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연금이 처음으로 통장에 들어온 날의 감흥
76세의 가을에, 뜻밖의 기쁜 소식을 받았습니다.
제2회 한국작가 문학대상 수필부문에서 <나는 연금이 나온다!> 외 1편으로 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은퇴 후의 삶 속에서 ‘평안’과 ‘자립’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주택연금이 제 인생에 준 새로운 자유를 담고 있습니다.
글을 쓰며 배운 것은,
살아온 이야기도 ‘문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수필 전문을 게재합니다.
1970년대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연금에 대한 나의 감정은 이러했다. 은퇴 후 매월 200달러의 연금을 받아 동남아시아에서 두 부부가 해외 생활을 즐긴다는 글을 볼 때마다 부러워했었다.
2000년대에는 미군부대에서 일하다가 은퇴한 해방촌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들이 매월 600달러의 연금을 받으러 택시를 잡아 영내 은행을 출입하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학교 선생님이나 공무원인 커플을 가장 부러워했다. 한 가정에서 두 몫의 연금을 받으며 은퇴 후 생활하는 가정은 얼마나 풍족하게 살까?
50년이 넘게 흐른 요즈음은 퇴직연금 이외에 노후소득을 위한 국민연금이 1988년도에 시작되었고, 주택연금은 2007년도에 시작되었다. 나의 경우는 IMF 시절(1997년) 퇴직하게 되어 국민연금 불입이 10년을 넘기지 못해 일시금으로 받아 결국 생활비로 다 소진하게 되었다. 훗날 다행히 외국인 관광 택시 운전을 시작하며 소득이 생기자 국민연금 일시금 받은 것을 반환하고 60세에 조기 수령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수령한 금액이 60만 원이었다. 지금은 매년 물가 상승률이 적용되어 매월 91만 원을 수령하고 있다. 국민연금 추납제도는 어려운 살림 형편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이미 반납한 금액의 8배 이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 부부는 언제부터인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5억이 되길 바랐다. 70세가 넘으면 주택연금 월지급금이 아파트 시가 1억 당 매월 30만 원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월 150만 원에 국민연금을 합하면 최소 생활비로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당시 언남동의 구축 아파트는 그 절반 가격이어서 기다려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흥역 힐스테이트 아파트 청약에 성공하여 2015년 3.6억 원에 계약하였다. 기흥구 구갈동에 위치한 5개 신축 아파트 단지 중 기흥역과 브리지로 연결된 힐스테이트 아파트는 2018년 입주하기 전부터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언남동 집을 팔고 모자라는 돈은 융자(대출)로 충당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외국인 손님이 뚝 끊어지자, 72세로 자영업에서 은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택시 운영 고정비 지출을 계산해 보니 월 150만 원이 넘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쉬어야 하고 월 150만 원이 지출된다니 빨리 그만둘수록 재정관리에 도움이 된다. 이전부터 주택연금에 관심이 있던 터라 한국주택금융공사에 상담 신청을 했다. 궁금한 내용들을 수첩에 메모하고 상담사에게 꼼꼼하게 물어보았다.
그동안 아파트 시세가 꾸준하게 올라 계약 금액의 두 배인 7.2억 원이 되었다고 한다.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니 월 210만 원의 지급액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런데 주택 담보 대출 금액 7,500만 원이 마음에 걸렸다. 이 금액을 전액 상환하면 현금이 하나도 없이 연금만 갖고 생활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아내는 현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다행히 '종신혼합방식'으로 인출한도액을 7,500만 원으로 정하고, '전후 후박형'을 선택하면 최종 209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10년 후에는 30%가 감소된 금액(146만 원)을 받게 되지만, 아내는 70세로 80세 이후에는 해외여행도 힘들어 못하게 되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와 같은 최종 결정은 두 딸과 사위가 함께한 가족회의를 열어 모두가 찬성을 했다. 2020년 4월 당시는 신탁 방식이 없을 때여서 저당권 방식을 택했다.
4월 초에 계약했는데 4월 16일 은행으로 첫 월지급금이 입금되었다. 아내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편안해요"라고 했다. 자영업은 그날 벌어 그날 쓰게 되어 늘 불안했지만 이제는 다시 직장 다닐 때처럼 고정급여를 받아 계획적으로 살림을 할 수 있어 좋다고도 했다.
아내는 자식들에게 손을 안 벌려도 되었고 오히려 손주들에게 용돈도 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적지 않은 지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친구들과 회식을 하면 당당하게 내 몫을 내게 되었다. 주택연금에 가입한 지 벌써 만 5년이 지났다.
평안한 날들이 지속된다. 둘째 딸이 10여 년 전 엄마에게 선물했던 기아 승용차 로체 이노베이션을 처분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생애 마지막 차로 'K8 하이브리드'를 구입했다. 10여 년 전 아내의 고관절 수술로 얻은 장애인 자격 덕분으로 어디를 가도 주차하기가 쉬운 게 참으로 감사하다. K8은 아내의 전용 차량이다. 걱정되는 건 오직 자식들 걱정이다.
나는 과감하게 주택연금으로 주택담보대출 문제도 해결해 냈고 미래의 주택 가격 하락에 대한 걱정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내가 먼저 죽으면 국민연금도 절반만 수령하게 되고, 주택연금은 누적금액이 부채로 간주되어 쉽게 기초연금을 받게 되었으나 기초연금 역시 절반만 받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현재 84m² 아파트를 처분하고 60m²의 실버타운으로 이전하여 다시 주택연금을 가입하는 방안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작은 규모의 주택으로 이전하면 불편하지만 관리비와 유지비를 줄일 수 있고 차량도 처분하면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환경에 맞추어 개선하며 지혜롭게 살아간다. 장수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익화 방안을 강구하며 대비해 나간다.
살아있는 날에 감사하자.
주택연금은 자기실현을 가능하게 한 제2의 원동력이다.
이번 수상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격려’로 느껴집니다.
연금이 나온 날의 감격을 글로 옮기며,
저는 다시 한번 “삶은 계속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이 상을 ‘결승점’이 아니라,
『두 번째 설계도 – 인생 후반전을 빛낼 생애 전략』으로 가는 출발점으로 삼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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