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caa May 17. 2022

다산의 공감 연습2(맹자11)

11장 주서여패와 격몽요결/도성선언필칭요순道性善言必稱堯舜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주서여패朱書餘佩》라는 책을 만들어 보라는 제안이 담긴 내용이 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지난해에 내가 너에게 《고려사》에서 요긴한 말을 뽑으라고 하였는데, 지금 이 일이 네게 있어 시급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한 부部의 좋은 책이 될 규모로써 너에게 부쳐 보내니, 너는 아무쪼록 이에 의거하여 《주자대전》 중에서 뽑아 책을 완성하여 뒤에 오는 인편에 보내도록 하여라. 내가 그 가부可否를 감정하겠다. 책이 완성되면 모름지기 좋은 종이에 깨끗이 등서하고 내 서문序文을 책머리에 실을 것이니, 항상 책상 위에 두고 너희 형제들이 아침저녁으로 외고 익혀야 할 것이다.
前年吾敎汝, 就高麗史抄取要緊語, 今覺此事, 非汝所急, 今以一部好書規模寄汝去, 汝須依此, 就朱子全書中抄取成編, 亦於後便寄來也. 吾當鑒定可否. 書成後, 須用好紙淨寫, 以吾序弁其首, 常置案上, 兄弟朝夕誦習可也.
《여유당전서》 <기양아寄兩兒>     


 정약용은 직전 편지에서 《고려사高麗史》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 책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는데, 다시 편지를 보내 《고려사》보다 《주자대전朱子大全》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더 급한 것 같다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다. 정약용은 아들들이 이 작업을 마치면 서문을 보낼 계획이었는데,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에는 책의 제목과 목차와 분량까지 정하여 알려주고 있다.     


책 이름은 《주서여패》라 하라. 편목篇目은 12조條로 할 것이니, 1조는 ‘뜻을 세움’, 2조는 ‘옛 관습을 고침’, 3조는 ‘방심을 거두어 들임’, 4조는 ‘용의를 검속함’, 5조는 ‘책을 읽음’, 6조는 ‘효도와 우애를 돈독히 함’, 7조는 ‘가정생활’, 8조는 ‘집안끼리 화목함’, 9조는 ‘사람을 접대함’, 10조는 ‘사회생활’, 11조는 ‘절약과 검소함을 숭상함’, 12조는 ‘이단을 멀리함’이라 하라.
書名曰朱書余佩. 篇目十二條. 一曰立志. 二曰革舊習. 三曰收放心. 四曰檢容儀. 五曰讀書. 六曰敦孝友. 七曰居家. 八曰睦族. 九曰接人. 十曰處世. 十一曰崇節儉. 十二曰遠異端.  

   

 책 이름과 12이라는 숫자만 보면, 이것과 비슷한 책을 금방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는데,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이것이 완전히 독창적인 책이 아니라 율곡栗谷의 책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출처를 밝힌다.     


이것은 대개 율곡의 《격몽요결》의 변례變例라 할 수 있다. 율곡은, 입지立志는 성인 배우기를 기약하는 것으로 뜻을 삼았다.
此蓋栗谷擊蒙要訣之變例者也。栗谷以立志。爲學聖人自期爲志。    

 

 정약용은 성리학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그렇다고 조선의 성리학 전통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아들들에게도 계속해서 주자학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숙지하도록 당부했는데, 모범을 삼았던 것은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이었다. 

 율곡의 대표작으로 첫 번째로 꼽는 것은 《성학집요聖學輯要》이다. 이 책은 1575년 선조에게 올린 것으로 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圖》와 더불어 조선 초기 성리학의 대표업적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성학집요》는 10개의 그림으로 구성된 《성학십도》와 달리 꽤 두꺼운 분량을 가지고 있다. 중국 송대의 학자 진덕수陳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가 태조와 태종이 애독한 이후 조선 왕실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보는 전통이 있었는데, 《대학연의》는 《대학》에 여러 역사적 전거들을 붙여서 거질의 책이 되었기에 율곡이 그 대안으로 제시한 책이 《성학집요》였다.

 《대학연의》보다는 훨씬 많이 줄였지만 그렇다고 《성학집요》도 분량이 적은 책은 아니었다. 율곡이 《성학집요》를 올리고, 2년 뒤 해주에 있는 동안 율곡에게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선비들이 많아지자 율곡은 《성학집요》의 핵심요약판 책을 하나 더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격몽요결》이다. 《성학집요》는 《대학》의 기본 구성을 모방해 만들었는데, 《격몽요결》은 훨씬 심플하게 10개의 챕터로 구성했고 분량도 초학자들에게 부담되지 않는 정도의 책이었다. 이와 같이 여러 이점을 가진 덕분에 《격몽요결》은 율곡 당시에도 많이 전파가 되고, 왕실에서도 출간하기도 했는데, 정약용은 이러한 좋은 전통을 가진 《격몽요결》을 다시 한 번 활용해 새로운 책을 만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격몽요결》의 변례變例’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목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다산의 공감 연습2(맹자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