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시집이 열어젖힌 것

by 문지

글이 너무 적나라하다는 게 문제다. 조금은 감추고 싶다.


나는 크게 관심이 없고 즐기지도 않지만, 언젠가 내가 반드시 한 번은 즐기고야 말 분야가 있다. 그중 하나가 시였다. 나는 지난주 쯤에 마음에 드는 에세이를 먼저 찾았다. 그런데 글이 너무 웃겼다. 기어이 얼굴 근육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지금의 자리에 정확히 위치할 때에야 가능한 웃음. 별 수 없이 친구에게 이거 웃기다고 말하고는, 책을 들춰보며, 페이지를 넘기며, 계속 훑어보다 결국 그냥 읽어봐, 하고 넘겨주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각보다 모든 글이 다 웃겼던 건 아니었지만 가볍고 밀도 있게 읽었고, 아주 오랜만에 책을 애지중지 아끼며 머리맡에 두고 잤다.


문제는 작가가 본래 시인이라는 것이다. 시가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처들었다. 올 것이 왔군. 이제 내가 나설 차례야. 나는 서점으로 달려가 시집 코너에 갔다. 작가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샀을까, 아마 제목이 명사라서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노란 시집이 손에 착 감겼다. 얇고 가벼운 시집 한 권.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 재밌어서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어떤 시의 제목이 개웃기다고 했다. 나는 사실 다른 시가 더 머릿속에 남았었는데 이젠 개웃긴 제목이 자꾸 생각난다. 이상하고 알쏭달쏭했다. 왜 좋은지 모르겠지만 좋다는 건 분명했다. 시가 끝나고, 작품 해설 대신 역자의 말이라고 실린 (그러나 사실은 작가 본인이 쓴) 부분을 세 장쯤 남기고 출근을 했다. 가는 길에 가방에서 물이 샜다. 노트 한 장 적셔보기가 드문 나로선 몹시 놀라며 급히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노란 시집은 마지막 순간에 빼고 왔다는 걸 알고 안심했다.


몇 년 전 서점에서 시집을 사곤 곧 환불을 받았다. 사치 같았던 그 시부터 다시 읽어본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감히 시를 써요, 말하지 못했다. 숨고 싶지만 드러내고 싶을 때 화면엔 줄바꿈이 많았고, 문장은 끝나지 않고 애매하게 이어졌다. 시처럼 보이게 하려고 은근슬쩍 문장의 끄트머리를 바꾸었다가, 나만 아는 문장을 적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일 없는 글들이 쌓여갔고, 쓸 문장들을 찾아 헤맸다. 시집들을 거친다. 비밀스러운 글자를 쓰면서,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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