히 주었다.

자녀들이 귀가하려고 일어섰을 때, 평소 궁금증이 많던 막내며느리가 아버님에게 윷짝의 뒷면에 새겨진 한자 다섯은 무슨 뜻인지 여쭈었다.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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