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 OR 갱스터 ㅡ 웨딩박람회, 이것만큼은 알고 가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주신 분들께 대단히 감사하다.

by 이어진


tempImageFWJlqY.heic

가끔 아이폰이 나를 엿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두바이 쫀득 쿠키 먹고 싶다."라고 말한 후 갑자기 인스타에 두바이쫀쿠 릴스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날 때 의심이 증폭된다. 이런 사례들은 무궁무진하다. 검색창에 웨딩홀을 쳤을 뿐인데 갑자기 웨딩 박람회 광고가 인스타에 폭증할 때도 역시 의심은 증폭된다.

알고리즘에 노출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우리는 얼마나 광고에 무력한가. 나는 신경질적으로 웨딩박람회 광고를 몇 번 스크롤했을 뿐인데 어느 새 '웨딩 박람회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이라면 필연적으로 한 번은 가게 될 웨딩 박람회. 나와 남자친구도 인스타 광고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올라 탔다.

"오빠, 요즘 웨딩박람회가 많이 뜨네. 우리도 한 번 가 봐?"

"좋지."

놀랍게도 우리는 간결한 대화를 한 바로 다음날 박람회에 갈 수 있었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웨딩 박람회는 언제 어디서나 하고 있는 것만 같을 정도로 자주 열리기 때문이다.


매주 열리는 듯한 박람회들. 그중에서도 우리는 강남 코엑스를 예약했다. 어느 회사에서 주최한 것인지는 비밀이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박람회 중에서 하필이면 그 회사를 선택했는지는 말할 수 있다. 바로 가까워서다. 우리 집에서 가깝고, 날짜도 바로 내일이었다. 만약 어디로 가야할 지 고민이라면 주저말고 가까운 곳으로 선택하시길. 무료입장이라면 어디든 다 비슷할 것이다.


박람회 하루전 날,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무료 입장 예약" 버튼을 클릭했다. 각종 콘서트 티켓팅 대실패로 축적된 회의감('어차피 또 실패하겠지 뭐...')이 화들짝 놀랄 만큼 신청은 쉽고 빨랐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들짝 놀랄 만한 것은 따로 있었다. 신청을 마치자마자 바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는 사실이다. 정말 "바로" 말이다.


"여보세요?"

"고객님 안녕하세요. 방금 웨딩박람회 신청하셨죠? 저는 웨딩플래너 OOO실장이에요."

수화기 속 여성분은 목이 살짝 간 상태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내일 몇 시쯤 방문 예정이실까요?"

"한... 다섯 시요..?"

"아 고객님, 그 시간에는 예약이 다 차 있어서요. 혹시 4시 괜찮으실까요?"

"네. 아 그런데 무슨 예약..? 그냥 입장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 고객님 그렇긴 한데요,"

라고 말하며 그녀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도통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나열했다. 그녀의 말투는 옥구슬처럼 친절했지만 뭐랄까 영혼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목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아 네네. 그럼 4시까지 갈게요."라고 답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무료입장인데 이렇게까지 한다고?' 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것이 과잉친절임을 직감했다. 또,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상기하며 경계태세 모드를 장착했다. 결전의 날은 바로 내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각종 포털 사이트에 "웨딩박람회", "웨딩박람회 주의사항", "웨딩박람회 호갱" 등을 검색하며 짠순 감각을 곤두세웠다.


드디어 박람회 당일, 나와 남자친구는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센 척을 하며 박람회장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그 엄중한 걸음걸이와 권위적인 표정은 누구라도 나를 호갱으로 본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때의 그 긴장감이란. 우리를 본 직원들은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 갱스터가 되는 것을 선택한 커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2시간이 흐르고, 갱스터커플은 기가 쪽 빨린 채 박람회장을 나왔다. 겨울인데도 왠지 더웠다. 다행히 우리는 좀 이상하게보였을지언정 호갱은 되지 않은 채 박람회장을 나왔다.


지금부터는 내가 어떻게 해서 웨딩 박람회 호갱이 되지 않았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방법이라기 보다는 마음가짐에 더 가깝다.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과 내가 직접 겪고 나서 든 생각을 덧붙였다. 이 마음가짐과 함께라면 당신도 호갱이 아니라 갱스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간다.

웨딩 박람회장에 들어서면 눈이 참 즐겁다. 특히 신부라면 지하철에 타고 있을 때보다 몇 배는 올라간 텐션을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어머, 세련된 흰 색 머메이드 드레스. 내 체형에는 머메이드가 잘 어울릴 거라고 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직원이 와서 친절히 묻는다. "한 번 입어보시겠어요?"

직원뿐만이 아니다. 적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던가. "어머머머, 여기 스튜디오는 촬영본을 너무 예쁘게 편집하네. 무슨 아이돌 포토북인줄..." 호들갑을 떨며 남자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면, 남자친구는 어느 새 "인스타 아이디 치니까 바로 나오네."하며 스튜디오 계정을 보여준다.


심지어 나는 돈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충분히 하고 왔는데도 혹했다. 만약 '한 번 보고~ 좋으면~'이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면 지갑을 열기 딱 좋았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지갑을 열게 만드니까. 그러니 아무것도, 정말 단 하나도 결제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가야한다. 어디까지나 알아본다는 마음으로.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쿨 결제한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이불세트를 양손에 들고 있을 지도 모른다.


2. '오늘 뿐'을 조심하자.

박람회장을 한 번 둘러본 후, 웨딩 플래너와 상담을 했다. 앞선 전화에서 눈치챘듯, 웨딩 플래너는 초고단수였다. 그녀들은 일단 목이 쉬어 있다. 나는 교사로서 하루에 6시간씩 수업을 하고, 집에 와서는 남자친구에게 온갖 잔소리를 해대지만 그녀들만큼 목이 쉬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녀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 것인가!

웨딩플래너님은 (감사하게도) 30분 내내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녀의 손에 들린 태블릿을 통해 각종 업체들의 견적을 보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쩜 저렇게 말을 술술 하실까?'하며 감탄했다. 그녀는 무림고수만이 보유한 공격스킬을 활용하여 우리를 능수능란하게 구워 삶았다. 그야말로 갱스터 대 무림 고수의 대결이었다.


내 귀가 가장 얇아졌던 순간은 '오늘 뿐'이다. 30% 깎아주는 건 오늘 뿐. 이런 기회는 오늘 뿐. 같은 말들. 다행히 나는 많은 릴스들을 통해 '오늘 뿐'의 그 '오늘'은 매일 눈을 뜨면 새롭게 시작되는 오늘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기억하자. 세상의 모든 좋은 기회는 오늘만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일도, 모레도 또 온다는 것을.


3. 세상에는 수많은 웨딩 업체가 있다.

웨딩 박람회에는 다양한 코너가 있다. 양복 코너, 한복 코너, 신혼여행 코너... 예비 부부들은 각 코너 별로 마련된 부스를 돌며 상담을 하고, 계약을 한다. 박람회장에 입장할 때는 '누가 저런 부스에서 계약을 하나'싶지만 막상 들어가면 많은 커플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또, 계약을 하면 나눠주는 이불 세트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다. 수많은 커플들이 말이다!

그런 걸 보면 '웨딩박람회 호갱 어쩌고 하더니 다들 그냥 계약하나보네'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너무 경계했나?' 하는 마음에 안일해지기도 한다. Best를 찾다 Good까지 놓쳐버린다는 명언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신중해져야 한다. 인생에 딱 한 번 뿐인 결혼이 아닌가! 세상에는 수 많은 웨딩 업체가 있다. 내 맘에 쏙 드는 것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업체는 오늘 이 박람회장에 있지 않을 확률이 크다. 게다가 우리는 선택형 짠순이가 아닌가! 짠순이라면 쓸 땐 쓰더라도 '적당해서'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옵션 같아도, 대충 적당히 할까 싶어도, 옆에 있는 예비 배우자가 지쳐보여도 "다음"을 기약하자. 결정을 유예하자. 조금만 더 알아보자. 더 좋은 선택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적고 보니 웨딩박람회를 너무 나쁘게 표현한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웨딩 박람회는 이점이 많다. 모든 게 막막한 예비 부부들에게 공짜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가.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또 직접 겪어본 바, 지천을 떠도는 소문들처럼 그렇게 구매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무림 고수 어쩌고 했지만 30분 내내 목이 쉬도록 설명 해주신 웨딩플래너님께 대단히 감사하다. 나는 그녀의 프로페셔널함을 존경한다. 비록 아무것도 계약하지 않았지만, 만약 웨딩플래너가 필요해지면 반드시 그녀에게 연락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나처럼 한 푼이 아까운 짠순이가 아니라면 웨딩 박람회는 최고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결혼의 A부터 Z까지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웨딩플래너. 귀찮게 일일이 알아볼 필요 없이 제휴된 업체들 중에서 고르기만 하면 되는 간편함. 다양한 할인 혜택. 무난함과 유행, 그 사이 어딘가에 올라탈 수 있다는 안전함 등등. (적고 보니 또 웨딩박람회를 너무 좋게 표현한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러니 내 글을 '웨딩 박람회는 전부 사기꾼 집단이니 덮어놓고 조심해라!'하는 경고성 글이 아니라, '짠순이라면 이런 마음 가짐으로 가면 어떨까요?' 하는 권유의 글로 읽어주시길 희망한다. 아무쪼록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주신 웨딩 플래너님과 박람회장 직원분들께 대단히 감사하는 바이다.

이전 18화17. 남들과 똑같은 결혼식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