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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Oct 21. 2023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간토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100주년에 읽는 SF소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소설가 황모과씨가 쓴 이색적인 공상과학 소설이다.

민호와 다카야는 지도에도 없는 비밀장소 ‘1923년 간토 카타콤베’에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특별임무를 시작한다. <아시아 홀로코스트 진상 규명 위원회>에서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학살당한 사람들과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두 사람을 선발했다.

다카야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의 후손이라는 점을 이용해 미국인 심사위원들의 양심을 자극하여 13차 검증단의 일원으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다카야는 노후를 보장할 만큼 거금의 장학금을 소요카제 재단에서 받고 있었다. 이 소요카제 재단의 장학금이 1923년 간토에서 조선인 학살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관변단체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파악한 민호는 다카야가 검증단에 참여한 목적에 대해 의심한다.


두 사람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싱크로놀리지syncronology 시스템을 통해 사건이 일어났던 1923년 야마모토 현으로 이동한다. 이 시스템은 일종의 통신채널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화 매트릭스에서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오가던 것과 다르게 여기에서는 현실세계의 과거와 현재를 이동하는 시스템이다. 다만 검증단의 일원으로 과거로 돌아간 사람들은 절대로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개입해서는 안 되며, 관찰과 증거 수집만 하도록 지시받는다. 이 시스템에 들어온 사람은 그 안에서 절대로 죽지는 않는다는 보장을 받았지만, 사건에 개입한 민호의 행동 때문에 두 사람은 100년간의 시간의 반복 루프에 갇히고 만다. 진상 규명 위원회 위원들도 민호가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해 과거 사건에 개입하면서 일어난 현상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고, 해결 방안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몇 번이나 거듭해서 100년 전 사건의 현장에 되돌아가야 했지만 민호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민호와 다르게 네 번의 100년을 거듭 살아야 하는 다카야는 고문과 같은 시간 루프를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반복되는 대지진과 학살 현장을 통해 작가는 일본 정부와 군. 경의 음모와 폭력, 자경단이 저지른 만행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그들이 그 사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증거를 은폐하고자 했는지도.


두 사람이 반복의 루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방법으로 작가가 제시한  다카야의 깨달음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가해자들의 행위를 은폐하는데 동조하고 학살을 방관했던 다카야가 겪어야 했던 시간의 반복, 즉 학살 현장으로 반복해서 돌아가 그 현장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어쩌면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일본 정부와 그 후손들이 매년 그날이 오면 겪어야 하는 멍에를 상징하는 것 같다. 아무리 겉으로 부정하고 아닌 척해도 마음 한 구석에 그 죄책감이 없을 수는 없다. 그들이 다른 두뇌 구조와 다른 진화 역사를 가진 다른 종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믿는다. 다만 아예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게 카타콤에 증거들을 파묻어 두려는 권력자들의 행위는 중단시켜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환한 세상에 드러내 보이고, 방관자였던 다카야가 민호의 편에 선 것처럼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피해자들을 위한 행동에 나서는 것이 과거의 잘못된 역사로 끝없이 돌아가는 시간 루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간토 대지진 이후 일어난 조선인, 중국인 살해 사건의 진상은 그런 평범한 일본 시민들의 노력으로 밝혀졌다.

간토 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건은 위안부 강제 동원과 강제 징용 못지않게 우리에게 뼈아픈 역사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숨겨져 있다.

1923년 9월 1일 일어난 간토 대지진은 유래 없는 큰 재해로 민심이 흉흉해지고 정부의 대처 부족 등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대비해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과 경찰력을 동원한 억압적 통치를 강화한다.

당시 내무성 경보국장은 “조선인들의 방화로 힘든 상황이어서 계엄령을 내렸으니 엄중히 대처하라”는 명령을 각 지방에 내려 보낸다.

유언비어와 혼란을 틈탄 폭력행위들을 단속해야 할 치안 당국이 각 지역 자경단을 지원하고 조선인에 의한 폭동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어 일본인을 죽이려 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공공연히 퍼트린다. 참혹한 재해를 당했지만 정부의 적절한 구호를 받지 못한 피해 지역 주민들은 일본 정부의 의중대로 그 분노를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조선인 노동자와 일본의 구락민(일본의 천민 집단), 공산주의자들에게 쏟아붓는다.

자경단과 치안 당국에 의한 조선인의 학살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피해자 규모나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도 조선인 학살에 대해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이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 책임 인정과 사과를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 내 전문가 집단에 의해 2009년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최소 수 천 명 이상의 조선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간토 대지진의 사망. 행방 불명자는 10만 5천 명 이상이며 이 중 1%에서 수% 가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가 많았다. 대상이 됐던 것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 중국인, 내지인(일본인)도 수는 적었지만 살해됐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러한 전문가 집단의 조사 발표조차 정부의 공식 기록이 아니라며 사건이 일어난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월 4일 이런 일본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공식문서”가 공개되었다.(이하 한겨레 신문 보도 참조)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사건을 알고 추모하는 가나가와 현 실행위원회>라는 일본 내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1923년 11월 21일 작성된 50장 분량의 문서를 공개한다.

<재해에 따른 조선인과 지나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 상황 기타 조사의 건>이라는 이 문서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를 평생 연구했던 재일 사학자 강덕상(1931-2021) 선생이 고서점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야마모토 스미코 가나가와 현 실행위원장이 복사해서 보관해 오다가 이번에 공개한 것이다.

이 문서는 가나가와 현 지사가 당시 현 내에서 일어난 조선인 살인 사건들을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고한 공식 문서이다. 보고 내용은, 군대와 경찰에 의해 자행된 사건은 빠져있고 민간인들인 자경단을 중심으로 일어난 범죄사실들을 범죄 시간과 장소, 범행의 동기와 목적, 범죄 사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상정보 등으로 정리하였다.

이 문서에 의하면  9월 2-4일 사흘 동안 총 59건의 살인 사건으로 145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조선인은 사건 당 1명에서 7명까지 죽임을 당했고 20대 남성이 많았다. 이름이 밝혀진 사람은 차태숙 등 14명이다. 차태숙은 34살 남성으로 가나가와 현에서 살해되었는데, 조선인이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일본인들이 “예방차원”에서 살해했다고 한다. 7명이 함께 죽임을 당한 사건도 비슷하게 유언비어를 들은 자경단이 우연히 마주친 조선인들을 “예방차원”에서 살해했다고 한다.


192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독립신문 특파원은 동경 752명, 가나가와 현 1,052명 등 총 6,661명이 피살되었다고 조사, 보고하였다.


일본 정부가 “사실관계를 파악할 정부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실 규명과 사죄를 회피하는 동안 100년이 흘렀다. 그동안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들, 공식 기록들이 일본 내 민간단체들에 의해 발굴되고 공개되었으나 수천 명의 무고한 조선인의 죽음에 대해 일본 정부는 단 한 번도 시인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다.

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가 학살의 흔적을 감추고 철저히 증거들을 없앴기 때문에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일본인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40년 동안 일본 시민단체 <호센카(봉선화)>에서 간토대학살 진상규명을 위해 일해 온 니시자키 마사오 이사가 있다.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그가 생면부지의 조선인들을 위한 활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때라고 한다. 도쿄 아라카와 강변에 묻혀 있는 희생자의 유골을 발굴해 보자는 선배의 제안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아름다운 강변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고, 아무도 그런 사실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에도 놀랐을 것이다.

그는 40년 동안 대학살의 흔적을 좇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사업에 전력을 바쳤다. 심지어 추도비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중학교 교사 일도 그만두고 극우단체의 추도비 공격을 염려해 7년 넘게 추도비 옆에서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2016년에 대학살에 대한 1100건의 증언을 모은 자료집을 펴냈다. 무엇보다도 그는 증인들이 나이가 들어 한 명씩 죽기 시작하자 학살 자체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60년이 흘러 80년대가 되자 가해자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없어도 목격자들의 증언은 활발해졌는데 그들이 죽고 사라지기 시작하자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움직임이 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니시자키 씨는 특히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과거 역사를 널리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했다.

“자국민 학살 추모 않는 정부는 신뢰할 수 없다.”


또 중학교 교사 출신으로 요코하마에서 일어난 조선인 학살 증거를 아이들의 작문에서 발견한 고토 슈라는 사람도 있다. 그는 1923년 당시 요코하마의 초등학교에서 지진에 대해 기록한 학생들의 작문 자료 속에서 학살에 대한 아이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일본에선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 대 명예교수 등 전문가 192명과 시민단체 130여 곳이 <간토대지진 조선인. 중국인 학살 100년 희생자 추모식 실행위원회>를 발족해 활동해 왔다. 이들은 지난(8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에 학살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2일에는 일본 국회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며 정부에 보내는 항의문을 낭독한다.


최근에 윤미향 의원이 참석해서 문제가 된 일본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모식은 조총련만이 주최한 행사가 아니다. 요코아미초 공원 자리는 간토 대지진 당시 수만 명이 화재로 희생당한 곳이다. 일본에서는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1973년(50주년 때) 이 공원에  <간토 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웠다. 이 공원에서는 그 후 50년 동안 일본인의 범죄행위를 밝혀내고 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노력해 온 100여 개 일본, 한국, 중국의 시민단체와 개인들, 일본의 야당 정치인 등이 참여한 추도식이 매년 열렸다. <간토 학살 100년 희생자 추모 실행위원회>는 올해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대규모 행사를 기획했고 여러 가지 사전 행사도 열었다. 일본 정부의 진상규명 노력과 사죄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도 열었다. 조총련도 당연히 희생된 조선인들을 위해 주최 측의 하나로 참여했을 뿐이다.  이렇게 일본과 한국의 시민 단체, 중국과 조총련 등 관련된 여러 나라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하는데, 민단만 따로 추모식을 가졌고 거기에는 민단 관계자와 대한민국의 의원 몇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민단과 대한민국이 과거사 문제 해결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제까지 학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대한민국의 노력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외교부는 '간토대지진 당시 한국인들이 희생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라며, '불행한 과거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강조하였고, 윤덕민 주일대사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직시하며 한국과 일본은 진정한 동반자로서 미래지향적 협력을 지속하자'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실 인정과 사죄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없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다. 단지 윤 석열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어떤 정부도 간토 대지진 문제를 공식적으로 외교 과제로 삼은 적이 없다.


국회에서는 2014년 유기홍 의원의 대표발의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되었으나 회기 내에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되었다. 최근에 다시 이 특별법 제정을 위해 40개 시민사회단체가 <100주기 추모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이종걸 전 국회의원은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 은폐와 왜곡 움직임에 대해 경고하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한 화해와 용서가 있어야 진정한 양국 우호 관계가 구축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기홍, 윤미향 의원은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법안을 마련 중"이라며 "9월 초에는 국회에서 법안을 발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00주기 추모사업 추진위원회는> 일본에서 열린 <학살 100주년 추모사업 실행위원회>의 연대 단체로써 실행위원회가 추진한 여러 사업에 참여하였다. 윤미향 의원은 이 추진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일본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여했다가 이념전쟁의 표적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과 역사를 모두 덮어두고 정부에서 발표한 고발만 되풀이 보도하고 있는 대다수 대형 언론들이 과연 언론사로서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 기자들이 스스로 기자로서 부끄러움은 없는지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덧붙여서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와타나베 노부유키 씨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최근에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올해 8월 전태일 기념관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책은 2019년 미국 하버드대  마크 램지어 교수(위안부는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지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그 사람이다)가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거나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고 주장한 논문과 그 논문의 근거 자료로 쓰인 신문기사들을 분석한 것이다. 그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고 기존 우익 단체들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며 근거가 되는 기사들도 그 정확성이나 객관성이 취약하다고 분석한다.

약 40년간 신문 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기자의 사회적 책무도 강조했다.

와타나베 씨는 "기자는 사회의 병을 발견하고 지적하는 의사"라며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탐구한다는 마음으로 취재해 왔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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