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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Nov 14. 2023

희망은 계속될 수 있을까?

 비비안 실버,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평화를 위하여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그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전쟁과 증오로 얽힌 그 역사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하마스의 무장대원들이 이스라엘 키부츠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불태우고 납치했다는 소식, 이스라엘 군이 병원과 학교에까지 폭탄을 퍼부었다는 소식,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 무고한 생명들의 희생 하나하나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내 마음에 꽂힌 소식은 캐나다 출신 이스라엘인 평화활동가 비비안 실버(74세)가 하마스에게 납치된 인질들 중 하나로 추측된다는 보도였다.


비비안 실버는 캐나다의 위니펙에서 태어났고 역시 캐나다 출신인 남편과 함께 1974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그리고 1990년 베리 키부츠로 옮겨 두 아들을 키우며 대단히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평화운동가로 살았다.


베리 키부츠는 이스라엘 남부, 가자지구 국경에 가장 가까운 키부츠이다. 국경에서 5km가 채 안된다. 그 때문에 이번 하마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베리 키부츠에 대한 공격이 역사적으로 더 비극인 것은 1946년 설립된 이 공동체가 이스라엘에서 점점 소수화되고 있는 온건한 좌파적 성향을 가진 공동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현 네타냐후 정권의 호전적이고 인권 탄압적이며 반 팔레스타인적 정책에 비판적인 공동체였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2년 선거에서 베리 키부츠에서는 온건한 좌파인 노동당이 35% 이상의 투표를 획득해 승리했다. 이 당의 전국 평균이 3.6%였다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의 정치적 입지나 성향이 이스라엘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극좌파인 메레츠는 16.4%를 획득하였다.


비비안 실버는 자신의 신념을 보다 ‘확실히 몸으로 보여주기 위해’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리 키부츠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으로 평화를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랐다. 이스라엘의 정권이 팔레스타인을 차별하고 탄압할수록 팔레스타인과 맞붙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평화를 위한 활동을 통해 갈등과 분쟁을 줄이고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신념 때문에 그녀는, 그리고 평화를 원하는 다른 이스라엘인들이 일부러 베리 키부츠로 이주했다는데 그들이 이번 공격의 주요 희생자가 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타임지 에타 프린스 깁슨Eetta Prince-Gibson 기자는 비비안 실버의 이스라엘 이주 이후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실버는 1990년 베리 키부츠로 이주한 후 남부 이스라엘 지역의 베두인 족에 대한 차별을 인식하고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한 몇 가지 프로젝트를 실천했다. 그중의 하나가 이스라엘 여인과 아랍인 여인들을 짝을 지어 뭔가를 생산하고 그것을 팔아 경제적 이득을 얻게 하는 것이다. 즉 유대인 시인과 아랍인 삽화가를 맺어서 책을 제작한다 거나, 비누를 만드는 아랍 여성과 도자기를 만드는 유대인 여성을 맺어 주기도 하고 유대인 보석 세공사와 올리브 나무로 보석 상자를 만드는 아랍인 여성을 짝지어 주는 식이다.


2000년에 실버는 아랍-유대인 센터:주체성 강화, 평등, 협동을 위하여(AJEEC-NISPED)라는 조직을 설립하였다. 이 조직은 아랍계와 유대계 여성들이 서로 나누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조직이다. 10년이 넘도록 실버는 베두인 타운의 주민 케에르 알바즈라는 여성과 공동회장으로 일했다. 알바즈는 인터뷰에서 비비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비안과 함께 일한 것은 저에게는 정말 특별하고 영예로운 경험이었어요. 비비안은 참된 도덕성과 인간의 평등함에 대한 신념을 체화한 분이었지요. 단지 구호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을 그렇게 살았어요.” 


2005년까지 비비안 실버는 가자지구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팔레스타인 여성 활동가들을 만났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가 이스라엘 시민들이나 베리 키부츠를 공격하고, 그에 대항해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침공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시기에도 가자 지구의 여성활동가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활동을 이어가려고 애썼다. 그녀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사람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실버는 현실이 얼마나 복잡한 지를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군의 점령이 얼마나 부당한지도 알고 있었죠. 또한 그녀는 여전히 시온니스트로서 유대인에게도 자신들의 고국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믿었어요. 그녀는 이 두 가지 입장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낸다면 말이죠.”


실버는 몇 년 전에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의 환자들을 이스라엘의 병원으로 이송하는 이스라엘의 NGO(Road to Recovery)에 가입해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팔레스타인 환자들을 이송하는 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특히 2014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대중조직인 WWP(Israeli-Palestinian Women Wage Peace)를 공동설립했다. 이 조직을 설립하면서 실버가 주장한 것은 전쟁만이 안전을 보장한다는 기존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오직 전쟁을 더 부추길 것이며 평화만이 우리에게 안전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그녀의 변함없는 확고한 신념이었다. 


전쟁 대신에 정치적이고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이룩할 때까지, 그리고 그 논의의 과정에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WWP의 활동은 지역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켜 이스라엘 내 가장 큰 대중조직으로 성장했다. 단체의 홈페이지에 가 보면 2022년 현재 4만 4천 명이 넘는 회원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반 인권 법안을 반대하고 서안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규탄하는 행진을 주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2017년에 실버는 서안 지구의 요르단강 가에서, 얼마 전 자행된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규탄하는 행진을 조직하였다.

10월 4일, 납치되기 며칠 전 실버는 이 단체가 주관하는 연례행사 <어머니의 부름The Mother’s Call>을 조직하느라 바빴다. 이 행사는 WWP의 팔레스타인 쪽 자매 단체인 WOS(Women of the Sun)와 연대해서 열었고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인, 국제 여성단체들이 참여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미래를 지지했다. 이 행사가 기대 이상으로 성황리에 진행된 덕에 실버는 매우 고무되고 행복해했다고 한다. 

짧은 흰머리에 피켓을 든 여성이 비비안 실버이다.

 

그 며칠 후, 10월 7일 비비안 실버는 베리 키부츠 자신의 집에서 피랍되었다. 

캐나다의 글로벌지에는 실버가 실종(피납)되기 직전까지 그의 아들인 요나단 자이젠과 통화를 주고받은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토요일 아침 실버의 아들 요나단은 가자지구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버는 자택의 옷장에 숨어서 그와 통화를 했으며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한다고 말하자, 너와 함께 있다고 느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총소리와 고함소리로 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하고 수색이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문자로 대화를 계속했다. 어머니와 아들의 긴박하고 긴장된 문자통화는 “그들이 집안에 들어왔다”는 실버의 메시지로 끝났다. 그 이후 실버의 전화는 응답이 없다. 


며칠 전 두 명의 인질이 석방된다는 소식을 접한 요나단은 그중에 자신의 어머니가 포함될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고 한다. 하마스 지도자들이 비비안 실버의 평화 활동가로서의 명성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그 경력이 하마스의 마음을 움직여 평화를 위한 제스처든, 정치적 목적에서든, 실버를 석방시키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70세가 넘은, 풀려 난 여성은 그가 기다리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믿는 요나단은 어머니가 피랍된 상태에서도 조금도 신념을 굽히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혹은 복수라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어떤 공격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실버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실버가 납치된 상황에서도 하마스 대원과 이스라엘인들을 그룹으로 엮어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에 애쓰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평화적 해결을 바라고 그것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가 있든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사실은 이번 전쟁으로 그동안 평화를 위해 희생적으로 살았던 비비안과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증오와 분노의 파도가 앙 쪽의 무고하고 선량한 시민들을 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AFP는 <아랍뉴스>에서 이스라엘의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기사를 이런 제목 아래 실었다.


       [폐허가 된 키부츠에서 이스라엘의 평화주의자들,  신념을 잃다]


아비다 바샤르는 50대의 베리 키부츠의 주민이다. 그는 이번 하마스의 공격으로 아내와 아들을 잃었고 자신도 부상을 입어 예루살렘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그는 오랫동안 평화적 해결을 지지했지만 이제 팔레스틴을 통치해 온 이슬람 그룹을 완전히 절멸시켜야 한다는 극단적 방안을 입에 올린다. AFP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적들을 완전히 때려 부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그는 어떤 협상도 가능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인은 ‘절대적 악마’에게 희생되었다고 말한다.


하마스에게 가족이 피랍되거나 희생된 사람들, 베리 키부츠의 평화주의자들의 오랜 신념이 흔들리고 있다.

그들은 일단 네타냐후 정부에 인질 석방을 위한 즉각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향후 대응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요나단처럼 그래도 평화적 해결만이 올바른 방법이라는 신념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동생만 해도 평화적 방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피의 복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발판으로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 이스라엘 정착촌에서는 자경대가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을 공격하고 약탈하며 주민들을 추방하는 불법적 폭력행위가 극심해지고 있다.


복스VOX 뉴스의 쟈크 보샴프 기자에 의하면 10월 7일 이후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공격이 극심해서 생활터전이 완전히 파괴되고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산산이 흩어지고 추방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눈이 가자지구에 쏠려 있는 동안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오랫동안 이 지역에 대해 품어 온 욕심을 공개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급진적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서안지구의 영토를 이스라엘 땅으로 병합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지역에 의도적으로 정착한 사람들이고 이들은 일상적으로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하고 괴롭혀왔다. 가축 무리를 공격하거나 재산을 불태우기도 하고 폭행과 때에 따라서는 살해도 자행했다. 이러한 직접적인 폭력 외에도 은근한 방식의 여러 가지 압력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가해져 스스로 자신들의 땅을 포기하고 떠나게 만들었는데, 지난 10월 7일 이후 극에 달해 최소 15개의 공동체가 완전히 뿌리가 뽑혔다.

이 폭력의 중심에 이스라엘 군대가 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시도 때도 없이 학대하지만 거의 대부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지나간다.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군인들의 학대 행위에 대한 정식 고발의 99%가 기소되지 않았으며 단 한 건의 처벌도 없었다. 가자 지구에서의 전쟁 이후 서안지구에서 군대의 활동은 테러방지 활동의 합법적 틀을 쓰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땅을 빼앗기 위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주먹으로 기능하고 있다. 유엔에 의하면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 130명이 서안지구에서 살해되었으며 이는 지난해 일 년 동안의 살해자 수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 이들의 대부분이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고 그중 8명(어린이 한 명 포함)은 군복을 입은 이스라엘 정착민의 자경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기자가 접촉한 팔레스타인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넘길까만 생각해요. 오늘을 어떻게 살아남을까, 오늘을 어떻게 안전하게 넘길까 만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가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더욱 폭력적 저항으로 몰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안지구를 둘러싼 분쟁은 1967년 6일 전쟁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지정학적 목적에 의해 요르단의 영토를 침공해서 그 영토를 빼앗은 후 이스라엘 정착촌이 건설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글의 목적이 과거의 역사를 되새기며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므로 분쟁의 역사는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롭고 평등한 공존을 위해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평생을 바친 비비안 실버가 하마스에게 납치되어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는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쩌면 이미 유명을 달리했을 수도 있다. 그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직 살아 있다면 변함없는 신념으로 자신을 지탱하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혹은 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 회의하거나, 무기력한 절망감에 빠져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을까. 

그녀는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믿듯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피랍된 상황에서도 평화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본다. 그러나 그녀의 입장을 지지하고 함께 일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친구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버리고 증오와 복수의 대열에 합류했을까. 그리고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어쩌면 지옥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 그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지금이 바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와 그를 추종하는 극단적 전쟁주의자들이 바라던 것일 것이다. 그것을 알더라도 개인적 상처와 분노를 떨쳐내고 올바른 신념을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발만 더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비인간적 탄압과 부당한 취급이 그토록 심하지만 않았더라도 그 주민들이 과격한 무장주의자인 하마스를 통치권자로 선택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대화와 타협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과 이를 지지한 미국과 서방이 없었더라면 하마스도 지금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좀 더 평화적인 길을 모색할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평화를 지향한 평범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이 양 극단의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는 것을 보는 것이 마음 아프다.

그들이 몇 십 년에 걸쳐 쌓아 올린 평화롭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토대가 삽시간에 무참히 짓밟히고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가장 두려운 것은 평화를 위해 헌신해 온 사람들이 내면에서부터 무너져 내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짧은 현대사 속에서도 인권과 민주주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이 권력의 폭압에 의해 신념이 꺾이고 절망에 빠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내면부터 무너져 내려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180도 돌아선 사람들도 있었지 않은가.

이제 74세라는 백발의 비비안 실버의 삶을 반추하며, 그가 어딘가에 살아있기를 희망하며, 또 그와 함께 일했던 양쪽의 친구들이 현실의 실패에 마음까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내 마음속에 눈물처럼 차오른다.


희망이 계속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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