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책 편집을 몇 시간째 집중하다 머리를 식힐 겸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깜짝 놀란 장면이 있었다.
어떤 기생식물에 관한 영상이었는데 땅 위로 싹이 올라 겨우 몇 잎을 낸 식물 주위로 기생식물이 뿌리도 없이 기다란 촉수 같은 몸통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장면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기생을 해야 하는 식물도 숙주가 되는 식물도 3일이 고비란다. 3일 안에 숙주를 찾지 못하면 기생식물은 자체 영양공급할 뿌리가 없어서 죽고 숙주는 3일 안에 기생식물의 촉수에 걸리면 살아있는 내내 기생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다 죽게 된다. 문제는 두 가지 다 식물이라는데 있었다. 둘 다 움직여서 무언가를 찾거나 도망칠 수가 없다. 최대한 자신을 숨겨야 하는 숙주와 누군가에게 기생해야 하는 식물이 바로 코앞에 있으면서 끊임없는 생사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소름이 돋게 했다. 그 짧은 30초의 공포가 놀이터에서도 설거지할 때도 잊히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어떠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러이러 한 사람이라는 허상을 가지고 내 본연의 자아에 기생하고 있진 않은지. 허상이 무한한 자아를 갉아먹게 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본다. 때로 사람들은 나는 안돼, 옛날부터 재수가 없었어, 운도 지지리도 없지라는 허상을 가지고 나아가거나 도전하려는 자아를 옥죄고 숨 쉴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또 우연한 행운이 찾아와 나를 한순간 변화시켜 주고 삶을 기름지게 해 줄 거라는 허상을 꿈꾸기도 한다.
어렸을 때 백설공주나 신데렐라를 보며 언젠가 나를 구해줄 왕자를 기다리기도 했었다. 완벽한 누군가가 나의 아픔도 어루만져줘야 하고 무한 신뢰와 넓은 이해를 동반하여 나를 안고 가야 한다고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또 살다 보면 과거의 자신의 꿈을 자식에게 기생해서 이루려는 사람도 있다. 내 안에서 나왔다고 해도 땅을 뚫고 나온 이상 완전히 다른 독립 생물이라는 걸 잊어버리며 칭칭 감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끌어당기며 숨이 막히게 한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강하게 드는 생각은 왕자나 어떤 구원자를 찾는 것보다 나는 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진정한 나. 지나간 과거와 미래의 허상에 기생하지 않고 오롯이 현재의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기생식물에 잡아먹히지 않고 오직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오늘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