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서울 도심 호텔 로비에서 두 기업 대표가 처음 만났다.
글로벌 제약사 아시아 총괄과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 대표. 계약 규모 3억 달러.
악수를 세 번 했다.
첫 번째는 로비 입구에서. 제약사 대표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스타트업 대표는 양손으로 받았다.
두 번째는 회의실 들어가기 직전. 또 악수. 또 양손.
세 번째는 회의 끝나고. 제약사 대표가 다시 손 내밀었고, 스타트업 대표는 허리까지 숙이며 양손으로 받았다.
회의는 괜찮았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6개월 뒤 계약은 성사됐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요구한 조건 중 실제로 관철된 건 30%가 안 됐다.
제약사 쪽 협상 담당자가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첫날부터 느낌이 왔어요. 이쪽은 우리를 너무 원하고 있구나."
회의 내용이 아니었다. 그날 처음 만났을 때 장면.
양손 악수는 한국에서 예의다.
상대 존중의 표시. 연장자나 직급 높은 사람 앞에서는 특히.
그런데 협상 테이블에서는 이 신호가 다르게 읽힌다.
한 손 악수가 대등함이라면, 양손 악수는 위계를 인정하는 쪽. 나이나 직급 차이라면 문제없다. 하지만 거래 관계에서는.
한 번은 예의.
두 번은 습관.
세 번은 신호가 된다.
"당신이 선택하는 쪽, 나는 선택받는 쪽."
지난 가을.
대기업 구매팀 임원이 말했다.
"협력사 대표들이 악수할 때 자꾸 양손을 쓰는데요. 저는 그게 좀 불편해요."
매번 그러냐고 물었다.
"네. 계약 건이 없을 때도요."
"신뢰가 잘 안 가요. 뭔가 부탁할 게 있다는 느낌부터 들어서요."
악수는 관계를 확인한다. 그런데 어떤 악수는 관계를 만들려는 시도로 읽힌다. 의외로 또렷하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악수가, 이미 형성된 관계를 확인하는가. 아니면 지금 관계를 설정하려는가.
오랜 파트너, 여러 번 함께 일한 상대, 이미 신뢰가 쌓인 관계. 양손 악수는 자연스럽다. 상대도 그 맥락을 안다.
하지만 첫 협상 자리.
계약이 걸린 미팅.
아직 관계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
반복되는 양손 악수는 의도를 설명하기 전에 신호부터 만든다.
상대가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 가능성이 높은가.
확신이 없다면, 한 손 악수가 안전하다. 상대가 먼저 양손을 쓴다면 그때 따라가면 된다. 한 번만.
예절인가, 신호인가.
최근 글로벌 컨설팅 펌이 서울 지사에 지침을 내렸다.
"한국 클라이언트 첫 접견. 악수는 한 손. 상대가 먼저 양손을 쓸 경우에만 따라가되, 반복은 금지."
왜냐고 묻자, 지사장이 답했다.
"예의 지킨다고 양손 악수했는데, 클라이언트가 오히려 불편해했어요. 왜 우리한테 그러냐고."
예의는 맥락이다. 어떤 자리에선 존중, 어떤 자리에선 부담.
악수는 3초면 끝난다.
그 3초가, 이후 몇 달의 협상 구도를 만들기도 한다.
주도권은 계약서에 안 쓴다.
회의실 배치에도, 제안서에도 없다.
첫 악수에서, 누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어떻게 받았는지. 거기 이미 신호로 있다.
악수 하나로 다 결정되는 건 아니다. 당연히.
하지만 협상 테이블 사람들은 이 신호를 읽는다. 그리고 대부분, 점검되지 않는다.
그래서 협상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면 우리는 회의 내용을 다시 본다. 논리 점검, 자료 보완.
신호가 어긋난 건 그보다 훨씬 전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