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이 잠시 멈춘 순간

전쟁뉴스 속에서도 꽃은 나를 멈춰 세웠다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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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두 번의 세상을 살았다. 하나는 꽃 아래에서, 하나는 뉴스 앞에서.


요즘 동네가 온통 꽃 잔치다. 아파트 안에도, 직장 근처 공원에도 하얀 꽃들이 눈부실 정도로 피어났다. 날이 유난히 따뜻한 탓인지, 매화와 벚꽃이 순서도 잊은 채 앞다투어 피어나 세상이 꽃 천지가 되었다. 매화인지 벚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만큼.


얼마 전,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청계천 길을 걸었다. 가로수처럼 길게 늘어선 나무마다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미영 계장, 곽 계장과 나는 벚꽃이 참 예쁘게 피었다며 나오길 잘했다고 저마다 꽃 향연을 즐기고 있었다. 마침 맞은편에서 수연 계장과 지현 계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곽 계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쪽도 벚꽃 구경 나오셨군요." 그러자 수연 계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벚꽃이라고요? 우리 집 근처에도 이런 꽃이 피었는데, 매화라고 하던데요?" 수연 계장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찍은 거 있어, 봐봐."

우리는 작은 화면 앞에 고개를 모았다. 사진 속 꽃도, 지금 눈앞의 꽃도, 솔직히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자 곽 계장이 네이버 렌즈를 꺼냈다. 꽃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 모습이 왠지 우스웠다.

꽃은 그저 피어있는데, 우리는 이름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네이버는 매화와 비슷한 종류라고 알려주었다. 작년엔 이 자리에 이런 나무가 없었던 것 같다. 나무 옆에는 잘려진 밑동이 남아 있었다. 언제 심겼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동안 매화를 벚꽃이라 부르며 지나쳤다.


며칠 후, 점심때도 꽃을 보러 용두공원으로 나갔다. 걷다가 벚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다. 꽃망울이 한꺼번에 터진 듯 하늘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그 환한 빛 아래를 걷는데,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혼자 피는 꽃 한 송이보다, 이렇게 함께 활짝 핀 벚꽃이 더 아름다운 이유가 있겠구나 싶었다. ‘옆 사람의 꽃망울이 터질 때까지 기다려주고, 내 꽃망울도 터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 함께 활짝 피울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구나‘라고 느꼈다.


퇴근하여 집에 갔다. 사서 간 햄버거를 먹으며 저녁 뉴스를 보았다. 화면 속엔 트럼프의 연설이 흘러나오고, 전쟁과 협박과 이익 계산이 오간다. 낮에 꽃 아래서 느꼈던 평화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폭격으로 늘 경보음에 시달리며 불안하게 살아가는 이란 국민보다 우리나라 연료는 안전하게 공급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오후에 함께 핀 벚꽃을 보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피해가 올지 걱정하고 있다. 이것이 아마 인간의 솔직한 모습일 것이다. 자연 앞에서 잠시 깨달음을 얻어도 현실의 불안 앞에선 다시 고개를 돌리는 존재.

하지만 그렇기에 꽃이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오늘 점심 벚꽃 아래를 걷는 동안은 평화로웠다. 이란에도 봄에는 꽃이 피지 않을까?

완벽히 깨달은 대로 살 수는 없더라도 꽃을 보며 잠시 멈추는 사람은 흔들렸다가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온다.

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피었다. 우리가 보든 보지 않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자연은 그렇게 피었다가 멈추고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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