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유니폼
<2년째 13살> (3) 축구 유니폼
저는 1년 6개월차 풋살러에요. 왕초보이긴 하지만요.
"선생님 오늘 밤에 풋살하러 간다?" 라고 말하면 13살 남자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지는 걸 쉽게 볼 수 있어요.
여자 선생님이, 그것도 축구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사람이 풋살을 한다고 하니 신기한가봐요.
TMI이자 사생활인 풋살러임을 굳이 굳이 밝히는 이유는 남자아이들과 폭넓은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올해는 특히 S와 J랑 대화가 가능했죠!
S와 J는 장난기도 없고 숫기도 없는 남학생들이에요. 하루에 열 마디나 할까 싶은, 점잖고 똑똑한, 그러나 어색한 아이들이었어요.
친해지고자 이런 저런 말을 붙여봤지만 쑥쓰러워하고 불편해하는 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저도 한동안 불편어색했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크나큰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축구였습니다.
S는 해외팀 선수들을 꿰고 있을 정도로 축구 광팬이었고,
J는 유소년 축구팀에서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축덕이었어요.
말도 없고 숫기도 없던 S와 J에게 축구 이야기만 꺼내면 '같은 사람 맞아?'싶을 정도로 말을 쏟아내는 것을 직관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각종 축구 상식, 며칠 전에 나갔던 대회 이야기들을 먼저 와서 이야기해주기도 했구요.
그덕분에 S, J와 많이 가까워졌어요. (역시 공통관심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ㅎㅎ)
그러던 어느 날 S가 맨유 유니폼을 입고 왔어요! 생일선물로 받았다면서 말이죠.
그때까지만 해도 유니폼은 하나도 없던 저와 J는 군침을 흘리며 부러워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름방학.
저는 큰 맘 먹고 레알 마드리드의 흰색 유니폼을 구매했습니다. 딱히 그 팀 팬은 아니지만, 무난해서..
설레는 여름 개학식 날 S, J를 만나자마자
"선생님 유니폼 샀다!"라고 자랑을 했는데
알고보니 J도 저와 똑같은 유니폼을 방학동안 샀다고 하더라구요!
마침 잘 됐다! 유니폼을 학교에 입고 오고 싶었지만, 다소 쑥쓰러웠던 저는 아이들에게 귀여운 제안을 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하루 정해서 유니폼 입고 등교할까?"
그러자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일 당장 입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우리의 유니폼 데이.
저는 설레는 마음 반, 혹시 한 명이라도 까먹었을까 걱정되는 마음 반으로 출근을 했고
다행히 S와 J는 약속대로 유니폼을 입고 등교를 했어요.
저는 신나는 마음에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불러모아 사진을 찍으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색했던 우리가 언제 이렇게 친해져서 옷을 맞춰 입고,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니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S와 J도 먼 훗날 언젠가
'13살 때 담임선생님이랑 축구 유니폼 맞춰입고 학교 왔었지.'하며 저를 떠올리는 날이 오겠죠?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