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낙인찍은 아이를 믿어준 엄마, 에디슨3

벗겨지지 않는 안경이야기

by 맘체인저

1. '하얗게 더 하얗게'

앞서 나눴던 것은 종이보다 먼저 도착한 생각이었다. 이제, 다시 안경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때때로 검은 안경, 마치 선글라스를 쓴 채 아이를 바라본다. 그 안경을 통해 보면 아이의 모습은 조금 더 검게 보인다. 조금 더 지저분하게, 조금 더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닦기 시작한다. 잘못된 습관을 바꿔주려고 하고, 올바른것을 가르치기 위해 훈육채널을 항상듣는다. 이 아이가 조금 더 나아지기를, 조금 더 괜찮아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검은 안경을 쓰고 조금 더 ‘하얗게’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구섞구섞을 닦아본다.

그 마음은 가볍지 않다. 대충 넘기지 못해서,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화가난다. 그래서 더 애써 닦는다. 닦고, 또 닦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상하게도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지 않는 느낌이 든다. 더 단정하게 만들고 싶은데, 더 괜찮은 모습으로 이끌고 싶은데, 그럴수록 아이도 지치고 엄마도 지쳐간다.


지금까지 몰랐던 것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이일까, 아니면 내가 쓰고 있는 이 안경일까. 검은 안경을 쓰고 있으면 아이의 모습은 원래보다 더 검게 보이고, 우리는 그 아이를 하얗게 만들어야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아무리 닦아도 아이를 완전히 하얗게 만들 수는 없다. 처음부터 검게 보이게 만든 것이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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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아에 있어서 '최악의 결과'는 해석이다.

이 안경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우리가 아이를 바라볼 때 마음속에서 조용히 작동하는 하나의 해석이다.

해석은 아이의 행동에 의미를 붙이고, 그 의미를 따라 감정을 움직이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 미리 그려낸다.

아이가 게임을 하고있는 모습만 봐도 ‘이러다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고, 밥을 흘리면 ‘이 모습이 계속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따라온다.


그 순간, 아이의 모습 위에 검은 안경이 한 겹 더 얹힌다. 우리는 아이를 바꾸려 하기 전에 이미 아이를 ‘고쳐야 할 상태’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해석은 어느새 우리의 말과 태도가 되어 아이에게 닿는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훈육 방식을 찾아 헤매고 공감 육아를 배우며 좋은 말을 따라 해보지만 여전히 잘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고쳐보겠다는 해석에서 이미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에디슨의 어머니, 낸시 에디슨은 조금 다른 자리에 서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학 통지서를 받아든 순간조차, 그것을 아이를 단정해야 하는 ‘최악의 결과’로 받아들이기보다 아직 다르게 읽어볼 수 있는 하나의 장면으로 남겨두었다.


실패와 실험을 문제로 결론짓기보다 과정으로 읽어내는 시선, 그 시선 속에서 아이는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어가도 되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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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상을 바꾼 11명의 엄마가 쓴 안경

육아는 아이를 얼마나 잘 고치느냐가 아니라, 어떤 안경을 쓰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와 나 사이의 세계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지금 당신의 안경은 어떤 색을 띠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안경을 통해 본 아이의 모습은 실제의 아이와 얼마나 닮아 있을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안경으로 아이를 바라본 엄마들의 이야기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와 연결되는 순간은 전혀 다르게 만들어진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꾼 11명의 아이들 뒤에 있었던, ‘다른 안경’을 쓰고 아이를 바라보았던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안경은 아이를 더 빨리 고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스스로 자라게 두는 시선에 더 가까웠다.그 다름이 아이의 자존감과 호기심, 그리고 마음의 힘을 키우는 시작이 되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유난히 감정이 깊고 예민했던 한 아이와, 그 순간을 고쳐야 할 것으로 보지 않고

전혀 다른 의미로 읽어낸 한 엄마의 시선을 만나게 된다.


그 아이는 훗날 오프라 윈프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혹시 우리가 ‘최악의 순간’이라고 부르는 장면들조차, 어떤 안경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남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글을 통해 지금까지 너무 애써 아이를 닦아왔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이 조금은 덜 아프고 조금은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본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