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그림책을 본다. 조금 전까지 커다란 가방을 달랑달랑 메고 교실에 들어온 아이들이 가볍게 인사를 끝낸 터였다. 자기 자리에 가서 가방과 옷을 정리하고는 의자에 앉으면 자동이다. 아침시간은 책을 읽으며 시작한다.
금요일이면 나는 아이들에게 먹일 푸짐한 양식을 준비한다. 다름 아닌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을 한 아름 가져오는 일이다. 이제 한 달여간 반복한 일이다 보니 사서 선생님도 내가 가면 으레 그러려니 한다. 책장 사이를 오가며 '무슨 책이 좋을까? 어떤 책을 봐야 아이들이 쏙 빠져 읽으려나? 글밥은 많지 않으면서도 재밌는 책으로 뭐가 좋을까?' 이런 고민 끝에 한 권 한 권 책을 뽑아 든다. 아이들 숫자만큼 그림책이 쌓이면 대출을 하고 교실로 가뿐한 걸음으로 돌아온다. 책을 아이들 책상에 하나씩 하나씩 놓아주면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준비한 양 뿌듯해진다.
지난주에는 아이들과 도서관 둘러보기, 책을 대출하는 방법 알아보기를 하러 도서관에 함께 갔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사서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며 한 권씩 읽고 싶은 그림책을 빌려보기도 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난 아이들이 내게 오더니 제일 먼저 하는 말 "선생님, 아까 빌려온 책 봐도 돼요?"이다. 나는 "그럼, 자기 책 봐도 돼."하고 얼른 대답해 줬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책 좀 읽어라, 읽어라가 아니라 책을 읽고 싶다는데 선심 쓰듯 그래 봐라 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쫓아와서 그렇게 물으니 같이 서 있던 옆 반 아이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쳐다본다.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여주는 시간이다. 오늘 준비한 간식은 "도서관의 비밀"이라는 그림책이다. 내가 처음 읽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번 더 읽었던 바로 그 책이다. 책 표지의 제목에 종이를 대서 가리고 제목 알아맞히기부터 했다. 표지의 그림을 보고 ***의 비밀을 말해보자고 했다. 여자 아이의 비밀, 책의 비밀... 정답에 너무 가까워서 놀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 초록색을 띤 괴물(?)의 숨고 쫓는 추격전이 벌어지자 무섭다고 반응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용하고 적막한 도서관에 발자국 소리가 나서 가면 아무도 없고, 사람은 없는데 책을 만진 흔적만 있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중간쯤 대목에서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그물에 잡히면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엉, 뭐지?" 하는 말을 내뱉는다. 이 책에는 미처 생각 못한 반전이 있다. 궁금한 분은 읽어보시라~ 여하튼 내내 궁금하던 의문점이 해결되고 글이 마무리되니 다시 제목이 무엇일까를 물어본다. 한 목소리로 도서관의 비밀을 합창한다. 정답이라고 말하며 가렸던 종이를 떼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늘은 도서관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같이 도서관을 갈 거라고 얘기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잔뜩 부풀려 놓았다.
그림책의 비밀, 통지아 지음똑같은 책을 고학년 아이들에게 읽어 준 적이 있다. 아이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지만 조용히 듣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역시나 일 학년은 다르다. 선생님이 물어보면 자기가 대답하고 싶어 안달이다. 퀴즈라도 낼라치면 꼭 맞추고 싶어 애쓰는 것이 얼굴에 다 보인다. 책 내용을 따라 몰입하는 것이 온몸으로 보이는 아이도 있다. 자기 생각을 여과 없이 말하고 따라오는 아이들 덕분에 그림책 읽어주기는 쌍방향 소통이 된다. 나의 독백이 아니라 살아있는 글자가 되고 진짜 생생한 이야기가 되도록 수다 떠는 녀석들이 고맙다. 그래서 완전히 흐름을 막아버리고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수다 떠는 대로 그냥 놔둔다. 계속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들 덕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다른 아이들이 볼 수 있기도 하다.
내 예상대로 쉬는 시간 몇몇 아이들이 내게로 온다. 내 뒤의 책꽂이를 가리키며 저 책을 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 이 책 봐하면서 건네주면 또 다른 아이가 관심을 갖고 줄줄이 온다. 선생님이 읽어준 것을 제 눈으로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책 읽어주는 시간은 10~15분 정도 된다. 그런데 하루 중 한 번이라도 그렇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나면 아이들과 나 사이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꼭 나와 아이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 생긴 느낌이랄까. 그것이 좋아 오늘도 내일은 무슨 책을 읽어줄까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