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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ldenuit Nov 03. 2022

제복효과(Yankees Effect)

유니폼 안과 밖, 그리고 그 너머를 바라보다.

“You know why Yankees always win, frank?

It’s ‘cause the other teams can’t stop staring at those damn pinstripes”   



저의 최애영화 'Catch me if you can'에서 흘러나오는 대사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관객은 뉴욕 양키스가 유능한 선수 때문에 이긴다는 착각을 하곤 하죠. 양키스의 스트라이프 유니폼이 상대 팀에게 무적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프랭크는 어느날 호텔앞에서 여러명의 팬암 승무원이 제복을 입은  택시에서 들뜬 표정으로 내리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의외로 실제 능력이 아니라 상대에게 '어떤 이미지를 심어주느냐' 중요하게 여기는 편견에 대해 단번에 캐치합니다. 그는 어느날 사칭 에어라인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하고는 실제로 조종사 제복을 입고 모든 항공사 비행기에 무임승차까지 하는 뻔뻔함을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 대학에서 스스로 여승무원을 선발하고는  핸래리를 비롯한 FBI 득실대는 공항을 보란듯이 빠져나오는 여유까지 선보입니다. 특히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BGM 압권입니다. 너무나도  들어맞는 "Come fly with me - Frank Sinatra".  주인공이었던 '프랭크' 같은 이름의 재즈가수의 노래.




이처럼 실로 제복의 효과는 막강합니다. 제복을 입었을  구성원간의 동질감, 팀웍을 형성하고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니까요. 이는 머릿속으로 하얀 가운을 입고 음식을 만들고 있는 사람과 일상복을 입고 요리하는 사람의 요리  어떤 것이 먹고 싶은지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있습니다.


군인, 경찰관, 소방관, 판사, 의사 등을 비롯해 조종사들이 제복을 입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큰 것 같습니다. 일반인들은 공항에서 모자를 눌러쓴 조종사를 바라볼때, 무언가 비행에 프로페셔널적이고 열정적인 이미지를 투영합니다. 칼각으로 다린 제복을 단정하게 입은 군인이 모자를 쓰고 경례할 때, 더 강인한 이미지가 투영되듯이 말입니다. 이것을 저는 나름 ‘양키즈 이펙트'라는 용어로 스스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신입조종사 시절, 회사로부터 지급받은 제복과 모자는 무지 불편하고 답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많은 항공사들이 모자를 더 이상 쓰지 않지만, 제가 다니는 회사는 아직 공항을 이동할때 제복은 물론 모자착용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군출인이 아닌 저의 비행경험으로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답답함의 한 일종이었습니다. 목을 졸라맨 넥타이는 한여름밤 악몽꿀때 느껴지는 쵸크로만 느껴지고, 북한군같은 덩치큰 모자는 들고다니기에도 민망해했습니다. 거울에 비친 제복 속 제 모습이 무척이나 부자연스럽고 민망해서 대중교통을 탈 적에는 늘 바람막이 점퍼로 가리기 바빴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항공사밥을 지긋이 먹어가는 지금에야 유니폼과 모자가 몸에 달라붙고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지금 시점에는 왜 유니폼과 모자를 항공사가 고집하는지 '양키즈 이펙트'를 통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운항을 하다보면 헝클러진 머리는 기본이고 벙커냄새, 기름냄새, 땀냄새가 범벅이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뭔가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아는 사람만 아는 소위 ‘비행기 냄새'가 있습니다. 장거리 비행 후 랜딩을 하고 공항에 들어서면 어느새 그 '비행기 냄새'에 쩔어 있는 제복바지와 셔츠는 심하게 구겨져있는게 다반사이고, 금방이라도 침대에 쓰러질 듯한 극심한 피로가 엄습하곤 했습니다. 남들이 상상하기에는 극 중 프랭크처럼 뭔가 로맨틱한 퇴근 장면을 자아낼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정말이지 그런 환상과는 사뭇 거리가 먼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바라보는 승객들, 공항관계자들, 세관직원들, 대합실의 가족들이 바라보는 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면 다시한번 제복 매무새를 살펴보게되고 정모를 꾹 눌러 착용하게 됩니다. 항공사의 이미지 역시 그 항공사의 승무원으로부터 받는 인상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양키즈 이펙트’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행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복밖의 모습에 대해서도 더 세심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밖, 그리고 공항 밖에서 제복을 벗고 만나는 저와 같은 조종사 아니, 아저씨들은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습니다. 가끔은 호텔 로비에서 약속시간에 만나기로 한 기장님을 못알아보고서 지나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제복과 모자를 내려놓고 청바지에 후질근 한 티셔츠와 모자를 쓰고나면 서로가 서로를 분간하지 못하고 그저 배나온 동양인으로 서로를 오해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항공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아는 사실이지만, 비행기 안에서와 밖에서는 전혀 다른 외모와 이중적 인격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내에서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도 사석에서는 너무나도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분을 많이 만나 봤습니다. 기내 밖에서 양키즈 유니폼을 벗고 나면, 더 인간적인 끈끈함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곤 합니다. 맥주 한잔하며 인생의 선배이자 비행동료로써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인격적인 친분을 다지곤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제복밖의 다정다감한 서로의 모습들도 하나둘씩 더 존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면 사랑이 시작된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험난한 14 15일의  남미 비행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돌아온 어느 날이었습니다. '기장님, 수고하셨습니다'하고 헤어지는 인사를 마치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동료 기장님들의 뒷모습을 무심코  적이 있습니다.   저는  동료와 선배들의  모습으로부터  동안 몰랐던 애틋한 감정이 샘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복 어깨 너머에 있는  톨의 흰머리는 그날 하루의 밤샘의 노고처럼 느껴졌습니다. 모자 사이를 뚫고 보이는 검게 그을린 주름은 험난한 비행여정을 마주하고 남은 훈장같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들의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게 부비트랩처럼 숨겨져 도사리고 있는 조그만 사고라도 생길까하는 염려와 근심도 감춰져 있다는  느꼈던 날이었습니다. 깊게 눌러쓴 모자와 제복 너머로 그렇게 뒷모습에 담긴 애틋함과 아련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그런 퇴근길이었습니다.





늦은 저녁 또 다시 화물기 비행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두꺼비 배를 한 레이오버 가방을 끙끙대며 이끌고 집을 나섭니다. 전장에 나가는 군인이 군화를 다시 힘주어 동여매듯, 각잡힌 제복을 질끈 차려입고 회사로고가 깊게 박힌 검은모자를 눌러써도 봅니다. 그리고서 다시한번 양키즈를 떠올리며 공항길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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