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미국 방문 중 동생의 집 뜰에 심어준 군자란)
요즘 아침저녁으로 한국에서 사시는 어머니로부터 “잘 잤느냐?”, “잘 자라” 안부를 묻는 문자를 받는다. 한 일주일 정도 되었다. 가족 단체방을 통해서 보내는 어머니의 메시지는 자식과 손자 손녀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어머니는 가족방에 올라오는 내용들을 보기만 하셨지 당신이 문자를 보내는 것은 거의 못 하셨기 때문이다. 실수로 눌러진 'ㅇ'이나 'ㅣ' 같은 글자가 가끔 보내져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휴대폰의 작은 자판을 제대로 누르는 것 자체가 어머니의 굳은 손가락으로는 고난도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
('못 아들'은 '모두들'로 읽으시면 됩니다.)
어머니는 텃밭을 돌보고 운동을 하고 TV 뉴스와 드라마를 보는 중간중간 잠시 틈이 날 때 휴대폰에서 가족방에 올라온 우리들의 얘기와 사진을 들여다보는 게 낙이고 취미 활동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혹시 새로 올라온 게 없나 살펴보곤 하셨다. 직장 일로, 혹은 학업으로 바쁘기도 하지만 천성적으로 무뚝뚝하고 너스레를 떨거나 아양을 부릴 줄 모르는 우리 형제들이 가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올리는 문자나 사진들 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자식들이 올리는 문자를 기다리기만 하던 어머니가 먼저 당신의 소식을 전하고 자식들의 안부를 물으니 자식들은 아무리 바빠도 매일 인사를 하고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구순이 넘은 어머니가 문자를 보낸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놀라고 열렬히 환호하며 어머니를 추켜세웠다. 그러다 보니 가족방은 아침저녁으로 매우 바쁘고 활발한 공간이 되었다. 특히 귀가 어두워 영상통화를 하는 것도 힘들어했던 어머니는 이제 마음껏 하고 싶은 말씀을 주고받게 되어 더 기뻤을 것이다.
어머니가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많은 분이 짐작하신 대로 음성-문자 전환 서비스 덕분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 좋은 서비스를 나도, 다른 자식들도 사용할 생각을 못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이다.
어머니 덕에 처음 음성-문자 전환 서비스를 써본 우리는 이름을 제대로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지 처음 알았다. 이름을 제대로 인식하고 한글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로 말하자면 영어로 구글에 정보를 묻거나 길을 묻는데 실패하면서 내 발음의 ‘후짐’을 뼈저리게 깨닫고 음성 서비스 이용을 기피했던 부작용으로 한국 앱에 그런 서비스가 있는지 관심도 가진 적이 없다. 우리는 이제야 너도 나도 음성 전환 서비스를 이용하며 신기해 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사람들이다.ㅎㅎ
휴대폰에 마이크 그림이 떡 하니 있는데도 그걸 뭣에 쓰는 건지, 한 번 써 볼 생각도 안 해본 자신을 생각하면 ‘아이고…’ 한탄이 나올 정도로 부끄럽고 한심하기도 하다.
어머니가 지난 2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심한 복통과 설사 증세가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 일어서면서 넘어지셨다. 마침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이라 119에 당신이 직접 전화해서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고가 있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는 열흘 남짓 동안 미국에서 급하게 날아온 둘째 딸이 어머니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담낭에 염증이 발견되어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연세가 많아서 수술은 권유할 수 없는 상태이고 염낭이 커서 염증이 가라앉을지, 가라앉아도 다시 재발 확률도 높다고 했다. 무엇 보다 염낭이 터지면 생명이 위독해질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머리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침 여권 갱신을 위해 여권을 반납한 상태였던 나는 바로 서비스 캐나다에 가서 50$를 더 내고 급행으로 여권 발급을 신청했다. 주말이 끼어 있어서 월요일에나 여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 사는 둘째가 곧바로 어머니 곁으로 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염증으로 약간의 열이 있어서 병원에서는 어머니에게 밤새 이불을 제공하지 않았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어머니는 병원의 처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밤을 이불 없이 새운 어머니는 아침이 되자 화를 참지 못하고 격노(^^;)하셨다. 사람을 무시하는 거라고, 높은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고집부리는 어머니를 달래고 이해시키느라 동생이 무던히 애를 썼다.
다행히 염증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병원 복도를 걸으며 다시 힘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언니는 오지 않아도 되겠다는 동생의 말에 나는 일단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연세가 많으니 한순간 한순간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하고 조심스러운 삶을 어머니가 살고 계신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 사건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금식이 풀리고 죽에서 밥으로 전환하자 조금 힘을 회복한 어머니는 특유의 생명력과 사회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운동 겸 복도를 걷다가 휴게실에 앉아 있는 다른 환자에게 다가가 당신의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며 친밀함을 쌓고 그이의 휠체어를 밀며 운동을 하셨다.
동생은 병원에 머무는 동안 무료한 어머니를 위해 음성 메시지를 문자로 보내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마이크 표시를 누르고 말을 하면 글자로 바뀌고 그 후에 보내면 된다는, 우리에게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만 휴대폰에 나타나는 모든 글자나 그림이 낯선 어머니에게는 마이크가 화면에 나타나게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퇴원 후 집에 온 어머니는 새로 배운 문자 전송 방법을 익히기 위해 부단의 노력을 하셨다. 문자로 몇 번 다시 설명을 하고 드디어 어머니의 첫 성공작이 가족방에 올라왔다.
그 이후 어머니는 매일 아침저녁 인사를 하신다.
이모티콘 사용법도 배워서 아낌없이 하트를 담은 이모티콘도 날리신다.
어떤 날에는 희한한 암호 같은 메시지도 보내신다.
내용을 잘 뜯어보면 숨겨진 비밀을 찾아낼 수 있다.
TV를 틀어 놓은 채 메시지를 보낼 준비를 해서 뉴스를 중계한 경우도 있다.
어머니는 이제 산다는 것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고 조심스럽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래도 꿋꿋하게 사는 동안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할 수 있을 만한 일, 해보고 싶은 일을 시도한다. 어머니 사전에는 포기도 게으름도 없다.
어머니는 퇴원한 지 며칠 안 되어 옥상에서 지난 화분들을 정리하고 새로 고추씨를 뿌렸다.
위기를 넘기고 또 하나의 봄을 맞이한 어머니가 신기술을 이용해 자식들에게 아침저녁 인사를 보내는 소중한 나날이 한 없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활기찬 답장을 보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