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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해 Nov 13. 2023

아홉수에 뼈저리게 배운 9가지 교훈

퇴사, 그리고 이직. 삶 2.0을 준비하며

나는 올해 29살이다.

2023년을 살면서 한 해동안 참 다양한 일을 겪었다.

특히 '아홉수'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조금은 모진 시간들도 많이 보낸 것 같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많은 찢어짐과 회복됨을 겪었고, 그 덕분에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얻었다.


많은 분들에게 사과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한 해이다.

나 스스로에게도 소박한 칭찬을 주고 싶다.


뭐 굉장한 고난을 겪은 것처럼 썼지만

한편으로는 퇴사하고 엄청 놀았고, 하고 싶은거 다 해버린 즐거운 시간이었기도 하다.


여튼 30대를 살아가기에 앞서

지나온 나의 20대를 정리하고, 10년을 녹여서 제련한 마음가짐을 몇 가지 짧게 남겨놓고자 한다.


아홉가지를 적어놓고 보니 자기계발서에서 봤던 케케묵은 이야기들과 매우 똑같아서 민망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사람은 다 비슷하게 느끼나보다.




1. 동화속에 살지 않기.


시작부터 좀 차갑다.

하지만 그냥 외워야 하더라.

우리는 차가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애석하지만, 세상은 모든 이가 행복하도록 예쁘게 세팅되어있지 않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트인다.

이해가 안 돼서 욕하던 것들이 하나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는 내 생각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세상의 논리를 조금이라도 깨우친 뒤엔 한 사안을 두고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추론이 가능해진다.


반면, 차가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는 사람은 인지의 왜곡이 생긴다.

당장은 우아해보일지라도 길게 보면 크게 엇나간다.

사실이 아닌 지극히 동화적인 결론을 여러번 내리게 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현실이라는 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보자.

경험상 세상은 그렇게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인간과 비슷한 36.5도씨이다.




2. 나를 공부하기.


결국 내 몸뚱이를 잘 간수하고 10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나라는 객체를 아주 잘 이해해야한다.

자기객관화. 내면의 겹을 알아가기. 나 스스로 나를 속이지 않기.

일기장에서만큼은 조금 천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솔직해지기.

스스로 Why를 끊임없이 묻기.

올해 크게 깨달은 한 가지는 내 특성과 장단점이 대부분 어린시절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나를 알아가는 것은 삶에서 가장 가장 가장 중요하다.

내가 정의하는 삶은 세상과 나의 핏을 맞춰가는 과정이다.

이 핏을 아주 잘 맞춘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산다.


세상은 살아가면서 자연히 공부가 되는데

'나'라는 객체는 의식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모를 수 있다.

나 하나만 열심히 파도 많은 것이 명료해진다.


우선 뚜렷한 목표가 생긴다. 가야할 길이 보인다.

나에게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보인다.

내가 유독 잘 해낼 수 있는 뾰족한 달성 방법이 생각나고, 그 길이 멀어보여도 묵묵히 갈 이유가 생긴다.


내가 가면 안 되는 길도 명확해진다.

한계와 단점을 알게 되면 자신이 어떤 스트레스에 취약한지, 어떤 것을 남들보다 현저히 못하는지 알게 된다.

대신 작은 시행착오를 겪어도 상처받지 않는 의연함이 생긴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음을 배운다.

불필요한 아쉬움이 안 생기고, 열등감을 끌어안지 않는다.

세상탓. 남탓을 하지 않고 본인에게서 문제를 찾아낸다. 나를 고쳐쓴다.

남과 자신을 함부로 비교하지 않으며, 노이즈에 휘둘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람의 길과 내 길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




3. 백을 노력해야 오육십 정도의 성취가 생긴다.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도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100의 성과를 바라면 200, 300의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필연적으로 내가 한 노력 중에는 세상이 원하지 않아 빗나가는 것들이 많이 생긴다.

빗나간 노력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떨어져나간다.

운이라고 읽는다.


데모데이나 컨퍼런스에 가서 스타트업 IR 피칭을 보면

정말 목숨 내놓고 사업을 일으키려 노력하는 대표님들을 본다.

통계적으로 그 분들 중 90%는 3년 뒤에 사업이 망하거나 그만두신다고 한다.

그 분들만큼 일에 노력을 쏟아붓는 사람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원하지 않아서, 규제가 생겨서, 중요 인력이 이탈해서, 번아웃이 와서

또는 그저 운이 없어서 사업이 망한다.


참 어렵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노력한만큼 성취가 없어도 상처받지 않고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충분히 노력하되 누가 몰라줘도 될만큼 그 과정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지속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반대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고도 열매를 따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아주 철저하게 버려야 한다.




4. 겸손함. 압도적인 재능은 없다.


능력의 차등은 있을지라도 아웃라이어가 태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무언가를 아무리 잘해도, 그 정도와 비슷한 레벨의 다른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평준화이다.

겸손함은 능력의 평준화를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릴 땐 나의 재능과 잠재력이 폭발할 분야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곳이 없다는 것을 안다.

어떤 곳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이들을 무시한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애석하지만 어느 날 나의 재능이 갑자기 발현되어 드라마틱한 성공을 하는 일은 없다.

본인이 특별하다는 동화적인 착각은 오만함으로 이어지고, 큰 실패를 낳는다.


모든 이에게 주어진 리소스,

몸 1개 + 시간 100년은 똑같다.

내가 A에 시간을 투자한만큼, 누군가는 B, C, D, 또다른 어딘가에 시간을 투자한다.

 

그럼 결국 주어진 몸과 시간을 아주 잘 활용하는것이 경쟁력이 된다.

꾸준히 실력과 전문성을 쌓고, 나의 뾰족함을 만들고,

유익한 네트워크를 쌓고, 세상의 생리를 아주 잘 이해하여 최선의 나를 선보이는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겸손한 마인드가 필수이다.


실제로 1명의 뛰어난 재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은 흔치 않다.

성공에는 많은 사람의 기여가 필요하고, 아주 많은 노력이 부어져야 한다.

그래서 어찌보면 겸손은 자기객관화가 되는 사람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덕목이다.


많은 경우, 겸손하지 않으면 큰 실수를 하거나 사람들과 매끄럽게 협업하지 못한다.

본인이 하드캐리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높은 확률로 착각인데, 이러한 태도가 나머지 겸손한 사람들의 협업까지 망친다.




5. 진심어린 노력으로 비빌 수 있다.


4번과 일맥상통한다.

사람의 능력은 상당부분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진심어린 노력을 쏟아부으면 차별화된다. 좋은 성과가 뒤따른다.

실력과 무관하게 노력만으로도 웬만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정말이지 다행이다.


단, 남들이 하지 않았던 만큼의 큰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심'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마음, 진정으로 해내고 싶은 마음은 그 사람의 압도적인 노력의 양으로 환산되어 나타난다.

다른 곳에 분산되지 않고 한 곳에 집중 투자하는 힘을 만들어낸다.

이는 리스크를 동반하지만 그마저 잊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진심은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닿는다.

세상이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노력과 열정에 세상이 속아버린다.


단적인 예로,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이성이 나를 좋다고 어필하며 진심어린 노력을 쏟아부으면

그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 노력은 긍정 편향을 만들어낸다.


다행히도 우리의 노력은 세상에서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6. 책임. 모든 건 사람이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허술하다.

대부분의 일은 기계나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땐 능력있는 어른들이 세상을 굉장히 촘촘하게 체계화했을 것이라 믿었다.

시스템이 오차없이 착착 해낼 것이라는 믿음. 그런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근데 알고보면 세상은 사람이 굴린다.

많은 것들이 사람에 대한 믿음, 즉 신용에 기반하여 돌아간다.

그리고 누군가 그 믿음을 어기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세상은 금방 이가 하나 빠진다.

쉽게 고장난다.


은행어플을 켜서 입금을 하면 그 사람에게 발송될 것이라는 믿음.

내가 대출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았으면 당연히 대출금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

내가 투자한 우량회사는 당분간 문제 없을 것이라는 믿음.

내 아이를 보낸 어린이집의 선생님은 아주 상냥하고 잘 케어해줄 것이라는 믿음.

나의 수술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안전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


이는 어이없게도 한 순간에 깨진다.

누군가의 부도덕으로, 누군가의 실수로, 누군가의 악의로 언제든지 어긋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의 책임은 중요하다.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 것만큼이나 사회 구성원이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서 책임의 가치가 대두된다.

책임은 불완전한 인간으로 하여금 일을 똑바로 하게 만드는 가치이다.

사회적으로 합의한 규칙을 어기지 않고, 맡은 본분을 다하는 것.

이는 생각보다 소중한 가치이다. 딱히 대체할 수 있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우리는 믿음을 기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멋있고, 그 자체로 신망받는다.

반면에 책임감 없이도 좋은 성과를 내거나, 주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나는 평생동안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7.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고민과 실행의 적정 비율은 2:8 이라고 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보통 사람은 고민의 비율이 더 높다.

지금도 실행의 비율을 늘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어렵다.


세상은 아주 잘 체계화되어 있거나, 이론으로 잘 정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2차 정보와 논리적인 추론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건 아주 극히 일부이다.

연역적으로 알아낸 건 반쪽 짜리 정보이다. (실은 반쪽도 안된다)


문제는 반쪽 짜리 정보로 짜깁기한 추론은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반만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위험하다.


결국은 100%를 만들기 위해 직접 부딪혀서 1차 정보와 직관을 얻어내야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알려면 직접 그 곳에 있어봐야 감이 생긴다.

감이라는 건 막연한 것이 아니다. 감각을 통해 얻어낸 생생한 데이터이다.

아주 디테일하고 신뢰성 높은 정보를 포함하고,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을 이해시킨다.

모델링할 수 없는 다채로운 케이스를 알려준다. (진리의 케바케)


누군가를 알아가려면 사진보단 영상을 보는게 낫고, 영상보단 직접 만나보는 것이 좋다.

만나보기 전까진 그 사람을 절대 모른다. 반면 딱 1번 만나보면 아주 명확해진다.


다행히도 세상의 많은 의사결정은 2 Way-Door 이다.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언제든지 다시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실행하는 것은 늘 두렵고 귀찮은 일이지만

필요하면 내 몸을 기꺼이 그 곳으로 보낼 줄 알아야 한다.




8. 좋은 사람 곁에 두기.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스킵하기 전에 좋은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한 4가지만 짚고 넘어가겠다.


1.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기

2. 본인에게 나쁜 관계를 과감히 끊어내기 (그래야만 좋은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다)

3. 좋은 관계 또는 나쁜 관계만 있다.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라는건 없다.

4. 약한 연결(지인)을 많이 만들기







9. 결국 마음가짐. 몸가짐.


이것도 두말하면 입 아프다.

위에 말한 모든 것들이 좋은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갖춰야 가능하다.

내 정신과 육체를 소홀히 하면서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꼭 운동을 말하고, 명상을 말한다.


두뇌를 공부하고, 호르몬과 신체를 공부하고, 찬물 샤워를 논한다.






마치며. 모든 근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몸가짐을 똑바로 해야할까.

왜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세상에 무언가를 선보이고, 좋은 성과를 내고, 성공하고 싶어할까.

가족을 보필하고, 좋은 친구와 연인을 만나고, 쾌적한 집을 구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할까.

세상에서 무시받지 않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할까.


Why? Why? Why?

내가 꼬리질문을 해서 얻은 결론은 이렇다.


그 이유는 '나'라는 세상에 나온 태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 아이가 잘 살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근간이 흔들린다.

위에 써놓은 것들이 와닿지 않고, 저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동기가 사라지고, 삶의 목표가 희석된다.


그러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라도 자신을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삼십대를 살아갈 나를 꾸준히 사랑해주어야겠다.


삶의 버전 2.0을 재밌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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