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걸음

휘어진 다리로 멈추지 않는 삶을 보았다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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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다리가 그렇게 휘어 있는 줄 몰랐다.

4월의 토요일 오후, 장안동 둑길에 봄꽃 축제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친구 가게 개업에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요일에 오빠와 외할머니 기일 제사를 다녀오신 엄마는 금요일에 올라오셨고, 토요일에 들르라고 하셨다. 시골 고향에 다녀면 늘 뭔가를 바리바리 싸 오는 엄마였으니, 뭔가 주시려나 보다 생각했다. 남편이 약속이 있으니, 엄마집에 간김에 엄마랑 벚꽃 구경이나 다녀와야겠다 마음먹었다.

남은 곰탕 국물에 비비고 육개장을 넣어 국을 끓였다. 그 국에 남편과 밥을 말아 먹고, 엄마 집에 갔다. 엄마는 소파에 누워 계셨다. 여행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은 듯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부어 있었다. 벚꽃 축제에 유명한 가수들도 많이 온다며 가보자고 했다. 엄마는 저번 주에 학교 체육 시간에 넘어져 갈비뼈 부분이 아프다며 쉬어야겠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안방 침대에 가서 누우셨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엄마 옆에 앉아 내가 출간한 책을 읽어 드렸다. 엄마는 내 책을 읽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글씨가 너무 작아 읽기 힘들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 편을 읽고 나서 "엄마, 이 글 형진이가 읽으면 기분 나쁠까?" 묻기도 하고, 또 한 편을 읽고 나서 엄마 생각은 어떠냐고 묻기도 했다. 어느새 엄마는 대답이 없었고 드르렁드르렁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엄마 책꽂이에서 작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지은이 ‘정길자’ 엄마를 진형 고등학교에 소개해 준 국민학교 친구다. 책에는 6.25 시절, 네 살 때 인민군이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았던 이야기서부터 미용사를 거쳐 설렁탕 장사까지 많은 얘기가 있었다. 얇은 책이 무색할 정도로 더 많은 얘기가 압축되어 있었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튕겨져 나올 것만 같았다. 엄마 또래 사람들이 겪어온 이야기들이 마치 엄마의 이야기처럼 마음속에 그림으로 그려졌다. 우리 엄마도 이만큼 고생했겠구나.

거실에 들어왔던 서향 빛이 태양과 함께 뉘엿뉘엿 넘어갈때쯤 엄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엄마는 밥 먹고 장안동 둑길에 가보자고 했다.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어묵과 만두를 찾아 국을 끓였다. 수프를 넣고 파를 썰어 넣었더니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이 되었다. 엄마는 많다고 하면서도 다 드셨다. 어중간하게 남은 밥은 보며 엄마는 상추 싸서 다 먹자고 했다. 상추에 엄마가 양념한 짭짜름한 된장을 얹어 남은 밥도 말끔히 먹었다. 설거지를 마친 후 우리는 집을 나섰다.

장안동 벚꽃은 전날 밤 비 때문인지 꽃잎이 바닥에 많이 떨어져 있었다. 활짝 피어 나무를 화려하게 장식하지는 못했다. 좀 일찍 와서 볼걸 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엄마와 나란히 걸었다. 엄마와 꽃길.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남편과 아이들은 데리고 왔지만 엄마와 같이 올 생각은 미처 못했다.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멈췄지만 엄마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엄마의 뒷모습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눈높이에 맞추었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엄마의 두 다리였다. 벌어진 두 다리 사이로 작은 공 하나가 들어갈 만큼 다리는 구부러져 있었다. 다리도 예전보다 가늘게 느껴졌다. 엄마가 왜 자꾸 넘어지시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얼른 사진을 찍고 달려가 엄마의 팔을 잡았다. 엄마는 "붙잡으면 더 못 걸어간다"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팔을 놓고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걸었다.

한 시간을 걸어 도착한 봄꽃 축제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구청장이 마이크를 잡고 환영 인사를 하고, 이찬원 팬들은 분홍색 옷을 맞춰 입고 응원봉을 흔들고 있었다. 먹거리 식당 앞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유명 가수도, 먹거리도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내 돌아가자고 하였다.

나는 다리가 아팠다. 엄마에게 다리 아프지 않냐고 물었다.

엄마는 이렇게 다리가 아프고 나면 다음 날 뻐근하긴 한데, 그다음 날 다시 조금 걸어주면 다리에 근육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돌아가는 길, 엄마의 걸음은 오히려 더 빨라졌다. 운동화 뒷굽이 서로 부딪힐 것처럼 뒤뚱뒤뚱, 그렇게 걷고 있다는 걸 엄마도 느낀다고 했다. 나는 허리를 펴고 팔자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보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시킨 대로 해보더니 팔이 앞이 아니라 옆으로 흔들린다며 자신의 걸음으로 다시 걸었다. 멈추지 않고.

오늘 하루 엄마와 장안동 봄꽃 축제를 걸어서 다녀왔다. 꽃은 이미 많이 떨어진 뒤였고, 무대 위 가수를 보고 온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걸음을 보고 왔다.

한평생 자기 몸을 지탱해 온 두 다리는 이제 벚나무 가지처럼 휘어 중심이 흔들린다. 그래도 엄마는 혼자 걷는다. 내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내 방식대로. 엄마는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다리는 휘어질 수밖에 없다. 꼿꼿하면 꼿꼿한 대로 굽으면 굽은 대로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엄마의 굽은다리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엄마의 걸음을 보고 삶의 기운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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