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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골절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399694

생애 첫 골절                                                                   정정화

  발가락이 부러졌다. 새끼발가락이다. 그 작은 발가락이 부러졌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형외과 의사는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반깁스를 해줬다. 반깁스는 발과 다리 모양의 부목을 압박붕대로 감기에 어느 정도 여유가 느껴져서 움직일 때 불안이 덜했다. 하지만, 기온이 올라가는 날씨에 발바닥에 땀이 나 힘들었고, 조금 움직이고 나면 발이 화끈거리고 아렸다.

  일주일이 지나 정기검진차 병원에 갔더니, 엑스레이 화면을 보던 의사는 통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통깁스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없어도 반깁스보다 강도가 높을 거라 예상이 됐다. 지금도 발이 답답해 힘든데 반깁스하고 있으면 안 되냐는 질문에, 간호사는 요즘 통깁스는 재료가 잘 나와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통깁스를 해야 뼈가 제자리에 잘 자리 잡는다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처방을 내렸다. 포기 반, 호기심 반인 심정으로 처치실로 갔다. 의사는 그물망 같은 걸 신기고, 부드러운 천으로 된 걸 다시 신겼다. 초록색 그물 모양의 물건에 물을 묻혀서 천 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모양을 잡아가며 무릎뼈 아랫부분에서 시작해 꼼꼼하게 감아 내려갔다. 물에 젖었을 때 처음에는 무르던 것이 어느 순간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의사는 발이 있는 부분을 제일 신경 써서 성형을 했다. 디딜 때 편한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성형을 다 마치고 나자 석고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걸을 때마다 무릎 아래가 걸리는 느낌에 절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2차 골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했다. 병원에 갈 때는 콜택시를 이용했다. 통깁스는 높낮이가 다른 곳을 디디는 게 힘들었고, 다칠까 봐 걷는 게 조심스러웠다. 계단을 이용하거나 턱을 넘을 때면 뻗정다리가 방해를 했다. 사느라 몸과 마음을 괴롭혔던 시간이 떠올랐다. 최선을 다하는 것도 적정선이 필요한데 무리를 하다 보니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몸이 한 곳만 불편해도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무리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 아프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딱딱한 통깁스는 사람의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했다. 느리게, 균형 잡고 걸어야 했다. 그러려면 어떤 일이든 빨리할 수가 없었다.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던 나는 처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다리 때문에 불안이 높아졌다. 한시적인 불편이지만, 견디기 힘들었다. 통깁스 후 처음에는 입맛까지 떨어져 몸무게가 빠졌다. 다이어트를 하려고 해도 빠지지 않던 살이 저절로 빠지다니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싶었다. 어쩔 수 없어 늦춘 발걸음 때문에 불안했지만, 이 시간을 잘 견뎌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고요히 집에 있으니 바깥으로 향하던 마음이 안으로 들어왔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도 주어졌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현상은 있고, 그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이미 어떤 상황에 처해졌다면,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낼 일이 남았을 뿐이다. 세상 짐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고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통깁스한 지 5일 차부터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창밖에 펼쳐진 푸르른 봄날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좀 쉬어가라는 삶의 복병, 느리게 진행되는 삶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스트레스를 받고 바둥댔다. 그날부터 상황에 맞춰서 내 행동을 조정하게 됐다. 느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고 주문을 걸었다.

  평소에 조심성이 많은 성격인 나는 어린 시절에도 골절이 된 적이 없었다. 내가 골절됐다고 하니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실제로 조심성과는 상관없이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골절이 됐다. 균형을 못 잡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었다. 꼭 해야 한다는 일도 마음에 담지 않았다. 그 시간에 못 하면 다음에 하면 된다고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시간이 지나면 뼈가 붙을 거라는 희망이 있으니까 그래도 견딜 만한 일이다. 직선의 길만 옳다고 여기며 달려가는 내게 둘러 가는 길도 있다고, 느리게 걷는 법을 알려준 계기가 됐다.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이다. 불행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 나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무리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잘 붙들어 매야겠다.

#정정화 #소설가 #칼럼 # 생애첫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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