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결혼식
생애 주기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차곡차곡 한 발씩 잘 밟았다고 자신한다. 졸업과 입학을 제 때 했고, 그 흔한 휴학 한 번 해본 적 없으니까. 생애주기는 내게 달리기 시합과도 같았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은 것. 남들 만큼 빠르게, 절대 느리지는 않게.
하지만 결혼은 달랐다. 결혼에 있어서는 이상하게 생애주기를 밟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들 다 한다고? 그렇다면 나만큼은 다르게. 빠르면 빠를 수록 손해인 것. 남들만큼 빠르지 않게. 절대 느리게.
적고보니 어쩌면 진짜 뜻이 없는 사람은 나처럼 이렇다할 가치관이 아예 없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내가 너무 간절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간절해서, 너무 그러고 싶어서 스스로를 단속하는 무의식적 방어기제랄까?
결혼에 뜻이 없으니 내가 주인공인 결혼식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다. "날 좀 축하해주쇼!"하며 사람들을 초대해야 한다니. 내향인으로서 상상만해도 화장실로 숨어버리고 싶은 일이다. 그리하여 결혼식을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날 계속해서 거울로 내 꼴을 확인하는 것처럼, 이게 맞는지 계속해서 자문해야 했다.
여전히 '너 진짜 이거 맞아?'에 대한 자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결혼'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진짜로 너무 간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결혼식이란 주차 복잡한 곳.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신부의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모습. 신랑의 어색한 화장과 그보다 더 어색한 표정... 뭐 그런 것들이었다.
물론 내가 좀 유별나다는 것은 알고있다. 모두가 나처럼 결혼식에 대해 아무런 환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친구 중에도 예식장에만 몇 천씩 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인플루언서처럼 화려한 식을 꿈꾸는 사람도 있고, 어바웃타임의 야외 결혼식이 버킷리스트인 사람도 있다. 나는 오히려 그렇게 확실한 꿈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골칫거리는 나처럼 아무런 환상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우리반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주로 '짠'하고 보여줄 결과물을 완성해야 할 때나 자신감을 북돋아줄 때 하는 말이다.
"얘들아,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게 뭔지 알아? 내 것을 담아내는 거야. 나만의 느낌, 나만의 개성 같은 거 말이야. 이름표를 가려도 내가 했다는 걸 친구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게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 중요해."
내 말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일부러 덧붙인다.
"예를들면 복면가왕 같은 거지. 얼굴을 다 가리고 있어도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잖아. 우린 그런 가수를 훌륭하다고 해.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창법. 그런 걸 가진 사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쯤 얘기하면 아이들이 퍼뜩 감을 잡는다. 그러고는 자신의 지문과도 같은 '시그니처'를 넣은 작품을 만든다.
나는 아이들의 작품들을 둘러보다 괜히 기특해져서는 "이번 작품은 전체공개할거야."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면 아이들이 싫은 소리와 앓는 소리를 동시에 내뿜는다. 그럴 땐 대책이 있다. "이름 쓰지 말고 제출하세요. 친구들이랑 누구 작품인지 맞춰볼 거니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름을 쓰지 말라고 하면 그래도 반응이 좀 나아진다. 애나 어른이나 익명성에 기댈 때 마음이 놓이는 건 비슷한가보다.
나는 레슬링하는 모습이 담긴 작품을 들어올려 아이들에게 묻는다.
"이건 누구 작품일까요?"
"장시혁 거요!"
아이들은 술렁이며 바로 정답을 맞춘다. 장시혁은 레슬링을 사랑하는 학생이다. 너무 쉽다.
"정답! 선생님은 이런 작품이 진짜 잘 만든 작품인 것 같아~"
내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웬만하면 절약하며 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짠내나게 살고 싶지는 않다. 특히 그것이 어떤 결과물을 짠하고 완성해야 할 때라면 더더욱. 그럴 땐 꼭 내 것, 나만의 느낌, 나만의 개성을 담으려 노력한다.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인공인 결혼식을 해야 한다면, 정말로 할 작정이라면, 남들과 똑같은 결혼식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건 누구의 결혼식일까요?"라고 물었을 때 하객들이 단번에 '어진이의 결혼식이죠.'라고 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결혼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아주 비싼 돈을 들이는 것이었다. 히지만 아쉽게도 아주 비싼 돈을 들일 자금은 없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신박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역시도 개성 있게 하고는 싶지만 너무 신박해서 사람들의 인상에 뚜렷이 남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난 좀 까탈스러운 인간이다.) 정리하자면 돈은 아끼되, 튀지는 않고, 그러면서도 나만의 느낌은 챙기고 싶었다.
나와 최형의 관계는 일방적인 구석이 있다. 최형은 "우린 그걸 내로남불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라고 말하며 얼굴을 구기겠지만... 아무튼 일방적인 구석들 중 하나는 내가 좋음과 싫음을 마구잡이로 표현하면, 어느 새 최형이 내 취향을 간파해서 내가 제일 좋아할 만한 것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일방적인 관계를 아주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최형은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최고의 선택지를 찾아낸다. 결혼식장을 선택하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형은 내 까탈스러운 조건을 간파하고는 그에 딱 맞는 최고의 식장을 찾아왔다. 그건 공공예식장이다.
공공예식장은 내 조건을 모두 만족했다.
1. 가격이 저렴하다.
- 서울시에서 결혼 장려를 목적으로 저렴히 대여해주는 예식장이다.
- 홈페이지에서 긁어온 표준가격은 아래와 같다.
2. 조금 튀나? 싶어도 유난스럽지는 않다.
- 대중적인 웨딩홀이 아니기에 조금 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건전한 돋보임이라고 생각한다.
3. 나만의 개성을 챙길 수 있다.
- 공공예식장 중에서도 특히 <국립중앙도서관>이 마음에 든다. 이는 책을 좋아하는 나와 최형에게 딱 어울리는 장소다. 게다가 의미도 있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만났으니까 도서관 만큼 의미 있는 장소도 없을 것이다.
아래의 홈페이지에는 국립중앙도서관 말고도 한옥, 정원, 식물원 등 다양한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다. 만약 나처럼 결혼식에 대한 낭만이 없고, 저렴하면서도 개성있는 결혼식을 원한다면 아래의 주소를 참고하면 좋겠다.
서울시 공공예식장
https://wedding.seoulwomen.or.kr/facilities
다만 알아보면 알아볼 수록 단점들이 눈에 띈다. 예를들어 국립중앙도서관은 4개월 전부터 예약 시스템이 열린다. 이는 1년6개월 전부터 식장을 알아보는 요즘 예비부부들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외에도 식장 후기가 적다거나, 실제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장소도 몇몇 있다. 이역시도 후기들을 적극 참고하여 선택과 결정을 내리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맞지 않다.
나와 최형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계속해서 추적하며 단점들이 개선되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서울시가 청년예비부부를 위해 벌이고 있는 사업이니만큼 여러 단점들이 개선되리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력이 피와 살이 되어 내가 먼저 자세한 후기를 쪄올 수 있기를. 예쁜 결혼식이 아니라 우리만의 결혼식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