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보다 먼저도착하는 생각
종이보다 먼저 도착하는 생각
1편에서 우리는 한 장면을 보았다.
퇴학 통지서를 받아 든 어머니.
그리고 그 종이를 조용히 접어 넣던 손.
토마스 에디슨은 학교를 떠났다.
하지만 어쩌면 그날 진짜로 중요했던 건
학교의 결정이 아니라
그 종이를 읽는 한 사람의 기준이었는지도 모른다.
종이보다 먼저 도착하는 생각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우리는 겉으로는 침착해 보여도
안에서는 수많은 문장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이러다 뒤처지면 어떡하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지금이라도 강하게 잡아야 하나.’
사건은 하나인데
마음은 이미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보다 먼저 반응한다.
말이 나가고
표정이 굳고
그리고 후회한다.
나는 다르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왜
항상 비슷한 문장이 먼저 튀어나올까.
그 문장은
오늘 만들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분명 안다.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실수 하나로 아이를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도 막상 그 순간이 오면
아는 대로 하지 못한다.
지금 내가 세운 다짐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나를 먼저 움직이는 오래된 기준이 있다.
평소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아이의 사건이 나를 건드리는 순간,
그 기준은 자동으로 작동한다.
어린 시절 들었던 말들.
비교 속에서 배운 순위.
실패했을 때 느꼈던 작아짐.
그 시간들이 압축되어
하나의 문장으로 튀어나온다.
그래서 아이의 실수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내 안의 오래된 시간을 깨우는 장면이 된다.
육아를 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주 다양하다.
아이의 발달 단계에 대한 이해, 육아의 여러 상황에서 필요한 대화법,
그리고 아이의 기질을 파악하는 것까지 그렇다.
요즘은 육아 정보도 넘쳐난다.
책도 많고 강의도 많고 전문가의 조언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엄마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더 공부하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발달 단계도 공부하고,
기질도 공부하고,
대화법도 연습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히 많이 배우고 있는데
왜 육아는 여전히 이렇게 힘들까?”
육아에는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 안경을 써본 경험이 있는가?
처음 안경을 쓰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멀리 있는 글자가 또렷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색이 조금 어둡게 보이기도 한다.
선글라스를 끼면
세상이 전체적으로 어두워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어버린다.
그저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보이는 거구나.”
사실은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이 세상을
그렇게 보이게 만든 것인데도 말이다.
육아도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
아이의 행동을 바라볼 때
엄마들은 각자 다른 장면을 본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보고
어떤 엄마는 아이의 문제를 본다.
아이의 행동이 달라서가 아니라
엄마가 쓰고 있는 안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쓰고 있는 그 안경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