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짠순이가 유럽 가서 웨딩 스냅 찍은 후기

by 이어진

자고로 가성비란 한 번의 행위만으로 2개 이상의 목적'들'을 달성할 수 있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누가 한 말이냐면, 내가 한 말이다. 옛 속담으로 치면 일석이조,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꿩 먹고 알 먹고...가 되시겠는데, 이 관용어들은 그저 듣기만 해도 괜히 이득을 본 것 같이 묘하게 기분이 좋다. 꼭 관용어가 아니더라도 "A한 김에 B하자."라는 말은 내가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표현이다. 예를들면 '친구들 만나러 카페 가는 김에, 좀만 일찍 가서 책 읽고 있을까?'가 될 수 있겠다. 꼭 돈을 아끼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하나의 행동으로 두 개 이상의 목적을 달성하면 괜스레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사용했다는 기분이 든다. (물론 돈을 아끼려는 목적이 제일 크긴 하다.)


이번 글은 극강의 가성비충, 극악의 효율충이 '해외여행 간 김에, 웨딩스냅까지 찍고 온' 이야기다. 어째서 짧은 여행 시간을 할애해가면서 웨딩스냅을 찍기로 결심했는지, 기어코 돈을 아꼈는지 등에 대한 다소 궁색맞은 이야기들을 적어보겠다.


남자친구와 나는 교사 커플이다. 다시말해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커플이다.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은 많지만, 마음 가는 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돈이 없었다. 그리하여 해외 여행을 가자는 말은 여러 번 나왔지만 실행에 옮기기엔 크나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 대체 짠순이가 어쩐 일로 용기를 먹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뼈가 아픈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말해보자면, 남자친구와 잠깐 헤어졌던 어느 겨울날 외롭고 답답한 마음에 '에라 모르겠다'하며 비행기 표를 질러버렸고...그 사실을 알게 된 남자친구가 '저 금쪽이를 어떻게 혼자 보내'하며 같은 비행기편을 따라 구매해버린... 그렇고 그런 뻔한 스토리다. 한마디로 우당탕탕. 우리는 그렇게 우당탕탕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가게 되었다.


막상 비행기표를 끊고 나니 단전에서부터 짠순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가성비 좋은 숙소, 미리 예약하면 할인해주는 관광지, 특정 시간에 무료 입장이 가능한 명소 등등... 스포(스페인, 포르투갈)는 공부하면 할 수록 짠순해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나라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신경쓴 것은 웨딩스냅 촬영이었다.

보통 웨딩스냅이라 함은 스튜디오에서 예쁘게 차려입은 상태로 찍는 사진과 구분되는, 순간적인 자연스러움을 포착하는 사진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 정돈되지 않은 자세, 빵 터진 웃음, 인물만큼이나 아름다운 배경 등이 웨딩스냅을 설명할 때 적합한 표현들이다. 그중 특히 해외 웨딩 스냅은 파리의 에펠탑과 같이 유명한 랜드마크에서 1~3시간 동안 진행되는 촬영을 의미한다.

사실 말이 1~3시간이지, 이동시간 등을 다 합치면 여행 일정의 반나절 정도는 우습게 잡아먹는다. 시간은 고사하더라도 촬영 일정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면 어쨌든 심적으로 부담이다. 행동에 제약도 많다. 전부 셀프로 준비해야 하기에 준비물도 산더미다. 안그래도 비좁은 캐리어에 촬영용 옷과 구두를 꾸깃꾸깃 넣어야 하고, 다리미와 같이 사진만 아니면 절대 챙기지 않는 것이 상책인 물건들까지 잊지 않고 챙겨야 한다. 촬영 전까지 마음 놓고 술을 마시기도 힘들다. 여행이란 합법적으로 매일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날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커플은 대만족했다. 만약 내 친언니가 스튜디오 촬영을 알아본다면, 덮어놓고 웨딩스냅을 추천해줄 정도로. 지금부터는 이렇게 좋은 웨딩스냅. 당신도 해보세요하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나와 남자친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각각 2시간, 3시간씩 웨딩스냅 촬영을 했다. 사진 작가님은 인스타와 블로그를 통해 후기를 꼼꼼히 살펴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분들을 섭외했다.)


웨딩스냅의 가장 큰 장점은 결과물이 예쁘다는 것이다. 그냥 예쁜 게 아니라 너무 예쁘다. 사실 이것말고 다른 이유는 더 필요 없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표정과 포즈에 자신이 없어도 걱정하지 마시라. 나는 거들뿐. 나머지는 유럽이 알아서 다 해준다. 나와 남자친구는 두 도시에서 촬영을 했는데 똑같은 옷에 똑같은 미소, 똑같은 포즈를 취했지만 결과물은 전혀 달랐다. 사진 작가님이 갈고 닦은 개성이나 보정 취향을 고려하더라도 역시 다르다. 바르셀로나만의 분위기가, 포르투만의 공기가 사진을 완성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꼭 두 도시가 아니더라도, 어떤 도시든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사진 작가님의 노련함이 만나면... 내가 어떤지는 하나도 중요해지지 않는다.

게다가 나와 남자친구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사진을 안 찍고, 못 찍는다. 그러니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 뿐이라던데..'라거나 '우리가 언제 또 바르셀로나를! 언제 또 포르투를!' 하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조바심 내지 억척스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도 있다. 우리처럼 사진을 못 찍는 커플이라면 투떰스업 강추다.


다음은 어디까지나 취향의 영역인데, 나는 사진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한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정제된, 깔끔하게 꾸며진, 그러나 약간은 인위적인 느낌은 괜히 간지럽다. 좀 느끼한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최선을 다 한 것 같은 그 감각이 내게는 부담스러운가보다. 그것보다는 갓 튀긴 팝콘처럼 통통 튀는 느낌의 스냅 촬영이 더 나답다고 생각한다. 특유의 생동감과 수수함이 조금 더 우리답다. 비록 원본으로 받은 3000여장의 사진 중 건질 만한 건 100장도 안 되긴 하지만. 나머지 2900장이 진짜 나인 것을..별 수 있나..싶다.


이번에도 역시 어디까지나 취향적인 주장이지만 스냅촬영은 오래 가는 사진이다. 오래오래 두고 꺼내보아도 반가운 사진이다. 왜냐하면 배경과 내가 반씩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스튜디오 촬영은 인물이 백퍼센트 주인공이다. 그렇다는 말은 인물이 하고 있는 화장과 착장의 비중도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화장과 옷은 당시엔 아무리 예뻐보여도 5년만 지나면 촌스럽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튜디오도 유행이 있다. 어떤 해에는 화려한 스튜디오가 대유행이고, 그 다음은 심플하고 깔끔한 스튜디오가 유행이 된다. 어떤 유행이든 간에 시간이 지나면 한물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스냅 촬영은 다르다. 스냅 사진은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기에, 보는 이의 집중력이 풍경으로도 분산이 된다. 그러면 인물의 화장과 옷이 조금 촌스러워도 괜찮다. 게다가 풍경은 유행을 타지도 않는다. 사진에 촌스러워질 틈을 주지 않으면 시간의 풍화를 잘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실컷 개인적이고, 취향적인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객관적인 이유를 적을 차례다. 객관적으로 소신발언하자면 스드메가 너무 비싸다. 이름 난 스드메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고 그런 업체라고 소개받은 곳도 내겐 지나치다. 나는 그렇게 비싼 가격을 태울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공장식 촬영에 결과물도 획일화 되어있다는 기혼자 친구들의 후기를 들으며 그간 반항심을 잔뜩 키워오기도 했다.

나는 가격을 높이기 보단, 자유도를 높이고 싶었다. 남들과 다르면 일단 좋아보이는 쓸데없는 고집이 여기서도 발동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풍경이 좋은 장소. 심플하고 슴슴해서 유행 타지 않을 드레스. 내 젊은 얼굴을 남긴 깨끗한 메이크업을 원했다. 그리하여 나는 비싼 스드메 대신 높은 자유도를 선택했고 그결과 드레스 2벌과 구두, 귀걸이, 목걸이를 모두 합쳐서 10만원 초반대로 해결할 수 있었다.

드레스는 흰색과 검은색을 1벌씩 샀는데 모두 당근 했다. 흰색은 6만원, 검은색은 1만5천원, 구두는 3만원이었다. 유일하게 악세사리만 지그재그를 뒤져 1만원 안팍인 것으로 샀다. 화장과 헤어는 전부 셀프로 했다. 드레스와 각종 악세사리, 화장, 헤어를 선택할 때 있어서 나의 신념은 심플하고 슴슴한 것을 고르자는 것이었다. 디테일이 많을 수록, 화려하고 독특할 수록, 요즘 스타일일수록 나중에 촌스러워 보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슴슴할지라도 정석에 가까운 것일수록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을 것 같았다. 어쩌면 슴슴함은 짠순이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0살쯤 더 먹으면 '그때 왜 그렇게 궁색맞았니...'하고 자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29살의 나는 대만족했다. 10만원으로 드레스를 끝내버리고, 셀프로 화장과 메이크업을 다 해치워도 만족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외 웨딩 스냅을 찍었기 때문이다. 해외 웨딩 스냅에서는 내가 주인공일 필요가 없다. 내가 화려할 필요가 없다. 난 그저 느낌만 내어주면 될 뿐이다. 남은 건 유럽이 알아서... 바르셀로나가 알아서... 포르투가 알아서...다 해주었다. 만약 당신도 해외여행과 웨딩 촬영을 모두 계획하고 있다면, 여행 가는 김에 스냅까지 찍고 오면 어떨까?


끝으로 웨딩 스냅 결과물을 살짝 올려본다. 쑥쓰럽지만 이것이 3000장 중에서 그나마 건져낸 것이라는 사실.

참고)

- 바르셀로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고딕지구에서 총 2시간 촬영했다.

- 포르투는 상벤투역과 동루이스 다리 근처에서 총 3시간 촬영했다.

- 촬영비는 남자친구가 전액 부담해주었다. 최형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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