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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Jun 11. 2024

몰몬교의 성지 솔트 레이크

캘리포니아주에서 동쪽으로 바로 곁에 있는 주가 네바다주이다. 네바다의 드넓게 펼쳐진 황무지 같은 벌판에 보이는 문명의 흔적은 우리가 달리고 있는 아스팔트 깔린 찻길, 몇 시간을 달려야 겨우 만나는 작은 동네가 전부이다. 심지어 그 긴 시간을 달리는 동안 지나가거나 마주치는 차량도 몇대 안 된다.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한 도시와 다른 도시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시속 120km로 몇 시간을 달려야 하는 긴 거리를 아스팔트로 포장한 인간들, 우리의 문명을 생각하면 그 부지런함과 그 부지런함을 촉발한 욕망의 힘에 새삼 놀라게 된다.

네바다의 황무지는 그것 그대로 아름답다. 한국인에게는 사실 가장 낯설고 새로운 풍경 중의 하나일 것이다. 덤불 식물과 사막성 식물로 뒤덮인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가다 보면 가끔 눈 쌓인 들판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 무더운 사막에 웬 눈? 하다가 눈이 아니고 소금밭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운전대를 내게 맡기고 옆 좌석에 앉아 마음껏 창밖 풍경을 즐기게 된 동생이 대단히 만족스런 투로 말한다. “아! 나는 이런 게 정말 좋아. 이렇게 한없이 들판을 달리는 게.." 세 시간쯤 달렸을까? 음악을 켜고 파란 하늘을 향해 달리는 듯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던 동생이 갑자기 계기판을 들여다본다. "아, 이런, 출발할 때 기름을 넣었어야 했는데... 깜빡했네. 180마일 (290km) 더 갈 수 있다고? 다음 주유소까지 얼마나 되지? 시리siri에게 물어본다. 200마일(320km)? 안 되는데... 큰일 났네." 지나가는 자동차조차 드문 네바다의 황무지 한가운데서 우리는 공포에 휩싸였다. 일단 크루즈 속도를 경제속도로 줄여 최대한 연료를 아끼며 전진하는 수밖에 없지.  즐거움으로 가득 찼던 명랑 만화가 공포와 서스펜스가 넘치는 호러물로 변한 것 같았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구글이 잡지 않은 작은 주유소가 나타나 주는 것뿐이다. 그렇게 가스 기록이 줄어드는 것을 힐끗거리며 1시간 가까이 달리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환성을 질렀다. "있다!~~ 주유소~~" 호러물에 완벽한 해결사가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 준 것이다. 기름을 배부르게 채운 동생은 더욱더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자로 돌아갔다.


네바다주 황무지를 동쪽으로 계속 달려 새크라멘토에서 출발한 지 9시간 만에 유타주 솔트 레이크 시티 근처 호텔에 도착했다. 유타주에 들어서면 길가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유타주에서는 이들이 크릭creek이라고 부르는 시냇물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시냇물 가에는 연녹색의 활엽수들이 자라고 있어 공기의 색깔마저 네바다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짙은 황토색과 검푸른 밀도 짙은 유화에서 밝은 연녹색과 투명한 하늘색이 어우러진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솔트 레이크 시는 유타주의 농촌 지역이 대체로 보수적인데 반해 자유로운 기풍을 가지고 있어서 상당한 규모의 LGBT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매년 6월에는 유타 프라이드 페스티벌이라는 다양한 종류의 성소수자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에서 <후기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로 불리는 몰몬교는 동부에서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초기 교인들이 이곳 유타주 깊은 산속에 정착하면서 지금의 솔트 레이크 시의 기초가 되었다. 그들의 지도자는 조셉 스미스라는 인물이다. 우리는 몰몬교의 성지인 템플 스퀘어와 본부 빌딩등을 안내를 받아 돌아보았다.


이곳을 안내하는 사람들은 몰몬교의 선교사(missionary)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우리를 안내한 두 선교사는 한 명은 필리핀에서 왔고, 또 한 명은 오레곤 주에서 간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고 했다.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1년 동안 선교사로 일하기 위해 왔다는데 식사와 잠자리 등 생활 일체를 본부에서 해결해 준다고 했다. 주변에 젊은 총각은 없느냐? 연애는 하느냐? 는 한 할머니의 짓궂은 질문에 두 여성은 수줍은 듯 고개를 내젓는다.

선교사 중에 남성이 한 명도 없다는 것, 그들이 설명해 주는 교회 지도자(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12명의 지도자가 있다) 중에 여성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들의 설명에 따라도 정착 초기 몰몬교의 교세를 확장시킨 것은 다름 아닌 초기 지도자의 아내였던 여성으로 보였다. 그녀는 공동체의 부녀자들에게 곡식을 모으게 하고 관리하고 씨앗을 주변에 나눠주어 기아를 해결하도록 도와 몰몬 공동체가 기존 주민들 사이에 자리 잡고 환영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였다. 여성들이 과거에나 지금이나 이렇게 기여도가 높은데 왜 그동안 지도자 중에 여성이 한 명도 없느냐는 내 질문에 도서관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나이 많은 여성이 대답했다. 몰몬은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많은 역할이 주어지고 있다고.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지만,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는 최초의 공개적 동성애자 시장이 탄생했고 유타주는 미국에서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주이다. 게이와 레즈비언 몰몬교 형제들이 유명한 유타 프라이드 페스티벌을 탄생시키고 이끌고 있으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리버럴 한 종교인 것에 놀랐다. 적어도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한국의 보수 기독교보다 훨씬 개방적인 것은 분명하다.


몰몬교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초기 이주 때부터 공동체를 사회적 안전망으로 철저하게 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새 개종자들에게는 정착할 집과 생계를 유지할 일거리나 땅이 주어졌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양부모가 지정되었고 자녀가 없는 노인들에게는 자녀를 정해주었다. 홀로 된 사람에게는 아내나 남편이 지정되었다. 이들이 초기에 일부다처제를 채용했던 것도 아마 고대 팔레스틴 땅이나 유목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생활능력이 취약한 여성과 아동, 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부다처제를 둘러싼 연방정부와 유타의 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갈등은 1857년 유타 전쟁으로 극에 달했고 1880년대까지 많은 지역 지도자들이 반 중혼제 법을 어긴 죄로 옥에 갇히기도 했다. 결국 교회는 1890년에 새로운 매니페스토를 발표해서 몰몬교 정착지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중혼을 금지하는 연방법을  따르도록 하였다. 아마도 몰몬교회가 가족을 맺어주는 것은 옛 방식의 일부다처제를 대신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대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서 우리를 열성적으로 안내하던 나이 지긋한 여성은 자기는 남편을 잃은 지 3년쯤 되었는데 지금 약혼자가 있고 곧 재혼을 하게 된다고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아들은 컴퓨터로 홀로 된 신도들의 유전자를 조사해 서로 가까운 사람끼리 가족으로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아요? 새로운 가족을 갖게 된다는 것이?"

가족이 꼭 혈연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내게도 교회가 인위적으로 가족을 만들어 준다는 사실은 좀 놀랍게 여겨졌다. 사람들이 그 관계를 얼마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평화를 지향하는 몰몬교의 지도자들은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행해지는 이스라엘의 전쟁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 정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는 동생의 질문에 "우리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지향합니다"라는 소박하고 무난한 대답이 돌아왔다.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책임지고 공동의 번영을 추구한 몰몬교가 지금의 유타주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힘이다. 이들의 검소하고 책임감 있고 부지런한 생활의 결과물을 겉에서 슬쩍 들여다보았을 뿐이니 그 속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솔트 레이크 시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템플 스퀘어이다. 이곳에는 몰몬교의 성전과 본부, 공연장, 도서관 등 중요 시설들이 모여 있고 수백 개에 달한다는 상점들이 들어선 쇼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거리 주변을 걸으며 참 조용하고 잘 정돈되고 고전적이며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유명한 몰몬교 성전은 현재 리노베이션 중이라서 내부 관람을 할 수 없었다. 대신 센터 내부에 관광객들을 위한 성전의 모형이 세워져있다. 내부 구조까지 알 수 있도록 전면만 외부 벽 모습을 보여주고 돌아가며 세 면은 내부의 방들과 시설들을 볼 수 있도록 바깥 벽이 제거된 인형의 집처럼 제작되어 있다. 40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그들의 성전은 몰몬교도들에게는 성스러운 장소인듯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설명을 한다.


그들의 극장은 흔히 기독교의 예배당이 강단 전면에 내거는 예수의 십자가 상징이 없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다. 이 극장에서는 오전에는 오르간 연주 연습이, 오후에는 유명한 몰몬 성전 합창단의 합창 연습이 이뤄지고 관강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일 년에 두 번 공연이 있는데 전 세계에서 2만 명이 넘는 교인들이 모인다고 한다. 극장은 오르간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고 소박하고 실용적이다. 그들의 가치관대로 본부의 건물도 검소하고, 화려한 장식이나 벽화로 치장되어 있는 기독교의 일반적 교회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들에게 유일한 장식은 꽃인 것 같았다. 몰몬교의 옛 극장은 천정이 돔 형태로 되어있는데 역시 이곳도 무대 전면에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잡고 있다. 새 극장보다 오히려 파이프 수가 더 많다고 하고 지금도 작은 규모의 행사는 이곳에서 치룬다고 한다. 여기도 젊은 여성 선교사들이 두명 씩 짝을 지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센터 건물의 유일한 장식인 천정(왼쪽) 극장(오른쪽)

우리는 이 도시에서 유명하다는 자연사 박물관을 생략하고 자연 자체를 만나러 앤틸롭 섬으로 출발했다. 솔트 레이크 시티와 솔트 레이크 사이는 넓은 늪지대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섬은 그 늪지대 가운데 있다. 늪지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자하고 차를 세우자 자동차의 열기를 감지한 모기떼가 시커먼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차 안에서 모기 퇴치약을 뿌리는 동생 덕에 질식사할 뻔했지만 나 역시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기약을 사정없이 온몸에 뿌려야 했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모기 퇴치 스프레이가 꼭 있어야 한다는 관광객 할머니의 충고를 듣길 잘했다. 이 늪에는 수없이 많은 미생물과 어종과 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소금 농도가 바닷물의 7배가 넘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생명이 적응해 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늪지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너 엔틸롭 섬에 도착했다. 섬 주변을 돌며 호수를 보기도 하고 옛 농장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 농장 역시 한 몰몬교 가족이 신입 개종자들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하던 양 목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여름 한 철 관광객을 위해 옛 생활모습을 전시하고 피크닉 정원으로 개방하고 있다. 자동차 길 근처에는 넓은 풀밭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거나 낮잠을 즐기고 있는 야생 소Bison 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 섬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방문객 안내센터와 기념품 가게, 편의시설이 있다. 그곳에서 가벼운 트레일 코스로 호수 전체를 360도 조망할 수 있는 바위 언덕에 올라갈 수 있다. 360도 탁 트인 전망은 비록 높지는 않지만 가벼운 구름이 흩어져 있는 파란 하늘과 호수, 호수에 비친 눈 쌓인 산, 늪에서 자라고 있는 갈대밭이 어우러져 있는 시원스러운 풍경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전먕대에서  비리본 풍경들

솔트 레이크 시티에 오면 꼭 봐야 한다는, 수백개에 달한다는 상점들과 하루를 아이들과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자연사 박물관 대신에 소금 호수와 늪지대, 그 가운데 있는 섬을 둘러본 것에 조금도 아쉬움이 남지 않은 하루였다. 저녁 7시 30분에 몰몬교 극장에서 유명한 성가대 연습이 있다고 했으나 노쇠한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내일은 엘로스톤 국립공원으로 출발한다. 그 길에는 또 어떤 아름다움과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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