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좋아하는 유튜버님이 올린 브이로그를 보았다. 제목은 ‘이번 한 주도 ’대충 잘‘ 살아봐요’.
예쁜 풍경도, 나긋나긋한 배경 목소리도, 감성적인 편집도 없지만 다른 어떤 브이로그보다도 이 분의 브이로그가 좋다. 립글로스를 먼저 바른 후 립스틱을 바르는 등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개의치 않아하는 모습, 대강 세수하고 세면대에 발 올려 쿨하게 발을 씻는 모습, 온 집안에 아이들의 낙서로 뒤덮힌 벽지,, 예쁘게 꾸며 올리기보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찍은 날 것 그대로의 영상이 그 자체로 매력이 흘러 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 분이 한창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찍은 브이로그도 예전에 보았었다. 다소 촌스러운 분홍색 극세사 이불을 꼭 덮은 모습, 이불을 턴 뒤 개지 않고 그대로 뭉쳐놓기만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 그때도 마찬가지로 온 집안이 아이들 낙서로 가득한 벽, 컵에 이가 나갔지만 그때도 개의치 않고 그냥 쓰던 모습 등 그냥 너무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에 더 마음이 갔었다.
대체 어떤 카메라를 쓰는지 영상에 담긴 풍경도, 집 내부도, 그릇에 담긴 음식마저도 예쁘고 감성적인 브이로그들,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알차게 사는 모습을 담은 브이로그 등 너도나도 자기만의 일상의 규칙, 아름다움, 열심을 찍는 유튜브 세상 속에 무규칙, 무계획, ‘대충’이 담긴 그녀의 브이로그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다들 열심히 사는데, 다들 잘 사는데, 다들 예쁘게 꾸미고 사는데 나도 그렇게 따라가봐야지, 하는 불안하고 조급한 종류의 마음이 아닌, 편안하고 따스한 기운이 밴 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으로만 삶에 애정을 갖고 대충, 잘 하루를 살아야지,하는 마음이 든다. 이런 마음이 피어나게 한 건 유튜버님의 꾸미지 않음, 자연스러운 모습의 힘인 것 같다.
실은 이게 어쩌면 우리들 모습인데. 집이 좀 엉망일 때도,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을 때도, 몸은 까딱않고 누워서 입으로만 육아를 할 때, 실은 허다한데도. 정갈하고 부지런하고 각 잡힌 일상을 알차게 사는 이들의 모습에 괜시리 주눅들고 조급할 때가 왜그리 많은지. 어떤 완벽해보이는 기준에 맞춰 일상을 꾸려나가지 않아도, ‘대충~’ 할 수 있는 만큼만 정성스럽게 살기만 해도 충분히 빛날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임을, 그녀의 짧은 영상이 말해주는 듯했다.
그녀의 브이로그가 내게 또 하나 신선했던 지점은 그렇게 날 것의 일상 풍경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그 분의 용기였다.
나의 본가는 깨끗과는 거리가 있는 집이었다. 어지를 때까지 어지르다가 한번에 확 치우거나 하던 게 우리집 풍경이었다. 시집살이로 생긴 병이라며 다른 사람의 물건, 바깥의 어떤 것이 접촉되었을 때는 결벽에 가깝게 못 견디는 엄마지만 반대로 우리집 내에서 더럽고 어질러지는 것은 크게 예민하게 생각지 않아하셨다. 닦고 쓸고 한다고는 하지만 친구들 집에 가보면 알았다. 아, 우리집은 안 깨끗한 집이구나, 하고. 제대로 된 정리는 전혀 않은 채, 설거지, 빨래, 청소 정도만 하는 집이었기에, 늘 집 상태는 어수선했다. 그렇게 우리집이 더럽든 정리가 안됐든 나는 학창시절에 친구들을 집에 잘도 데려왔다. 와서 같이 밥도 먹고 티비도 보고 자주 놀았다. 대학 초반까지도 그랬다. 그런 나를 우리 언니들과 동생은 신기하다고 했다. 성인이 되고 한참 지나서도 한번씩 얘기했다. ”집도 더러운데 ㅇㅇ는 친구들 어떻게 그렇게 잘 데려왔노~ 안 부끄럽더나~“하면서. 그때는 그런 게 정말 전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오래 산데다 많이 낡고 깔끔하지도 않은 우리 집인데 친구들에게 그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같이 놀고 학교다니는 친한 친구끼리여서 그랬나. 그런 게 내 치부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진짜 어려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나 말고 다른 언니 동생들은 안 그런 걸 보면 어리다고 다 그런 건 아닌 것 같긴하다.
그렇게 주변 이들에게 내 사는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던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절대 어질러진 채로 집에 누구를 들이지 않는다. 손님이 오기 전에 쓸고 닦고, 마치 원래부터 깨끗한 집인마냥 대청소를 한다. 어릴 때부터 여전히 청소나 정리습관이 크게 몸에 배이지 않은 터라 평소에도 집 상태가 크게 깔끔하지 않으니 누구 오는 날이 대청소 날이 되는 것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어질러진 우리집에 자주 왔던 친구들이 오는 날이어도 전날부터 쓸고 닦고 대청소를 한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던 게 지금은 신경이 쓰인다. 어릴 때 살던 집은 내가 내 힘으로 꾸린 집이 아닌 엄연히 따지면 부모님의 집이었고, 성인이 되어 꾸린 집은 내가 꾸린 집이기에 이젠 더럽고 어지러워도 부모님 탓도 할 수도 없기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당연할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과하게, 나의 안 좋은 부분, 치부가 될만한 부분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과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 유튜버님 영상 속에 보이던 벽지 속 가득한 낙서들은 내게 참 많이 익숙했다. 집안 풍경도 어릴 적 우리집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어릴 때라면 거리낄 것 없던 나는 그런 흔히 ‘부유해 보이지 않는’ 집의 풍경을 남에게 보이는 일이란 지금으로선 내게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다른 이들에게 나의 좋은 모습만, 완벽해보이는 모습만 보여주려하고, 빈틈은 웬만하면 보여주지 않으려한다. 그러나 나는 빈틈이 없는 사람이 전혀 아니어서, 빈틈많은 사람이 빈틈을 안 보이려하니 결국 내 주변 바운더리는 좁아져만 가고 나의 완벽을 보여주려는 모습은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내게 이 유튜버님의 영상은 신선했다. 예쁜 집, 깔끔한 집, 정돈된 집이 아니어도, 대충 찍어 올린 듯해도 왜 그리 이 영상이 사랑스러웠던지. 꾸미지 않아도, 연출하지 않아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자꾸만 꽁꽁 싸매고 감추고 남들 의식하며 사는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이 분 모습이 멋지고 사랑스럽듯 나도 너무 무언가를 만들려고, 애쓸려고 하지 않아도 내 자연스러운 모습, 내 있는 그대로의 생활,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