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동화 만들기
"엄마, 내일 책상 올 거야."
"언제 신청했어?."
딸은 그렇게 어느 날 통보해 준다.
딸은 어린 시절 탄천을 뛰어다니며 활보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산적의 딸 로냐' 처럼
숲과 강을 쫓아다녔다. 딸은 비밀기지를 만들어 놓고
정기적으로 갔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과 '벼랑 위의 포뇨'를 보며
그 꿈을 따라갔다.
20살이 되어 미대생이 되면서 린드그렌과 미야자키 하야오를 품으며 그림동화를 쓰고 그렸다. 그 꿈을 찾아다녔다. 나는 그 옆에서 지켜보며 지냈다.
졸업 때가 되어 회화 작품으로 그 바다의 근원 고래를 그렸다. 그래서 졸업작품 즈음에 제주도로 여행 가서 돌고래를 보고 오기도 했었다.
그 꿈에 대항하는 현실을 늘 팍팍했다. 그 꿈의 언저리에서 맴돌다 대기업이 가고 싶고 정규직이 되고 싶어 했다. 준비하고 다니면서 저만큼 항해해서 나아갔다.
그 꿈은 어디로 간 건지 다시 들어가는 터널도 암호도
가물가물해 보였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고 하면서
제각각 분리된 영혼으로 살아가나 생각된다.
나 또한 졸업하고 시간 지나서 결혼하는 사회적 시선 안으로 와서 나의 정체성이 녹아드는 것에 집중하고 살았다.
딸은 또 어느 날, 그림동화를 다시 하겠다고 선언했다.
책상이 왔고, 다시 그 미야자키 하야오의 글과 애니를 들춘다. 다시 조금 더 성숙해진' 로냐'가 되어 있었다.
책상 안의 세상에서 여름의 씨름을 해내고
다시 채색을 시도하고 있다. 선택한다는 건
다른 걸 포기한다는 거다. 철저하게 매겨지는 순간이다.
가끔' 센과 치히로'처럼 이름을 잊고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 이름을 잊지 않고 그 꿈 주변을 서성이다
주춤거리다 마주하길 바라고 있다.
그 그림자에서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지만 않고
긴 시간에 갇혀있지 않기를 바란다.
어쩌면 암호는 풀었을 때 별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