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우면서도 살아가는 이유

흔들림 많은 하루를 견디게 하는 작은 마음의 기술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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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딸에게 글을 보내주었다. 글을 읽은 딸은 짧은 질문을 남겼다.

“괴롭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작가님.”

엄마 대신 작가라고 부르니 조금 어색했지만, 그 말이 품고 있는 믿음이 고맙기도 했다. 누군가의 질문을 받고 답을 건네는 사람이 작가라면 나도 그 이름에 기대는 마음으로 답을 찾고 싶었다.

처음엔 “모두 괴로워요. 괴롭지 않으려고 해서 더 괴로운 거예요”라고 적었다가 금세 지웠다. 딸이 묻는 건 그런 원론이 아니라 삶을 견디는 구체적인 방법일 것이다.

괴로움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마음이 불안하면 하루가 불안하고 마음이 흔들리면 삶 전체가 흔들린다. 딸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닐 것이다. 결국 알고 싶은 건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일 것이다.

그 질문이 머릿속에 남은 채로 어제는 친정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사실 엄마 병원은 계속 미뤄온 일이다. 엄마가 해달라는 걸 알면서도 직장 일과 퇴고 작업과 강의 준비가 겹치니 자꾸 뒤로 밀렸다.

엄마는 기다릴 수 없었는지 다시 재촉했고 나는 결국 반차를 냈다.

휴가를 내니 또 다른 생각이 스쳤다. 신규 민원 창구 직원이 휴가라 우리 팀은 돌아가며 창구를 봐야 했는데 내가 빠지면 동료들이 더 바빠진다. 팀장이라 마음대로 휴가를 낸다는 오해는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돌보아야 하는 사람은 많고 시간과 힘은 늘 부족하다. 마음과 현실이 어긋나면 죄책감이 먼저 고개를 든다.

얼마 전에는 사무실 직원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상주였다. 마음은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가려 하니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총괄 팀장이 함께 가자고 했지만 팀직원이 휴가라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는 핑계를 댔다.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모든 순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넉넉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다.

병원에서 돌아와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손주가 “할머니는 성공한 사람이에요”라고 해주었다며 웃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엄마의 세월이 선명해졌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시집와 아이 셋을 키우고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내며 살아온 길은 결코 쉽게 온 길이 아니다. 누가 인정해주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버티고 견뎌낸 시간들이 엄마의 삶을 만들었다. 그 세월이 지금의 엄마를 만든 게 아닐까.

딸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괴롭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나는 결국 이렇게 답했다.

“글쎄. 다들 괴로우면서 살아. 그렇게 사는 거야.”

딸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괴로움은 누구에게나 있고 나만 특별히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어떻게 넘을지 스스로 질문해 보았으면 한다.

요즘 나는 별일 아닌 장면에서도 마음이 불편하게 흔들린다.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집에서는 가족들이, 일상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모두 내가 돌봐야 할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돌볼 수 없다. 마음이 아무리 크다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자리까지 줄이고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마음의 자리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그 자리를 지켜야 괴로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딸에게 다시 한 마디 하고 싶다.

딸아 너도 지금 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괴롭지 않은 길은 없다. 하지만 괴로움 속에서도 너를 지켜내는 힘은 생긴다. 너의 마음이 무너질 만큼 힘든 날엔 괜찮다고 말해도 된다. 삶을 버티는 힘은 거창한 데서 오지 않고 작은 선택 하나에서 시작된다. 오늘 너의 마음이 흔들리더라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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