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가까이에 산다.
고향이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어서 내 삶에서 바다는 자연스럽다.
어릴 적 방학 때가 되면 해수욕장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놀고 배 고프면 찐 옥수수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바닷가에 가면 나는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싫지 않다.
모두들 다 바다에 대한 나와 같은 추억을 담고 사는 줄 알았다.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고 나서야 어쩌다 한 번 바다에 가는 친구들이 있음을 알았다. 내 가까운 친구는 인터넷상에 닉네임을 해인(海人)이라고 쓰는 이도 있었다. 내륙지방에 사는 친구인데 유난히 바다, 바다 노래를 부르고 바다를 보면 활짝 웃곤 했다. 고향을 물어봐서 대답을 하면 바다가 있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게 왜 좋은 건지 잘 몰랐다.
바다에 오래 서서 이른바 물멍을 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바다는 지나가는 경유지였다. 식사를 하기 위해 가다 보니 바다를 지나치게 되고, 일정이 있어 가 보니 그 앞에 바다가 있는 식이었다. 잠깐 바라볼 뿐, 그뿐이었다. 매일 보고 또 봐도 바다가 좋았던 것은 내가 한창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 때였다.
직장에서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견디고 버텨내야 할 때가 있었다. 가끔은 내가 사는 세상이 좁은 우물 안인 듯 답답할 때는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일부러 갔다. 그곳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돌리고 가만히 혼자 바라보기만 했다. 철썩거리는 파도를 보고 있기도 하고, 햇살에 눈부시도록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미소 짓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쌓여갈수록 어려운 일이 있고 답답할 때마다 바다 앞에 섰다. 잠시라도 그렇게 바다를 보고 나면 내 속이 파도에 씻겨 나간 듯 시원하고 풀리는 느낌이었다. 직장이 축복을 받은 곳이었는지 점심시간에 조금만 걸으면 나만의 장소에서 바다를 실컷 볼 수 있었다. 매일 바다를 한 번씩 보는 것이 나의 루틴이 되어 갔다. 바다 앞으로 나아갈 때는 답답한 마음이다가도 바다를 보고 나서 뒤돌아서 오는 길은 시원하고 상쾌해졌다. 그 맛에 직장에서 버틸 힘을 얻기도 했다.
어느새 내 고향은 바다뷰를 두고 레스토랑이며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선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주말과 연휴면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 여행객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으로 바닷가 앞은 북적거렸다. 너무 차가 막히지만 않으면, 그럴 때 차 타고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았다. 여행 온 사람들의 활기, 생소한 풍경들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바다의 풍경을 유화 그림으로 남기는 기회가 있었다. 바다 그림 그리기로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곳에 가서 주인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바다를 그렸다. 그림에 소질이 없던 나도 다양한 유화 물감으로 아침에 힘차게 떠오르는 해의 주황빛, 노랑빛 하늘을 표현했다. 코치하는 대로 색을 칠하다 보니 그럴싸한 하늘이 되어서 신기했다. 바다는 유화 나이프라는 도구로 물감을 묻혀 거센 파도를 표현하였는데 덕분에 역동적인 바다가 표현되었다. 햇살이 바다에 비추이는 윤슬도 넣고 하늘을 나는 갈매기도 넣으니 그야말로 명작이 되었다. 주관적인 느낌이겠지만 내가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그림이 되었다. 지금도 그 그림은 거실의 디지털 피아노 위에 놓여 있어 집안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인다. 볼 때마다 참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그림이다.
나는 본디 벽에 무언가 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혼 초에 있었던 결혼 액자도 떼어 원본만 따로 보관하고 있다. 거는 대신 피아노에 살짝 기대어 놓았는데, 이 그림은 신기하게도 치우고 싶지 않다. 내 손때와 정성이 들어갔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생애 처음이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리 자주 바다를 가지는 않는다. 주말, 아니면 한가할 때 드라이브 한 번 갈까 하고 가는 곳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언제 보아도 좋은 그곳이 바로 바다이다.
지금쯤 내 고향 바닷가는 이른 주말을 즐기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겠지. 바다를 보며 힐링하고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나와 그들은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