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세상 Dec 16. 2023

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한국에 있는 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여러 벗들을 만났다.                       

30년 혹은 40년 만에 만난 후배나 선배도 있다.

그중엔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은 몇몇도 있지만, 아예 연락이 끊겼던 이들도 있다.     

신기한 것은 30여 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간극이 있었고 서로의 삶이 그만큼 많이 달라졌는데도 마음은 쉽사리 시간을 뛰어넘어 ‘그 시절 그때’의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그때 그 시절’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기였기 때문일까.

어려웠던 그 시절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함께 했기 때문일까.

이 책을 내게 선물한 후배는 지난 삶을 얘기하면서 자신이 살면서 지나 온 고통스러운 때, 위안은 그 시절의 벗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왔다고 했다.

나처럼 그들도, 서로 따뜻한 밥 한 끼 함께할 수 없는 거리에 떨어져 있었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 전화 한 통화, 문자 하나 주고받지 않는 기억 속의 존재들이 되었지만, 

그래도 인생의 큰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마음속으로 의지하고 힘을 얻은 것은 ‘그 시절’의 ‘우리’에 대한 기억과 믿음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 만난 후배에게서 <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그 후배 박은봉은 <한국사 편지>라는 책으로 밀리언 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저자 스스로 말하듯이 ‘괴로움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역사학도 나름의 답변을 모색한 결과물이다.

저자 스스로가 오랫동안 홀로 싸워야 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탄생한 책이기도 하다.

박은봉 작가 특유의 쉽고 담백하고 명료한 문체로 씌어지고 마음을 사로잡는 내용 때문에 누구나 하루, 이틀이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쉽게 읽히는 책을 쓰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몸과 마음의 병과 싸우면서도 책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의 노력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겹쳐져 더욱 깊이 마음의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과거의 유명한 인물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주변에서 한 두 번은 마주쳤을 법한 인물들의 역사도 소개한다.

시대도 상황도 다 다르지만 그들이 자신이 맞닥뜨리게 된 고통을 이겨내고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공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의 관점에서 선택하고 서술한 개개인의 역사’이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각자 자신의 고통과 싸운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역사 한 자락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세계사를 바꾼 대표적 과학자인 찰스 다윈의 위대한 책 <종의 기원>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책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와의 고통스러운 싸움 속에서 썼다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찰스 다윈은 몸이 너무 아파서 자신의 역사적인 책의 출판 기념회에 조차 참석하지 못했다.

책은 찰스 다윈의 이 개인적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30대 어느 시점에 나타난 그의 병은 아무도 원인을 진단하고 치료 방법을 내어 놓을 수 없었다. 책을 읽다 보면 찰스 다윈이 겪은 고통이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 25년 동안 밤낮없이 돌발적이고 극심한 배 속 부글거림. 잦은 구토. 몇 달 동안 구토를 계속한 적도 두 차례 있음. 구토 전에 몸의 떨림. 히스테리컬 한 울음. 죽을 것 같은 또는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생략)(찰스 다윈이 의사 채프먼에게 써 보낸 자신의 증상)]


극심한 고통과 싸우는 40여 년 동안 다윈은 8권의 저서와 55편의 논문을 썼다. 모두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긴 시간 인내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실험해야 하는 주제들이었다. 그가 사망하기 6개월 전에 출간된 마지막 저서 <지렁이의 활동에 의한 식물 부식토 형성>은 무려 40년 동안 지렁이를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 나온 것이라고 한다.


젊었을 때 대양을 항해하는 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며 자연을 관찰하고 수집했던 그였지만 30대 초반에 찾아온 병 때문에 그 이후는 은둔자처럼 살았다. 

글을 쓰기 위해 하루하루를 매우 엄격하게 규칙을 정해 생활했고 자신의 병을 객관화하기 위해 건강일기를 꼼꼼히 기록했다. 자신의 생활을 규율하고 병을 객관화한 덕분인지 평생을 병과 싸우면서도 우울증에는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도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싸우며 이룩해 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찰스 다윈이 이룬 업적이 더 위대해 보였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릴 때 인간은 불안과 날카로움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도 힘들게 한다. 행복은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심정을 다윈은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어. 과연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그러나 다윈은 언제나 다시 일어났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스스로의 노력뿐만 아니라 헌신적이고 충실한 동반자였던 아내 엠마가 곁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찰스 다윈과 다르게 마음의 병과 싸운 위대한 작가가 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이야기이다.

안데르센은 가난한 하층 계급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철자법과 문법이 엉망이었다는 얘기는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가 심각한 콤플렉스로 평생 고통받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었다.

안데르센은 출생의 한계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14살 때 시골집을 떠나 혈혈단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미운 오리새끼>는 안데르센의 자서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의 삶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그는 평생 백조의 무리에 끼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쓴 작품의 성공으로 백조의 대열에 끼기는 했지만 동화와 달리 원래부터 백조가 아니었던 안데르센은 평생 이방인 느낌과 콤플렉스로 괴로워했다.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고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불행했던 그의 삶을 작가는 '백조가 되고 싶은 오리의 분투기'라고 말한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예술가로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배우 오디션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사투리, 학력 부족을 이유로 계속 거절당했다. 

    “우린 제대로 배운 사람만 쓴다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재능도 아무 쓸모가 없다네”

겨우겨우 들어간 왕립극장의 견습배우에서 해고될 때 그에게 던져진 말이다.

그가 쓰는 희곡들도 너무 기본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거절되곤 했다.

그러나 성공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안데르센은 자신을 후원해 줄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만난 적도 없고 누구의 소개도 없이 무작정 찾아 간 왕립합창학교 교장 주세페 시보니가 그에게 뜻밖에 손을 내밀어 주었다. 시보니의 도움으로 안데르센은 정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선망했던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많은 귀족과 당대의 유명인사들이 그를 식사에 초대했다. 때로는 귀족들의 성에서 몇 주씩 머무르며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그러나 귀족들에게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그들은 안데르센을 식탁에 초대된 우스꽝스러운 광대처럼 여기기도 하고 염치없고 귀찮은,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으로 대하기도 했다.

안데르센은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자신을 비판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을 참지 못했으며 끊임없이 사랑과 인정과 존경을 확인하고자 했다.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받고자 자신의 생명까지 교환했던 것처럼.


안데르센이 콤플렉스와 싸우며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했던 노력은 그가 쓴 인어공주의 마지막(디즈니 판의 결말이 아닌)처럼 비극적이었다. 그는 평생 누구의 사랑도 얻지 못했다. 

성냥팔이 소녀도 그렇고, 그의 작품에 어설픈 미담이나 해피 엔딩이 없는 것은 그가 산 삶 자체가 그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을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읽는 사람들도 있지만 박작가에 의하면 그는 철저히 주류사회에 편입되고자 애썼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 혹은 배제된 계층의 한 사람으로 느꼈던 자신의 정체성이 그의 작품에 생생한 현실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은 영원히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기억되는 작품들로 남았다.


다음에 나오는 역사는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바라고 노력했던 것들이 실현되어 가는 인생의 절정기에 암 선고를 받은 36살의 젊은 의사- 폴 칼라티니의 짧은 역사가 그 하나다. 짧지만 결코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역사이다.

폴 칼라티니의 투병기이며 유고작인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라는 책은 남편이 투병 중일 때 나도 가슴 아프게 읽었던 책이다. 

척추에 침범한 암세포로 인해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살아있는 오늘, 현재를 ‘살기’ 위해 외과의사로서 수술칼을 집어 드는 그의 분투기를 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미래를 계획할 수 없을 때, 미래를 기다릴 수 없을 때, 인간은 희망을 견지할 수 있을까?

오직 ‘현재’만이 존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곁에서 지켜보았던 나는 그의 마지막 시간들이 얼마나 초인적인 노력으로 점철된 것인지를 조금은 안다. 

그의 삶의 이야기가  다른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역사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음으로는 재주 있고 능력 있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수옥- 그녀는 많은 재주를 가졌지만 다 묻어두고, 결혼 후에는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 전부였던 사람이다. 가족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다 보니 자신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시작했다. 그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희망과 행복에 들떠 있던 순간 암이 찾아왔다. 

마흔일곱에 찾아온 생의 기로에서 그녀는 그동안 살아온 삶을 반성하고 다시 생각한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그냥’ 행복했다. 삶이란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것을 왜 그리 어렵게 특별한 것을 찾아다녔을까 싶었다.” 


암에 걸린 뒤 자신의 삶을 ‘나를 알아가는 여행’이라고 이름 붙였다.

삶에 대해 지난 평생 알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깨닫게 된 그 시간들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살았던’ 기간이라고 했다. 

그녀는 암을 자신을 비춰주고 자신을 바뀌게 해 준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수옥은 투병기간 힘과 위안이 필요할 때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집밥을 먹는 기분으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다른 투병 중인 암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견디기’라는 제목의 투병기도 썼다. 그 투병기는 따뜻함과 희망, 위트로 넘친다고 한다.


한국 전통문화를 사랑했고 자신의 정원을 만드는 것이 남은 생애 동안 하고 싶은 일이었던 그녀는 끝내 자신의 정원을 만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가 가꾸고 싶었던 사랑스러운 꽃들로 가득 찬 정원은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가꾸어지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역사는 5명의 비행delinquency소녀와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고정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진이라든가 학교 폭력에 대한 보도가 연일 올라온다.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도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위기의식을 느낄 만큼 비틀리고 허물어진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5명의 일진 소녀들의 일진 탈출기, 성장 스토리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로써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이 더 커지고 실현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다.


고정원 선생님은 말한다.

   “제가 아이들을 바꾼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바꾼 거예요. 아이들은 변화할 힘을 이미 갖고 있었어요. 저는 때 마침 옆에 있었던 것이지요.”


작가는 마지막 역사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다섯 명의 일진 여학생들의 탈 비행 성장 스토리는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을 짓누르고 억압하는 현실 아래 몸부림치는 십 대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시기는 끝나. 언젠가는.”


작가는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 이 순간 혹독한 삶의 위기에 처해 있는 누군가가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제 아무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도 언젠가는 끝난다.

곁을 지켜주는 가족 그리고 오랜 벗들이 함께 한다면 그 시간이 조금은 짧아질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희망은 계속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