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순이가 배우자를 구슬려 삶는 방법 ㅡ 부부금전계약서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잘 먹고 잘 살아보자!

by 이어진

남자친구와 내가 하나의 팀이 되어 세상의 모든 커플들 중 몇 번째로 짠순한 커플인가를 따져보는 정답도 의미도 없는 시합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우리 커플은 비교적 절약하는 축에 속할 것이다. 우리는 외식 보다는 집밥을 먹고, 돈이 술술 빠져나가는 술자리도 대개 집에서 가지니까. 또, 둘 다 사치를 부리는 성격이 아니고 싸게 살 수 있는 것은 싸게 사려고 애쓰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를 함께 계획할 때 생기는 걱정거리는 무엇일까? 내 글이니 내 입장만 줄줄이 늘어놓아도 괜찮다면, 문제는 하나다. 바로 애매한 짠돌이의 소비습관! 그는 매일 무언가를 산다. 거의 매일 집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있다. 그렇다고 사치스러운 사람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있는 것이, 구매하는 물건들이 생필품, 옷, 음식, 1만원 이하의 필기구 등이기 때문이다. 꼭 필요하거나, 있으면 어쨌든 유용하거나, 너무 저렴해서 뭐라 따지기 어려운 물건들... (애매한 짠돌이라는 표현이 딱 맞지 않은가) 하지만 만 원 짜리, 이 만원짜리만 샀는데 다 합쳐보니 1억이 되어 있었다는 어느 텅장러의 말처럼 그것들도 쌓이고 모이면 꽤 큰 돈이 된다.


그렇다면 그의 소비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내식대로 단정짓는 것을 허락해준다면 용기내어 말하고 싶다. 그는 "필요의 역치가 낮은 사람."이다. 남들이 100만큼 필요를 느낄 때 구매로 이어진다면, 그는 50만큼만 필요해도 돈을 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에게 빌려보는 시도를 한다거나, 집에 있는 다른 물건으로 대체해본다거나, 구매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으로 우회해보는 등의 귀찮고 번거로운 절차를 패싱한다. 예컨대 자전거가 필요하면 자전거를 사는 사람인 것이다. 자전거를 빌리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떠올리는 데 골몰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지만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글은 장점이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소비의 역치가 나보다 훨씬 낮은 그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내가 찾은 첫 번째 방법은 "또 샀어?"였다. 한국말에는 "또 샀어?"를 대신할 말이 여럿 있다. 잔소리나 바가지 긁기...등등.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한국 남자에게는 "또 샀어?"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있다. 거짓말하기, 눈치보며 숨기기 등등. 그는 "또 샀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닌, 집에 도착한 택배를 내가 보기 전에 정리해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마치 당근 채팅을 통해 "아내가 보면 혼나니, 가격을 싸게 파는 척해주시면 안 될까요? 차액은 만나서 드릴게요."라고 묻는 가여우면서도 충직한 남편들이 떠오르는 방식이다.


tempImage5R1vPf.heic


그리하여 나는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바가지를 긁지 않고서도 그의 소비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야만 했다. 지독한 짠순이가 애매한 짠돌이를 구슬려 삶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용돈이었다.

"오빠! 앞으로 우리 월급을 합치고 매달 용돈을 받아쓰면 어때?"

"어..어? 그래 좋아!"

웬만하면 내 말을 잘 따라주는 그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 누구 계좌에 합칠까?"

나는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하는 데에 능숙했다.

"어진이 계좌?"

그는 답이 정해져 있는 대답을 하는 데에 익숙했다.


"좋아. 그럼 내 계좌에 돈 모으자. 용돈은 얼마면 되겠어? 오빠는 친구도 안 만나니까 많이 필요 없지?"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하는 데에 능숙했다.

"주유비랑 헬스장비는 빼주는 거야?"

"흠..그래 그건 빼고. 식비랑 관리비도 빼자. 아참! 구독료도!"

"그럼 진짜 쓸 데가 없는데..."

나는 남자친구가 싸다고 샀던 많은 택배 상자들을 떠올리며 '과연 그럴까..'라고 생각했다.

"그럼 40만원 어때? 40만원으로 오빠가 사고 싶은 거 다 사는 거야."

"흠.. 그럼 어진이는?"

"나?"


낭패였다. 사실 나는 그간 금액에 제한을 두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소비를 하지 않기에 굳이 제한을 둘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 그리고 맞은편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남자친구 때문에라도 제한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다면 얼마가 적당할까? 내로남불이라 욕 먹을지라도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그와 똑같은 금액인 40만원으로는... 한달을 살기에 부족할 것 같았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그와는 달리, 주기적으로 친구를 만나야 하고, 이따금 그들에게 거하게 한 턱 쏘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한 10만원 정도만 더 올려받으면 어떨까? 나는 용기내어 말했다.

"난 50만원!"

"오~~십~~~? 왜 나보다 10만원이나 더 많아? 나처럼 40만원 받아야지!"


인간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세라고 했던가. 그순간 필요한 것은 쫄지 않는 태도였다.

"오빠! 생각해봐!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많이 먹어? 술은 또 어떻고? 우리 둘이 못해도 40키로는 차이가 나는데 식비는 반반으로 하잖아! 한 달에 먹는 양 따져보면 내가 10만원 보다 훨씬 못 먹거든? 그래, 안 그래?"

나는 마치 쇼미더머니 디스전에 참전한 랩퍼처럼 속사포로 침을 튀겼다.

"그..그래! 10만원! 나 40, 어진이 50! 그럼 됐지?"

나는 새침떼기 마냥 "그래 그정도면 되겠네!"라고 샐쭉히 말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막상 정하고 보니 걱정되는 일이 끝도 없이 튀어나왔다.

"오빠, 근데 지금까지 오빠 쿠팡 아이디로 식재료나 생필품을 샀잖아?"

"그치?"

"앞으로는 공금으로 사야 되는데..그럼 오빠 아이디로는 안 되겠다."

"내가 사고 돈을 받으면 안돼?"

나는 잔소리를 얹기엔 애매하게 유용한 그의 택배상자들을 떠올렸다. 이대로 놔두면 분명 50만큼만 필요해서 산 물건들이 집에 쌓여갈 것이었다. 만 원, 이 만원 짜리들이 모여 1억이 쓰일 것이었다.


"안돼. 내가 확인하고 꼭 필요한 것만 사야겠어. 오빠는 내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사고싶은 걸 장바구니에 담아놔. 결제는 내가 할게."

나는 결제와 결재를 혼용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요컨대 내 결재가 있어야만 결제가 되는 시스템.

"그..그래.."

모르긴 몰라도 남자친구는 그순간 '집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바가지를 긁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옭아메게 될지도 모를 조항을 추가했다.

"아 그리고 이것도 넣자. 서로의 용돈은 절대 간섭하지 말자는 것!"

"뭐, 난 좋지."

이 조항으로 나는 그가 용돈으로 구매한 자유분방하고도 애매한 택배상자들에 잔소리를 얹지 않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인해, 우리의 제일 중요한 목표인 평화로운 공존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우리의 부부금전계약서를 소개한다. '너무 거창한가?'싶지만 단지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약속의 문서화일 뿐이다. 선택형 짠순이와 애매한 짠돌이의 공존 전략일 뿐인 것이다. 이 문서가 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당신이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가려진 부분은 우리의 이름이다. 또 지나치게 개인적인 조항은 그의 사생활을 위해 자체 필터링을 거쳤다.)








keyword
이어진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