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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세계>의 선과 악

<신세계>에서 신화적 요소 찾아보기

by JISU
박훈정, <신세계>, 2013

# 선과 악, 경찰과 정청,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


“살려는 드릴게”라는 명대사와 함께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 <신세계>를 보았는가.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신화적 요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의식을 하며 영화를 다시 보니 신화와 캐릭터들의 성격이 잘 어우러져서 하나의 퍼즐이 완성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여 <신세계>와 신화적 요소를 연결 지어 게시물을 써보려 한다.


먼저 영화는 전체적으로 경찰과 골드문 그룹이라는 대립 구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경찰은 골드문 그룹 이 더욱 막강한 힘을 갖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그들의 영역에 개입을 해오고 있었다. 신화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모든 신은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침범하는 경우에는 큰 사건이 터지게 된다. 이처럼 경찰과 골드문 그룹의 관계는 신화 속 신들 간의 충돌을 떠오르게 한다. 올림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다른 신들의 도전에 대응했던 사례처럼 말이다. 제우스는 자신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강압적이고, 교활한 방식을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선과 악의 경계는 흐려진다.


신화는 대게 신들을 선으로, 인간을 악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보통의 사회에서 경찰은 절대 선이고 폭력 조직은 절대 악이다. 이자성은 접선책과 만날 때 바둑을 둔다. 경찰은 백돌을 두고 작전상 조직폭력배인 이자성은 흑돌을 둔다. 영화는 첫 부분에서 명백히 경찰이 백, 선임을 주지 시킨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점점 더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출장길마다 자성에게 선물을 건네며 친형제로 대하는 것은 흑돌인 정청이다. 같은 경찰임에도 자성을 철저히 기만하고 이용하는 것은 백돌인 경찰이다. 경찰은 큰일을 위한 희생이라며 동료를 버리는데, 정청은 배신에도 불구하고 동료를 끝까지 지켜 준다. 과연 누가 흑돌을 잡아야 하는 것이고 누가 백돌을 잡아야 하는 것인지, 바둑판을 내던져버린 이자성처럼 영화는 선과 악의 절대성을 분쇄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가 떠올랐다. 전통적으로 제우스는 신들의 왕으로서 정의와 질서를 대표하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불을 독점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은 권위적인 폭군으로 느껴진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입장에서 신성한 질서를 어지럽힌 반역자이지만, 인간의 편에서 문명과 지식을 선사해 준 선구자이다. 이 신화가 선과 악의 경계는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고, 선과 악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중심 스토리와 닮아 있다.



# 오만한 자들의 추락, 아이아스와 이중구


영화에 나오는 오만한 자들의 추락은 아이아스의 최후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가지고 오디세우스와 언쟁을 벌이다 패배한다. 이에 분노한 아이아스는 오디세우스와 아가멤논이 작당하여 자길 모욕했다며 전쟁을 일으키려 하나, 아테네의 술수로 가축들을 죽이고 수치심을 느껴 자살한다.

하지만 아테는 원래 아이아스를 도와주려 했었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가 도움을 주려할 때, “평범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신의 힘을 안 빌려도 이길 수 있으니 딴 사람이나 도와주라”라며 오만하게 거절한다. 그의 오만함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의 목을 쳤다.


영화 속 가장 오만한 인물은 단연코 이중구이다. 그는 차기 회장 자리를 두고 이사들을 불러 다음 이사회에서 자신을 회장으로 밀라고 협박해 차기 회장이 되려 한다. 아버지 뻘의 선배들을 불러 놓고 협박이라니, 이렇게 건방질 수가 있을까? 영화에서의 임팩트와 별개로 이중구라는 캐릭터 자체는 속 빈 강정 같다. 이중구는 체포됐을 당시 정청이 자신을 경찰에 팔아넘겼다고 착각해서 분노하는데, 그럼에도 아무런 반격을 못했다는 것은 이중구 측에 정청을 고발할 마땅한 자료가 없었다는 것이 된다. 또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부하의 말에도 “밥 먹는데 무슨 일 얘기를 하냐”며 얼버무린다. 마땅한 계획도 없으면서 무모하게 일을 벌인 모습이 무턱대고 전쟁을 일으킨 아이아스와 닮았다.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보면 담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영화에서 나오는 담배는 권력을 뜻한다고 한다. 정청과 이중구는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는데, 이 둘의 마지막이 대비가 된다. 정청은 마지막에 담배를 피우며 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정말 아꼈던 이자성을 위해 권력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중구는 끝까지 담배를 피우며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까지 권력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하는 이중구의 모습은 권력과 명예를 위해 죽음조차 불살랐던 아이아스와 또 한 번 닮아 있다.



# 오만한 자들의 추락 2 - 강 과장


이중구 못지않게 오만한 자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경찰 측의 강 과장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자성을 쥐고 흔들며 그것도 모자라 정청, 이중구 등을 완전히 자신의 아래로 본다. 그가 목표로 하는 신세계는 악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수조의 물고기들처럼 가둬놓고 관리하는 것이다. 국내 최대의 범죄 조직을 손안에 쥐고 관리하겠다니, 자의식 과잉이 아니고서야 이런 무모한 계획은 꿈에도 못 꾼다. 강 과장의 아지트인 폐쇄된 실내낚시터는 그가 꿈꿔온 신세계 그 자체이다. 그곳의 물은 썩어 있고, 썩어 있는 물에서는 아무것도 낚지 못한다. 이런 허황된 강 과장만의 신세계, 낚시터에서 그는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자신의 피로 그곳을 물들이게 된다.


# 헥토르와 정청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정청 또한 신화에서 연상되는 이가 있다. 바로 헥토르이다. 남의 아내를 탐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헬레네의 금지된 사랑으로 트로이전쟁은 촉발되었다.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은 철없는 동생의 행동을 감싸 안으려는 헥토르의 행동은 이자성이 스파이임 알면서도 그를 보호하려는 정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싸움터에 나와 미친 듯이 날뛰는 아킬레우스를 보고 트로이 병사들은 도망가기 바빴으나, 헥토르는 그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는다. 헥토르는 숨을 거두면서도 아킬레우스에게 “너의 죽음도 멀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정청은 엘리베이터에서 홀로 몇 명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지만 “드루와”라는 명대사를 날리며 결코 피하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뜻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그들은 서로를 닮았다.


영화 안에 담긴 권력과 욕망, 남자들의 의리,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리스 신화에 서 그려내는 모습들과 별 반 다르지 않다. 누군가에게 흑과 백은 선과 악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흑과 백은 단순한 구분일 뿐이다. 어떤 해석을 내리느냐,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서 흑은 내편이 되기도 하고 상대편 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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