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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Feb 21. 2024

이브(1)

2억 년 동안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 온 여성의 몸

딸내미가 재미있을 것 같다고 추천하면서 도서관에서 빌려준 이 책을 대출 기한 3주를 꽉 채우고 드디어 다 읽었다. 오래 걸린 것은 책이 지루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정말 재미있고 영감에 가득 찬 책이었다. 내게는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 만큼이나 놀랍고 신기하고 영감을 주는 책이었다. 다만 생소한 고생물들의 이름과 신체 부위의 명칭들을 일일이 사전에서 찾아가며 읽어야 했고 책 분량도 만만치 않아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게다가 저자의 각주는 그것만 모아도 책 한 권이 족히 될 듯한데 그 내용도 단순히 참고자료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본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더해주는 것들이 많다. 저자가 이 책을 쓰는데 10년이 걸렸다는 말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캣 보하논Cat Bohannon은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이야기와 지각Narrative and Cognition>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다지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공부를 계속하느라 생물화를 그리는 미술 전공생들의 누드모델 노릇도 했고 실험실에 피와 소변을 팔기도 하고 매춘산업에 자칫 한 발을 들여놓을 뻔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한편으론 시인이기도 하고 음악 활동도 했다. 이런 이력 탓인지 그녀는 사회적 타부나 논쟁적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데 거침이 없다. 자신의 논거를 풀어나가기 위해 문학작품과 영화,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스토리까지 광범위한 자원을 활용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그녀는 분명히 페미니스트이지만 성차별을 단순히 평등주의적 관점에서 조명하지 않는다. 그녀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재생산 기능이 어떻게 인류의 과거를 현재로 이끌었고 또 미래를 결정지을 것인가라는 보다 생물학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오늘날의 성차별주의를 인류의 진화를 잘못 이끄는  잘못된 선택으로 조명하고 있다. 여성의 순결성을 강조하고 남성의 폭력성과 마초이즘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 낙태 반대론, 어린 소녀들의 강제 혼인 풍습, 생리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에 대한 왜곡된 인식, 가난과 교육에서의 성차별이 인류의 미래에 왜 암운을 드리우는 것인지를 다양한 사례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인류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저자는 여성의 몸의 진화 과정에서 각각의 특징이 시작된 시기의 최초의 생물을 이브라고 부르고 그녀가 살았던 환경을 에덴이라고 부른다. 그 말은 우리에게는 단 한 명의 이브와 그녀가 살던 단 하나의 환경-에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이브와 에덴이 있었다는 말이다. 여성 몸의 특징 별 이브와 에덴을 밝혀내기 위해 약 2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여성의 몸의 진화를 따라가면서 인간 진화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첫 이브--- 젖을 생산한 모르기Morgie.

모르기라고 애칭이 붙여진 모르가누코돈Morganocodon은 2억 5백만 년 전 쥐라기 시대에 살았고 대충돌 이후에도 살아남아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화석은 지구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진화의 나무에서 족제비와 쥐의 중간쯤 되는 곳에 위치한다. 모르기는 딱정벌레를 주로 먹이로 삼았는데 당시 딱정벌레는 매우 흔했기 때문에 이는 생존을 위해 아주 좋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모르기의 번창에 기여한 것은 새끼에게 먹일 젖을 생산한 것이다.


모르기의 오래전 할머니는 알을 낳았다. 그 알은 딱딱한 껍질이 아니라 파충류 알처럼 부드럽고 질긴 가죽질의 껍질을 가지고 있었다. 가죽질의 껍질은 어미의 칼슘을 보존하는데 유리한 전략이지만 알이 쉽게 말라버릴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모르기는 알을 덮어주는 끈적한 침 같은 액체를 분비하는 특수한 분비선을 골반 근처에서 발달시켰다. 지금도 바다 거북이 등은 알을 낳은 후 이런 배설물로 알을 덮고 그 위에 모래를 덮는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은 껍질에 묻은 이 끈적한 액체를 핥아먹는데 이것이 새끼들의 첫 식사이고 젖의 유래다. 이 액체는 어미가 몸속에 가진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어서 새끼들에게 일정한 면역능력을 주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르기 대에 이르면 이 분비선은 더 많은 물과 설탕, 지방을 가진 물질을 분비하게 되었고 드디어 특수한 가죽으로 덮인 수유용 반점patch을 발달시켰다. 오리주둥이를 가진 오리너구리는 오늘날까지도 엄마의 축축한 모유 패치에서 젖을 핥아먹는다. 오리너구리는 젖꼭지가 없다.

뿐만 아니라 단지 수분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영양분이 많은 젖을 생산하여 새끼에게 먹이는 것은 아직 어린 새끼들이 어미와 함께 안전하게 둥지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연장시켜 새끼들이 사냥꾼들의 먹이가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탁월한 생존 전략이었다.


젖꼭지를 가진 이브는 2억 년 전 모르기와 1억 년 전 유대류(캥거루) 사이 어디쯤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한다. 모르기의 축축한 젖 패치는 아직 털로 덮여 있었고 젖이 새끼의 입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도왔을 것이나 흘리는 것도 많았을 것이다. 낭비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좀 더 특별한 입구(젖꼭지)는 어렵지 않은 진화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모유의 중요성, 가치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생아에게 영양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모체가 가진 면역능력-항체를 전달하여 신생아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주요 자원이기도 하다. 모유에는 심지어 인간이 소화시킬 수 없는 설탕 성분 올리고사카리드oligosaccharides도 있는데 이것은 순전히 신생아의 장에 거주하는 박테리아를 위한 것이다. 올리고사카리드는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프로바이오틱스는 예를 들어 정원에 심는 식물과 같다. 프리바이오틱스는 정원에 비료를 주고 가꾸는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한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 발달된 유방은 엄마에게는 큰 대가를 치르게 하기도 한다. 유방암은 유선 세포를 가진 모든 동물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호르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선 세포는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악성 세포로 변화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여성 암환자의 30%가 유방암인 반면 남성은 1%에 불과하다. 유방을 가지고 젖을 생산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 일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한 과업인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상당히 재미있는 주장을 한다. 여성의 수유에 대한 고대 공동체들의 법이나 문화적 차이가 도시 공동체들의 인구 증가의 차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바빌론의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유모를 고용하는 것이 허락되고 널리 퍼진 사회적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에 이미 수유모들을 위한 법이 있다. 수유부를 고용하여 직접 모유를 먹이지 않는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임신 주기가 3-4년에서 1-2년으로 단축되었고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노아의 방주’ 신화가 기원한 것으로 여겨지는 수메르의 홍수와 방주에 대한 신화가 사실은 유모들을 너무 많이 고용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도시의 인구가 폭발하자 만든 여성의 출산을 조절하는 법과 관련된 신화라는 것이다. 그것이 히브리족에 의해 도시화의 죄악을 고발하는 신화로 각색된 것이다.


인류의 인구의 팽창을 이끈 것이 오직 농업에 의한 생산력의 발전이라고 여긴 기성의 진화인류사적 관점에 도전하면서, 저자는 여성의 수유 기능을 모유 자체의 우수성과 더불어 인구 증가의 동력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바라본다


                                    두 번째 이브---자궁/태반을 처음 가진 돈나Donna

원시의 태반은 1억 5천 년 전~2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본다. 돈나가 지금과 같은 하나의 자궁과 하나의 골반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쥐(mice & rats)는 아직도 각각의 자궁 경부를 가진 2개의 자궁을 가지고 있다. 8천만 년 전 코끼리와 돼지의 자궁은 윗부분이 원뿔 모양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아래쪽은 서로 합쳐진 형태이고 자궁 경부는 하나였다.

대략 6천6백만 년 전 주로 날아다니는 곤충을 높은 나무 가지 위에서 잡아먹고살았던, 오늘날의 다람쥐 크기만 한 동물 Protungulatum Donnae-애칭으로 돈나라고 부르는 동물이 태반류 자궁의 이브이다. 그녀의 다리는 모르기와 달리(모르기의 다리는 도마뱀처럼 양 옆으로 벌어져 있다) 골반에서 땅 쪽으로 더 곧게 뻗어 있다. 진수하강 동물(넓은 의미의 태반류 동물)들에게 있어서 골반의 변화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불러오는 자궁을 위해서 골반이 대접 모양을 하는 것이 필요했다. 또 도마뱀처럼 배를 땅 위로 끌고 다니지 않고 수태한 자궁을 땅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들어 올리도록 골반을 업그레이드해야 했다.


대강 2억 년 전 모르기가 존재하기 직전, 포유동물 계통은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단공류 즉 단 하나의 구멍으로 알을 낳는 동물. 둘째는 유대류로 알을 낳는 곳과 작은 젤리콩 같은 새끼가 기어들어가 젖을 핥는 외부로 돌출된 직장 같은 주머니를 가진 동물. 그리고 셋째가 세 개의 구멍으로 구성된 여성의 골반 프로그램을 구축한 진수하강eutherian 포유류이다. 알을 낳는 경우 알 통로와 배변 구멍이 같지만 껍질이 새끼를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새끼를 배설물과 같은 구멍으로 낳는 것은 새끼의 위생에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진수하강류에게는 모체 안에서 성숙된 새끼가 세상에 안전하게 나오기 위해 특별한 통로가 필요했다.


단공류에서 유대류나 진수하강류로 분화하는 것은 결국 모체의 재생산 플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알을 만드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할 거냐 아니면 태반을 만들고 그 속에서 새끼를 키우는데 더 투자할 것이냐 하는 것은 모체가 당면한 환경과 그 종의 신체 플랜과 관련되어 있다. 어떤 전략도 공짜는 아니다. 대가를 치러야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요소들이 있다. 알을 낳지 않고 몸속에서 키우는 것의 이익은 자명하다. 대충돌 이후 모든 것이 불타고 얼어붙은 지구에서 알이 있는 보금자리를 계속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은 곧 먹이를 찾아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훨씬 넓어진 것을 뜻한다. 알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할 걱정도 없고 알이 건조해질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진수하강류 동물은 새끼를 배속에서 키우고 낳는 전략을 선택했다. 배설물의 통로와 격리된 출산 통로를 자궁과 연결시켰다. 이 분리가 ‘올바르고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길을 만드는데 그다지 많은 세대가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분리과정이 완벽하지는 못한 경우도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들에게서 여러 종류의 불완전한 형태의 자궁이나 기형적 형태의 배설강, 남성 성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여성의 경우 지금도 대략 350명 중 한 명의 소녀가 정상적인 하나의 성기의 끝에 각각 두 개의 자궁과 자궁 경부를 가지고 태어난다. 진화 프로그램의 결함인 셈이다. 우리는 아직 자궁의 결함을 완전히 제거할 만큼의 충분한 진화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월경은 태아와 모체의 전쟁에서 서로 윈윈 하기 위한 전략

돈나의 후손들 중에서 인간처럼 자동적으로 자궁 내에 내막을 만들었다가 밖으로 배출하는 동물은 매우 드물다. 대다수는 그것을 다시 흡수한다. 여성이 월경을 왜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자궁이 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이론을 도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궁내막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저층basal layer과 기능층functional layer이다. 기저층은 자궁벽의 근육 안쪽에 붙어있다. 이 층은 매월 떨어져 나오지 않는다. 여성이 매달 버리는 것은 기저층이 생산한 기능층이다. 수정란이 이 기능층에 안착하면 탈락막으로 재빠르게 변화하는데 탈락막을 깊숙이 파고든 수정란은 자신 쪽의 태반을 만들기 시작한다. 즉 태반은 수정란의 조직과 모태의 조직 양쪽에 의해 형성된다. 별개의 생물체에 의해 하나로 만들어진 동물세계 유일의 기관이 태반이다. 반면에 수정체의 안착이 이뤄지지 않으면 모태의 기능층은 파괴되어 배출된다. 여기에서 흥미 있는 부분은 배출이 아니라 애초에 왜 수정란이 올 것이 확실하지 않은 시기에 기능층이 만들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태반은 성장하기 위해 모체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영양분을 빼앗으려는 태아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는 모체의 투쟁 전략으로 진화했다. 만족을 모르는 수정란으로부터 모체를 지키기 위해 수정란이 도착하기 오래전부터 정기적으로 내막을 형성했다.


탐욕스러운 뱃속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는 모체의 전쟁.

우리는 여성이 아기를 임신하고 낳는 것이 그저 여성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그래서 크게 위험하지 않은 보통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여러 면에서 생명을 건 전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전쟁은 양쪽의 균형이 깨지고 선을 넘으면 둘 다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전쟁이다. 태아는 모체로부터 더 많은 영양분을 가져가기 위해 모체의 혈관을 넓히는 물질을 보내고 모체의 방어체계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면역반응을 약화시킨다. 임신 중독증은 이 활동이 선을 넘었을 때 발생하는 결과이다. 이 전쟁의 과정에서 여성의 면역체계에 변화가 일어나 면역성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기도 하고 특정 암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기도 한다.


                              세 번째 이브---최초로 지각을 가진 영장류 푸르기 purgi

Pugatorius는 7가지의 멸종된 진수하강 eutherian 동물의 유전자이다. 푸르기purgi가 알려진 가장 최초의 영장류이며 인간에게 처음 지각을 물려준 이브이다. 이 이브의 등장은 대충돌 이후 변화된 생태계 즉 양치류와 침엽수가 지배하던 지구가 재로 덮인 후 새로 조성된 에덴에서 태어났다. 속씨식물로 뒤덮인 숲의 도착과 식물의 진화는 나무 위에서 살던 동물들의 진화를 촉발시켰다. 땅에서 높이 자라난 가지들에 달린 꽃과 과일이 우리의 이브에게 지각을 탄생시켰다. 나무 위에서 곤충을 잡아먹었던 돈나와 다르게 푸르기는 어떤 과일이 잘 익었는지, 어떤 잎이 연하고 영양분이 많은지를 구별해야 했다. 또 나무에서 과일을 따고 그것을 붙들고 먹기 위해 앞발의 기능을 더 복잡하게 발달시켰다. 가지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나 거리감에 대한 발달된 지각 능력도 필요했다.


푸르기는 매우 많은 후손을 두었다. 그들 중 일부는 당시에는 매우 번창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멸종되었다. 푸르기의 후손들 중 살아남은 종이 현재의 영장류이다. 머리가 크고 납작한 얼굴을 가졌고 대부분이 아직 나무 위에서 산다. 그들은 과일이 익었는지, 나뭇잎이 어리고 영양분이 많은 때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이 필요했다. 잎으로 빽빽한 숲의 높은 곳에서도 새끼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했다. 과거의 조상들만큼 먹이를 찾는데 많이 사용하지는 않지만 성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가 필요했다.


이런 지각 능력에 성적 차이가 있었을까?

기본적인 능력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다. 단지 여성의 귀는 약간 높은 음성에 더 예민하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자의 듣기는 낮은 음역대에 더 맞춰져 있는데 여자의 듣기는 높은 소리에 더 예민하다. 이 높은 음역대가 아기가 울 때 내는 주파수 2kHz와 일치한다. 즉 영장류가 전체적으로 넓게 흩어지고 느슨한 무리를 짓고 울창한 숲을 뚫고 의사전달을 해야 하는 생활 형태에 맞게 더 낮은 소리를 내는 쪽으로 진화했지만 암컷들은 고음을 내는 새끼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신들의 특수한 능력을 보존해야 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능력은 신체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감정적 반응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여성이 더 잘 들을 뿐만 아니라 그 소리를 멈추게 하기 위한 행동을 취하는데 더 빠르다는 것이 실험으로 입증되었다.


인간 여성이 붉은색과 어린잎의 녹색에 더 민감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역시 임신과 출산에 필요한 영양분을 더 많이, 효과적으로 얻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현대 여성 중에는 새나 곤충들 같은 4색 수용체를 가진 비율이 10%가 넘는다고 한다. 다만 시각은 단지 수용체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각적 신호를 받아 연결하고 3D 영상으로 만드는 두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3색 수용체의 신호를 받고 해석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진화한 두뇌는 4색 신호를 무시하거나 폐기하기 때문에 정작 그 당사자들은 차이를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네 번째 이브---2족 보행의 원숭이 아르디Ardie

아르디피데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 가 2족 보행 인류의 이브이다. 4.4백만 년 전에 앞발의 관절로 걷는 자세에서 벗어나 곧추선 자세로 걷는 것이 보통이 된 종이다. 침프와 인간의 마지막 공동 조상 이후 3-4백만 년 후의 일이다.

1990년 대 중반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화석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뒤늦게 이 화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르디는 여성의 다리와 엉덩이, 척추, 어깨를 가진 최초의 2족 보행 원숭이, 우리의 이족보행의 이브이다. 그녀는 침팬지와 털 많은 인간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다. 직립보행을 했지만 아직 많은 시간을 나무 위에서 지냈다. 땅 위를 두 발로 걷는 것은 근골격계에 큰 부담이 된다. 아르디는 아마도 최초로 만성적 허리 통증, 무릎 통증, 임신과 관련된 근골격계 문제를 안게 된 우리의 이브였을 것이다.


땅과 나무 위에서 거주하던 영장류가 허리를 펴고 걷게 된 것이 여성의 임신, 출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앞 두발이 나무에 매달리거나 땅을 딛는 기능에서 무엇인가를 들거나 옮기는 데 유리한 형태로 진화한 것은 여성의 육아 역할과 관련이 깊다. 독립 전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어린 새끼를 돌보는 것은 어미의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 중에 아르디에 대한 연구를 최초 발표한 학자는 새끼를 돌보느라 채취활동에 나갈 수 없는 암컷들이 안정적인 음식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원시적 일부일처제를 취했다(섹스와 음식을 맞교환하는)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대책은 대단히 불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이 못 되었다. 또 아르디의 치아 형태를 볼 때 수컷들이 사냥해 오는 고기 보다 과일과 식물들을 주식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저자는 (남성 학자의 단혼제를 유머로 넘기고) 암컷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스스로 장거리 여행을 했을 거라고 본다.


임신을 했거나 새끼를 낳은 암컷은 더 많은 음식의 확실한 확보가 필요했다.

점점 먹을 것이 적어지는 환경의 변화 역시 제한된 숲을 떠나 들판 너머 다른 곳으로 채집활동을 다니게 만든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암컷은 새끼를 한 팔에 안거나 엉덩이에 걸치고 다른 팔로 채집한 먹거리를 들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이 환경이 암컷의 신체적 진화를 촉발한 것이다. 오래 걸을 수 있고 앞 두 발이 걷는 것보다 물건을 드는데 유리한 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족 보행의 진화는 여성의 진화로부터 촉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우리의 몸의 특징이 이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해 준다고 본다.

즉 남성의 근육은 순간적 힘의 폭발에 유리한 섬유가 많은 반면 여성은 장시간에 걸친 지속적인 운동에 관여하는 섬유가 많다. 또한 포유류는 탄수화물만을 에너지 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근육세포를 변환하여 지방과 아미노산을 대사 할 수 있는데 특히 가임기의 여성은 그런 대사의 전환을 사용하는데 더 우수하다. 원기회복을 더 잘할 뿐만 아니라 더 오래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몸에 있는 지방세포를 분해해서 사용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여성의 신체 계획에 더 잘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이런 특정한 종류의 지방 대사에 관련된 유전자가 남성보다 젊은 여성의 몸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여성의 뼈근육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세포보다 오래 견딜 수 있는 세포가 우세하다는 점, 세컨드 윈드second wind(장거리 마라토너가 기진한 상태에서 다시 원기를 회복하여 경기를 지속시키는 어떤 순간의 경험을 뜻한다)를 더 잘할 수 있는 내재적 조건을 갖고 있다는 점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류가 최초로 거주하던 숲을 떠나 넓은 초원이 펼쳐진 바깥세상으로 걸어 나올 때 그 길을 이끈 것이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 레이스에 강한 여성의 몸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미국 레인저 부대 최초의 여성간부가 된 캡틴 그리스트Griest에 대한 흥미진진한 사례를 소개한다. 아울러 남. 녀 혼성부대의 물리적. 심리적 장단점에 대한 분석도 상당히 재미있다. 여성의 군복무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한번 들여다볼만하다.


지금까지의 인간에 대한 의학적 연구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거의 모든 연구는 남성의 몸을 상대로 이루어졌으며 심지어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들도 수컷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따라서 여태까지 축적된 데이터도 모두 남성에 대한 연구 결과이며 이에 기반하여 처방되는 약도 남성. 여성 구별 없이 동일하게 주어진다. 이러한 처방이 문제가 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성차별주의 때문이라고 전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다고 보는데 그중 하나가 여성의 생리주기(특히 포유류의 경우)가 실험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본다. 실험 대상의 재생산주기를 통제하는 것은 실험 기간의 연장과 비용의 증가, 여러 예상치 못한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연구자들은 실험대상을 ‘남성’으로 단순화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에 대한 질문들 '왜 월경을 하는가?' '왜 폐경이 오는가?' '여학생은 남학생 보다 수학에 약한가?' '여성은 남성보다 지능이 낮은가?' 등의 전통적인 질문들에 대한 과학적 대답을 찾는 과정이 인간의 몸의 성적 차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올바른 의학적 발전을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모든 의학적 연구에 여성을 적극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 한다. 단순히 산부인과 분야만이 아니라 모든 의학분야와 약품의 실험 대상에 여성이 포함되어야 하고 그 결과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한국에서 "성별차이 규명"을 위한 의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서울분당서울대병원에 <성차의학연구소>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생물학적 '성별'이나 사회. 문화. 심리적인 '젠더' 차이가 질병 발생과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성차의학>이 170cm-65kg-남성을 표준으로 운영해 온 한국의 의학연구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는 한겨레 기사가 있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 책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몇 가지 개념만 소개하는 대신 최소한 이브의 각 단계 발전과 진화의 맥락을 이해할 정도는 소개하고 싶어 쓰다 보니 줄이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책이 번역. 소개되지 않은 것 같으니 관심 있는 분은 우선 이 글을 통해 어느 정도 감을 잡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번역작업을 진행 중이고 곧 한국어로 출판되길 기대합니다.  곧 (2)편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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