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남자가 있다. 모순적이게도 그는 세상에서 제일 미워했던 남자이기도 하다. 그도 어리고,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렸던 세월들이었다. 그는 지독한 짠돌이였다. 뭐든 제일 싼 것을 샀고, 오래오래 썼다. "어떤 공간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낡음'인지도 모르겠다."는 어느 소설가의 문장은 꼭 그가 하는 말 같다. 왜냐하면 그는 "10년 전에 산 파카를 여태껏 입고 다닌다."는 말을 유행어처럼 하며 낡음을 자랑하곤 했으니까. 그는 나의 아버지다.
짠돌이인 그가 창피하고 싫었던 나는 어느덧 소설가의 낡음 문장에 고개를 위아래로 격하게 끄덕이며 밑줄을 긋는 짠순이가 되었다. 지금은 안다. 낡음은 정말로 우아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낡음'은 자신이 주인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아낌 받는 지를 고요히 외치곤 하니까.
아버지 다음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모순적이게도 그는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일 네가 더 어리다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계절들 속에 있다. 그는 애매한 짠돌이다. 뭐든 제일 싼 것을 찾지만, 싸면 필요하지 않아도 사는 사람이다. 어떤 공간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많음'인지도 모르겠다는 세상에 없는 문장은 꼭 그가 하는 말 같다. 그는 맥시멀리스트다... 가 아니라 나의 남자친구다.
연애 초의 내숭과 가식을 벗어던진 나는 그의 소비습관에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어대는 짠순이 여자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헷갈린다. 그는 싼 것을 잘 골라 사지만, 너무 많이 산다. 그러나 가끔은 그의 '많음'이 소중하고 아끼는 존재에게 '나눔'을 하기 위한 물건임을 알기에 애써 잔소리를 참는다.
애매한 짠돌이인 그와 결혼을 여러 번 결심하고 여러 번 파기했다. (모순적인 사랑이다.) 언제 또 결심을 할지 모르고, 언제 또 파기를 할지 모르지만... 결혼을 앞두고 했던 고민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서론이 길어지면 대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지만 그럼에도 길게 적어보자면... 선택형 짠순이인 나는 아무튼 혼자 살 생각은 없고, 아무래도 결혼은 해야지 싶은데, 아무도 나의 짠순함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애매한 짠돌이는 아무튼 나를 혼자 내버려 둘 생각이 없고, 아무래도 결혼은 하고 싶고, 아무도 못한 이해를 잘해보겠다고 2년 동안 외쳤다. 그것이 내가 (한 때) 그와 결혼을 결심했던 가장 큰 이유다.
지금부터는 본론이다. 그의 일관된 구애는 차치하더라도 현실 같은 결혼을 하기에 걱정되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그는 싸면 사는 인간이 아니던가! 필요한 게 없어도 블랙프라이데이가 오면 "살 만한 게 없나?" 하며 쇼핑몰 사이트를 구석구석 뒤지는 그이다. 당장에 필요한 물건도 마음 신호등을 여러 번 켜가며 돌다리를 두들겨보는 나(11화 참고)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과연 내가 잔소리를 참아낼 수 있을까? "안돼. 비슷한 거 있잖아. 사지 마."라는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그가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의 행복에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엄청난 맥시멀리스트가 아니던가! 그는 집에 생수가 잔뜩 있어도 쿠X에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오면 바로 구매해 버리는 사람이다. 어차피 다 마실 수 있으니 쟁여두자는 전략이랄까? 또 사은품을 주면 요긴히 쓰일 테니 우선 받아두자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반대로 나는 정리의 기본은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물건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당장 필요한 것만 소유하고 싶다. 이미 집에 많거나, 필요하지 않으면 받고 싶지 않다. 얻으려는 자와 버리려는 자. 이다지도 다른 우리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여기까지가 내 남자친구의 소비습관에서의 단점이다. 단점을 적자니 평소와 달리 글이 술술, 휘리릭 써진다. 왜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신나게 남편 험담을 하는지 벌써부터 이해가 된다. 이번에는 그보단 재미없지만 어쨌든 필요하니, 단점을 상쇄해 주는 그의 장점들을 소비습관 측면에서 써보겠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정보력이다. 그는 각종 사이트를 틈틈이 방문하여 이벤트를 확인하는 좋은 습관이 있다. 그가 훑어보는 사이트는 에듀넷, 함께 학교와 같은 교사 전용 사이트에서부터 아르떼, 스타벅스까지 문화생활 전용 애플리케이션까지 아우른다. 그곳에서 진행하는 댓글 이벤트, SNS 홍보이벤트, 필사이벤트 등등에 참여한다. 그리고는 커피쿠폰, 케이크쿠폰, 편의점 쿠폰, 백화점 상품권, 공연 관람권을 얻는다. 덕분에 우리는 커피를 자주 마시고, 미술관이나 음악회를 무료로 갔다. 특히 공연은 한 회당 평균 5~7만 원 하는 좌석이었으니 꽤나 쏠쏠했다. 게다가 작년엔 에버랜드에서 진행한 지도안 작성 대회에 참가하여 에버랜드 방문권을 6장이나 타기도 했다.
또 이러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싼 물건을 잘 찾는다. 그는 가격 알림 사이트를 즐겨 찾는다. 저렴한 가격을 공유해 주는 사이트에 매일 들어가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형님들"이라 부르며 감사해한다. 이러한 그의 장점은 특히 닭가슴살, 생수, 화장지와 같이 매일 소모하는 고정지출비용을 줄일 때 빛을 발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맥시멀리스트이긴 하지만, 그만큼 나누는 사람이다. 이건 내가 닮고 싶은 부분인데, 그는 많은 물건들을 쟁여두고 있다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푼다. 일례로 3색 볼펜이 이미 집에 많은데도, 또 3색 볼펜을 여러 개 사온 적이 있다. 그 당시엔 속으로 '다 쓰고 사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 몇 달 동안 그걸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나에게도 주고, 우리 언니에게도 주고, 우리 언니 친구에게도 주고, 독서모임 회원에게도 건넸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을 내내 도토리를 한가득 모아 두고는, 어느 구멍에 넣어두었는지 잊어, 결국 다른 동물들에게 양보하는 다람쥐 같은 사람. 물론 의도성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다람쥐만큼 귀여우니 이만하면 적당한 비유이지 않은가.
낯간지럽게 그의 장점을 쥐어짜 냈지만, 그는 내가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남자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좋은 물건이 저렴하게 팔면 일단 사고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집에 물건을 한가득 쌓아 놓고는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결국 내가 다 훔쳐 쓰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또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고안해 냈는지도 알고 싶다.
다음 화에서는 내가 그와 공존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살짝 예고를 하자면 우리는 계약서를 썼다. 말하자면 부부 금전 계약서인 것이다. 미니멀리스트인 선택형 짠순이와 맥시멀리스트인 애매한 짠돌이가 작성한 부부 금전 계약서를 다음 주에 낱낱이 밝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