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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Jun 14. 2024

옐로스톤 국립공원

 신들을 만나는 땅

솔트 레이크 시에서 옐로스톤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다. 북쪽으로 5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차는 유타주를 넘어 아이다호주로 들어선다. 옐로스톤은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아이다호와 와이오밍, 몬타냐주에 걸친 거대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옐로스톤이라는 이름은 황 성분이 많이 들어있는 간헐천이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이 물에 노랗게 물든 바위나 돌들로 땅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상당히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3,000미터가 넘는 산봉우리만도 40개가 넘는다고 한다. 평균해발이 2000미터가 넘는다.

국립공원 안과 밖은 호텔 가격이 대단히 차이가 나지만 공원이 워낙 넓어서 공원 밖에 짐을 풀면 공원에 들어가고 나가는데 하루 족히 두세 시간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비싼 공원 안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물론 비싼 경비는 모두 "가진 게 돈밖에 없다"라고 외치는 동생이 다 부담하고 있다. '다른 많은 것을 가졌지만 돈은 가지지 못한' 나는 이번 여행도 동생에게 빌붙어하고 있는데 동생은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줘 오히려 고맙다고 말한다. 하긴 세 살 터울인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언니를 따라다니며 놀고 싶어 무척 애를 태웠는데 무정한 나는 그런 동생을 떼어놓고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훨씬 긴 다리로 줄행랑을 놓곤 했다. 이제 거의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으니 동생은 원하던 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까.


티튼Teton산맥과 매디슨Madison산맥이 자리 잡고 있는 서쪽 통로, 구불구불 산길을 달려 옐로스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진다. 들판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풍기는 황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숲과 초원과 간헐천과 호수가 어우러진 공원은 지구의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경을 선사한다.

옐로스톤에서 가장 유명한 간헐천 올드 페이스풀에 도착해 제너널 스토어에 들어갔다. 식당 한쪽 벽에 간헐천이 분출하는 시각이 쓰여있다. 약 90분마다 솟아오르는데 다음 시각이 6시 10분.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5시 30분경.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나. 화장실을 이용하고 천천히 걸어 간헐천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찾았다. 물론 단 번에 바로 찾아가지는 못했다. 동생은 오래전에 한 번 와본 기억에 의존해 방향을 잡았고 구글 맵은 아무리 봐도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 녀석은 올드페이스 풀의 입구 주소지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 결국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기억과 첨단 기술이 모두 정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뒤돌아서 전망대를 찾아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간헐천이 품어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번의 시동(?) 끝에 드디어 힘차게 물을 뿜어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셀폰을 눌러댄다. 얼핏 보아도 전문가용처럼 보이는 사진기들을 세워놓고 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신기한 쇼가 끝난 후 숲길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바로 앞에 넓은 옐로스톤 호수가 펼쳐져 있다. 해지는 호숫가에서 붉게 비치는 구름과 아직 남아있는 호수 가장자리 하얀 얼음들을 감상하다 추위에 몸을 떨며 체크인을 하러 로비로 들어섰다. 이틀 밤은 이곳 호텔의 캐빈형 숙소에서 머물 예정이다. 동생은 언젠가 이런 캐빈에서 하룻밤 자보고 싶었다며 즐거워했다. 내부는 상당히 편안하고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외풍이 상당하다. 난방을 좀 세게 틀어야 했다. 고지대라서 춥기도 했을 것이다. 짐을 풀다 보니 기압이 낮아서 팽팽하게 부푼 과자 봉지에 웃음이 터졌다. 엘로스톤 안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어렵다. 호텔 메인 빌딩 로비에 가야 약하게 전파를 잡을 수 있다. 원시의 땅에 가까운 곳이니 와이파이 없이 며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호텔 식당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우리가 예약을 하려 했더니 한 시간 뒤인 8시 반에 오라고 한다. 매우 늦은 저녁이지만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자 한 동생의 계획에는 특별한 뜻이 있었다. 분명 야생 들소 고기 요리가 있을 것이고, 여기 온 이상 그것을 한 번은 꼭 먹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약 시간에 맞춰 호텔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받아 든 메뉴에는 '그것이' 없다. 그냥 일반 식당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메뉴들. 나는 그나마 송어 요리를 선택했다. 옐로스톤에는 송어가 많이 산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본격적인 구경에 나서는데 동생이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실은 어젯밤 호텔 식당에서 캐빈으로 돌아오는 길에 타이어 경고등이 켜져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 어디에 정비소가 있을까? 걱정하면서 일단 기름을 넣을 수 있다는 가까운 피싱 브리지Fishing Bridge 타운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 가니 주유소 옆에 <All parts, Auto repair> 라는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구세주를 만난 듯 기쁜 마음으로 정비소에 가서 정중하게 물어보니 선뜻 가라지 문을 열고 타이어를 체크해준다. 타이어 뒷쪽 바퀴 두개의 공기 주입구 캡이 없어서 공기가 빠지고 있다는 것. 순식간에 공기압을 맞추고 캡도 씌워주더니 수고비도 거절한다. 여행을 망치는 건 아닐까 내겐 말도 못하고 혼자 밤새 걱정했던 동생의 얼굴이 햇살처럼 밝아졌다. 얼마나 좋은 아침인가! 아마도 어젯밤 호텔 식당 근처 남의 캐빈 뒷쪽에 한 시간 정도 차를 세워두었는데 그 때 누군가(아마도 그 캐빈의 임자)가 해꼬지를 했으리라 짐작했다. 우리 캐빈 앞에도 다른 사람의 차가 세워져 있었지만 우리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그 옆 빈자리에 세웠었는데... 사람 마음이 똑 같지는 않으니까... 고약한 인간들 같으니라구!


우리는 오늘 치의 사건.사고를 잘 해결하고(1일 1 해프닝이 우리가 정한 한계이다) 본격적인 구경길에 나섰다. 옐로스톤 둘레길(loop)들을 돌며 색깔 고운 물들이 솟아오르고 흘러내리며 만들어 낸 풀pool과 계단식 석회암 바위들을 구경했다. 분출되는 연기들이 너무 짙어 풀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곳도 있고 마치 팔레트처럼 작은 여러 개의 풀 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도 있다. 가장 유명하고 큰 가이저 풀은  그랜드 프리즈마틱 스프링Grand Prismatic Spring과 웨스트 썸West Thumb에서 볼 수 있다. 커다란 가이저geyser 와 작은 가스 물방울이 뽀글거리며 솟아올라 만들어진 다양한 색깔의 물웅덩이 둘레로 긴 보드워크길이 만들어져 있고 곳곳에 지정된 길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나무 울창한 숲을 지나가다 차들이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뭔가 동물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새끼 곰과 그 밑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어미 곰을 보기도 했고 새끼 두 마리를 거느린 어미 곰이 숲 속에서 배회하는 것도 보았다. 한 번은 길 한가운데서 세상 편하게 천천히 걷고 있는 들소 뒤를 따라 천천히 차를 움직여야 했다. 코요테도 보았다. 사슴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제일 많이 눈에 띄는 건 역시 태평하게 무리 지어먹거나 쉬고 있는 초원의 들소 떼이다.

그리즐리 가족(왼쪽)  야생 들소들의 힘겨루기(오른쪽)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식당이나 방문자 안내소가 모여 있는 센터를 제외한 관광지역에는 자연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좌변식이긴 하지만 직접 살을 대고 앉는 게 꺼려져 스쿼드 자세로 볼일을 보았다. 커피를 많이 마신 탓에 오전 중엔 특히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해서 평소 스쿼드 운동을 열심히 해두길 잘했다고 말하며 시연을 하려 하자 동생이 제발 너무 구체적으로 말하진 말라며 도망을 간다. 아직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시기가 아니어서인지 자연 화장실은 깨끗하고 냄새도 심하지 않았다. 손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없는 대신 손 세정제가 비치되어 있다.


여행을 하면서 한국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공중 화장실을 찾는 것이 아주 쉽고 또 대부분 깨끗하게 잘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국립공원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공원이나 자연 휴양지에 공중화장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참 편리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공중 화장실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다. 대신 편의점이나 주유소, 식당의 화장실을 손님들에게 개방하고 있는데 공짜로 쓰려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긴 한다. 그런 시설들은 일반인이 사용을 요청할 때 거절할 수 없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지 확인해 본 적은 없다. 아무튼 한국이 여행자들에게 편리하긴 한데 자연을 보호하는 측면에서는 많이 뒤떨어져 있는 것 같다. 북미 지역에서 여행하는 동안 식당 주변이나 휴식 공간 이외의 지역에서 음식을 잔뜩 펴놓고 먹는 사람도 별로 본 적이 없고 아무 데나 버려진 쓰레기나 플라스틱 병 같은 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을 얘기하다 어찌 화장실 얘기로 새어 버렸는가... 이 역시 인간이 자연에 관계하는 방식이며 자연을 지키기 위해 생각해봐야 하는 일인데 이곳의 자연식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한국의 편리했던 관광지 화장실이 생각나고 내가 그것을 선호하는가? 얄팍하게 마음속에 갈등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마음속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제도화되는 것, 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옐로스톤 공원 여기저기를 드라이브하는 동안 초원 곳곳에서 그리고 산비탈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수많은 수증기들이 외계행성에 온 듯한 강렬한 충격을 받게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풍경은 웨스트 썸 근처 옐로스톤 호숫가 트레일을 걸으며 만난 풍경이다. 호숫가에는 크고 작은 웅덩이에서(웅덩이 마다 각각 이름이 붙어 있다) 가스들이 뽀글거리고, 숲과 하늘이 비친 투명한 호수는 바다같이 넓다. 서쪽 하늘에 구름인지 달인지, 얇은 솜털같은 하얀 반달이 그림처럼 걸려있다. 이틀 동안 경이로운 풍경에 흥분되고 들떠있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들이 그들의 신과 가장 깊이 교감했던 것은 이런 시간, 이런 곳에서가 아니었을까. 놀라운 자연을 만들어 내고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존재라기보다 신비한 자연세계 속에서 생명을 꽃피게 하고 돌보고 영혼을 맑게하는 그런 존재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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