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대학에서 세계인의 대학으로
오늘날 한국 대학은 ‘생존’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위기 속에서, 일각에서는 대학의 숫자를 인위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구조조정 끝에 현재 한국의 대학은 384개(전문대학 포함)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4,000여 개의 대학을 보유한 미국, 3,000개가 넘는 중국, 그리고 1,100여 개의 종합대학이 있는 인도의 사례와 비교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열기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 과연 학교의 인위적 감축이 절실할 만큼 많은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이제 대학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해 보기를 제안한다. 대학은 더 이상 ‘내국인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축소가 예정된 기괸이 아나리, 시선을 ‘세계인을 위한 대학’으로 돌려야 한다. 캠퍼스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다양성을 지탱하는 가장 역동적인 지식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역량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QS 세계 대학 순위 100위권에 5개, 200위권에 7개 대학이 이름을 올린 상위권 대학들의 활약은 괄목할 만하다. 이제 이러한 세계수준 대학의 평판이 국가 전체의 교육 생태계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지방 거점 국립대학들은 시설과 교수진 면에서 이미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부산대학교가 증명했듯, 전략적인 관리와 투자가 병행된다면 지방 대학들도 충분히 세계 500위권 안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500위권은 전 세계 상위 2%에 해당하며, 이는 우수한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기에 충분한 ‘인증마크’가 된다. 2030년, 대한민국에 500위권 대학 25개가 포진하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우수한 학생이 모여 우수한 연구가 나오고, 그 성과가 다시 인재를 부르는 선순환의 고리가 여기서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공부는 한국에서 하고 취업은 제3국으로 떠나는 구조보다는 유학 강국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현재 10% 수준인 유학생의 국내 취업률을 일본 수준인 3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한국에서 공부하면 한국의 혁신적인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 유학생의 숫자는 자연스럽게 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다.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주는 혁신성과 개방성, 그리고 한류라는 흥미진진한 문화 자산은 이미 전 세계 젊은이들을 초대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10년 전 뉴욕을 방문했을 때, 도시 전체가 전 세계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놀이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내뿜는 창의적인 활기는 도시 전체를 숨 쉬게 하고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 또한 전 세계 젊은 세대에게 그 시절 뉴욕만큼이나 가장 재미있고 혁신적인 장소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문화적 활력을 캠퍼스라는 공간으로 질서 있게 받아들여 보기를 희망한다. 인구 구조의 전환기에 서 있는 지금, 대학이 유학생들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소통하는 '작은 지구촌'이 되어준다면 어떨까. 대학이 먼저 국적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정하게 어우러지는 포용적인 시스템을 갖춘다면, 우리 사회가 맞이할 변화를 부드럽게 수용하는 든든한 완충지가 되어줄 것이다. 한국 학생과 유학생이 지성인으로서 함께 성장하는 캠퍼스가 미래 한국 사회의 모범적인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12세기 볼로냐 대학을 기억한다. 뚜렷한 국적의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기, 오직 지식으로 서로를 설득하고 다양성이 융화되었던 그 찬란한 ‘지적 보편주의’의 현장 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캠퍼스라는 공간을 통해 그 볼로냐의 정신을 다시금 재현해 보면 어떨까?
전 세계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이 한국에 모여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그 성과가 인류 공영과 세계 발전에 기여하는 고등교육 생태계. 국적과 인종을 넘어 ‘배움’이라는 가치 아래 하나가 되는 캠퍼스. 이러한 고등교육의 대전환을 성공시킨다면, 대한민국은 세계 고등교육 발전사에 ‘혁신과 포용을 이룬 국가’로서 또 하나의 위대한 궤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대학이 이제 생존을 넘어 공존의 무대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세계 젊은이들의 신뢰를 받는 '지식의 전당'과 창조의 실험터가 되기를 꿈꾸며, 그 미래를 향한 여정에 많은 이들이 뜻을 함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