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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Sep 23. 2023

해녀들의 섬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살아낸 두 해녀의 이야기

얼마 전, 대한민국의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사람이 <이념전쟁>을 선포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참 뜬금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 <공산전체주의>를 주장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가 알기론 주사파나 계급투쟁의 이념적 기치를 가장 높이 들었던 김** 같은 사람이 이미 오래전에 거꾸로 북한을 투쟁 대상으로 삼는 전향을 했고 함** 같은 사람은 이념투쟁 자체를 비판하며 깃발을 내렸다. 

대한민국에서 전체주의를 지향했던 세력은 독재자 외에는 없었지 싶고 공산주의를 찬양하거나 주장하는 말을 듣지 못한 지 20년은 더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념전쟁>이 우리 역사에 어떤 비극과 아픔을 초래했는지 모르는 것일까?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마침 이념전쟁이 우리 역사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해녀들의 섬>이라는 이 소설은 영숙과 미자라는 두 여인의 삶의 궤적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과 그 비극을 가슴에 안고 삶을 지속해야 했던 제주의 강인한 해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중국계 미국인 작가로 현대의 펄 벅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녀의 작품 중에 <설화와 비밀부채>라는 책도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다. 그 책도 두 여인의 우정과 오해로 인한 결별을 중심으로 당시 여성들에게 너무나 참혹한 삶을 강요했던 중국의 한 변방 마을의 시대상을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사실 <해녀들의 섬>을 도서관에 예약해 놓고도 막상 내 차례가 되니 빌리기가 망설여졌다.

이 책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비극이 나를 더 깊은 우울증에 빠뜨릴 것 같아서 피하고 싶었다. (나는 요즘 개인적인 이유로 되도록 감정선을 깊게 건드리는 책이나 영화는 피해 왔다.)

그러나 아무리 피하고 싶은 불편한 현실이라고 해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오직 자신의 조국이 인권이 보장되고 민주주의가 꽃피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던 사람들, 더 이상 남의 나라의 간섭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우리끼리 평화롭고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강한 조국이 되기를 바랐던 사람들, 그 가치를 위해 자신의 출세나 가족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희생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존경과 안타까움과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왔다. 무슨 운동권의 이름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잘못되면 자신의 처지가 곤궁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길거리에서 독재타도를 외치는데 앞장서고 길 가에서 손뼉 치며 목소리를 보태기도 하고 백골단의 방망이와 최루탄을 피해 가게에 들어온 젊은이들을 숨겨주고 셔터를 내려주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두 번의 군부 쿠데타와 독재를 끝낼 수 있었다. 그 수많은 희생과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현대사의 모범국가로 선진국 지식인들의 관심과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발전은 소수의 선동가에 의해 이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의 열망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소위 586세대가 민주화 이후 그 열매를 사유화하고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런 사람을 개별적으로 법으로 판단하면 된다. 인권과 민주주의,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는 시민운동 전체를 이념전쟁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의도가 매우 불순하다. 해방정국에서 벌어진 이념전쟁의 불순함이 떠오르는 걸 피할 수가 없다.

민주화의 역사가 나라를 사랑하는 진실한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쓰레기통에 던지듯 지워버리고, 권력에 비판적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다시 갑자기 ‘공산전체주의자’로 매도당하는 것을 보니 역사가 이렇게 거꾸로 갈 수 있는가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쩔 것인가. 전쟁을 선포한 권력자가 있으니 최소한 그 전쟁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는 똑바로 마주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이념전쟁이 과거에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다시 살펴보는 것도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영숙과 미자라는 두 소녀는 영숙의 어머니의 보호 아래 평생의 우정을 약속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란다. 이들의 지극했던 우정이 미움과 평생의 이별로 변모되는 계기가 제주 4.3 사태 때 일어난 북촌마을의 양민 학살 사건이다. 4.3 사건이 지나간 역사 속의 한 사건이거나 보고서의 숫자 정도로 밖에 와닿지 않는 젊은 세대도 많을 것이다. 내게도 그랬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먼 과거의 사건을 조금은 현실감 있게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감정이입을 통해 독자들이 과거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이 한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크게 얽매고 관계를 훼손시켰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공감하게 해준다. 영숙과 미자가 겪었던 비극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이야 말로 ‘이념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개인과 집단들의 가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과 감수성을 갖도록 도와줄 것이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내륙의 정치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았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독립적인 기풍이 강했다. 특히 해녀 -잠녀(해녀는 일본식 표기이며 제주 여인들은 스스로를 잠녀라고 불렀다고 한다.)들은 부계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는 속에서도 가정 경제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집안에서의 위치나 역할이 독특했다. 이들은 딸을 낳으면 가족을 먹여 살릴 잠녀가 하나 늘었다고 축복했고, 아들을 낳으면 제사를 받들 자손이 생겼다고 기뻐했다. 

저자는 많은 자료들,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해녀들이 감당해야 했던 이중, 삼중의 짐을 해녀들의 노래나 무속적 제의를 통해 다시 살려내었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나와 언 몸을 녹이던 불턱에서 주고 받는 각자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자신의 관을 등에 지고 바다에 들어간다는 해녀들의 입수 전 의식같은 노래를 통해서 그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해녀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집안의 남자들을 부양해야 했다. 딸들은 오빠나 남동생을 먹이고 교육시키기 위해 바다에 들어갔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면 밭을 일구며 갖은 집안일도 해야 했다. 남편들은 남겨진 아이들을 돌보며 아내들이 돌아올 때까지 동네 마당에 모여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거나 심지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해녀들이 생명을 걸고 건져온 돈을 투전판이나 술에 낭비해 버리는 남자들에 대해 한탄하는 해녀들의 노래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바다는 어머니 같이 너른 품으로 해녀들의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품어주고 위로해 주는 존재이다. 해녀들은 바다에 안기는 순간 육지에서의 모든 근심과 골치 아픈 일들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그 순간 어머니 바다와의 소통에 온 마음을 내어놓는다. 바다는 어머니 같은 생명의 원천이다. 해녀들은 바다가 내주는 풍성한 수확물로 다시 내일을 살아가고 가족들을 먹여 살릴 힘을 얻었다. 


영숙과 미자는 일제 강점기에 2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해녀로 기용되어 일본이나 중국, 블라디보스토크로 몇 달씩 혹은 몇 년씩 집을 떠나 생활을 한다. 이런 경험과 경제적 능력이 나름의 배짱과 주체적인 힘을 길러 주었어도 혼인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가부장적 질서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영숙이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착한 남자와 행복한 결혼을 하는 반면 미자는 부모가 친일 협력자라는 배경 때문에 또 다른 친일 협력자의 아들과 원치 않는 혼인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이 소설은 영숙의 어머니와 할머니 대부터 시작해서 2008년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영숙이 평생을 간직해 왔던 아픔을 드디어 세상에 드러내고 마주할 용기를 가지게 되는 순간까지를 그린다.

저자는 외국인으로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일제 치하부터 해방과 분단, 4.3 사태,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들 속에서 제주도 주민들, 그리고 영숙과 미자의 가족이 어떤 굴곡을 겪으며 살아가는지를 비교적 잘 그려내고 있다. 해방 후 설립되었던 주민들의 자치적 인민위원회가 미군정에 의해 불법화되는 과정, 남쪽 단일 정부의 수립 등이 간략하지만 초점을 놓치지 않고 그려진다. 또한 4.3 사태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제주 주민 출신의 군. 경을 배제하고 그 자리를 대신한 육지 출신 군인과 경찰, 그리고 서북 청년단이 민간인들을 빨갱이로 몰며 자행한 폭력, 이 폭력을 방조한 미군정의 책임 문제까지도 빼놓지 않고 제주도 주민들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4.3 사건 이후 제주 해녀들은 한동안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 기간 동안 제주의 중산간지방에서 강제로 해안가로 이주당한 사람들은 물론 바닷가 부락들조차도 심한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았다. 맨손으로 북을 탈출한 서북청년단원들은 민간인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미군의 배급품을 빼돌려 제 배를 채웠다. 이에 항의하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려 잡혀가 고문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해녀들은 일제 치하에서 보다 더 억압받고 배고픈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무려 7년이나 살상과 고문, 약탈이 계속되었다.


해방정국의 좌. 우의 이념대결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저자는 영숙과 해녀들의 대화를 통해 이렇게 규정한다.

    “이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좌익이냐 우익이냐의 문제가 아니요”

    "그냥 남의 나라에게서 뭘 해라 마라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

     (일본이 물러가고 이제 우리끼리 잘할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미군이 대신 들어왔다.)

    "그리고 당연히 통일을 해야 되지. 내 가족이 이북에 있는데.”

     (미국을 등에 업은 이 승만이 밀어 부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은 그 당시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좌. 우 양쪽 지도자 모두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당하지 않은 사람 있어? 처음엔 일본 놈들이 있었지. 그리곤 전쟁이 났고 

    이젠 먹는 것, 사는 것이 모두 문제니…”


이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영숙이 겪은 상처가 얼마나 깊고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가에 대한 공감이다. 비록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사죄와 처벌이 있어도 평생을 고통과 분노를 짊어지고 살아온 피해자들에게 화해와 용서는 결코 가볍게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물며 아직도 틈만 있으면 4.3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이념의 틀을 덧 씌우려는 사람들이 고개를 내미는 현실을 생각하면 역사적 화해와 진실규명이 되었다고 해서 피해자 개개인의 마음에 얼마나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희생자의 가족들이 60년의 긴 세월을 싸워 겨우 이뤄낸 역사적 화해와 진실규명조차 뒤집히는 게 아닌지 두렵다.


<설화와 비밀의 부채>에서 저자는 남녀차별이 극심한 중국의 한 마을에서 사회적 계급이 다른 두 여성이 평생의 친구가 되기로 약속하고 서로의 우정을 나누기 위해 여성들 만이 사용했다는 문자로 부채에 사연을 써서 주고받는 장치를 사용한다. 

그와 비슷하게 <해녀들의 섬>에서 영숙과 미자는 문맹인 점을 감안해 자신들이 만난 돌담이나 건물의 벽 등에 종이를 대고 석탄으로 문질러 추억을 판화처럼 만들어 간직하는 설정이 나온다. 글을 쓰고 읽지 못했던 영숙에게 우정을 기억할 특별한 방법을 마련했던 미자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 우정의 그림들을 증손녀를 통해 영숙에게 전한다. 


자신이 겪은 비극이 너무 컸기 때문에 미자의 진실을 오해하고 외면하고 마음을 닫아버렸던 영숙의 비극은 단지 친구를 잃은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부서진 관계는 다음 세대에서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끝내 영숙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미자 역시 평생을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이념전쟁은 권력을 얻고 재산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 그 전쟁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힘없는 국민들에게는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고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 가슴 아픈 역사를 소설을 통해 체험하는 것은 주변의 상황에 대한 감수성과 판단력을 키워 또 다른 비극과 상처를 우리 역사에 남기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저자가 한국인이 아닌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주로 여성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처한  사회적, 역사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제주 해녀들이 근현대사의 비극적 소용돌이를 원초적 생명력과 사랑으로 헤쳐 나가는 모습을 여성의 관점에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호소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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