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 감사한 날들

by 이혜연
이게 무신 일이고

세상의 수많은 자리 중에

부모의 자리만큼 무겁고

귀한 자리가 있을까


지구가 달의 노래에

파도를 만들고

작물을 키우듯이


아이의 웃음이

아빠가 된 나를 살게 하고

아이의 슬픔이

엄마가 된 나를 일어서게 한다


살면서 이해 안 되던 것들은

너의 질문에서 답을 찾고

좁디좁은 마음도

너를 품으며 조금씩 늘려간다


참을 수 없이 미미했던 존재의 가벼움이

온 우주를 품은 너를 안으며

무게를 얻게 되었다


너를 만나

감사한 하루를 보내게 되고

너로 인해 완성되어 가는

오늘이다





오밤 중에 안방에서 이게 무신 일이고?


며칠 전에 우리 부부는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세금이 많이 올랐고 나와 신랑은 돈에 대한 기본 신념에서 차이가 있는 편이었기에 권투 하듯 서로에게 타격을 입히려 열심히 싸웠다. 그랬더니 어제 우리 첫째가 잠깐 안방으로 들어오라며 그전에 복장을 갖추란다. 모자를 씌우고 무릎담요를 함께 덮어쓰라고 하더니 아빠는 엄마 어깨에 손을 두르란다.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배에 포켓몬 카드 한 장씩을 꽂아주었다. 아직 뭣모르는 둘째는 나와 신랑 사이에 서 있으란다. 그리곤 2층 침대 위로 올라가 편지를 읽는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싸우지 마세요. 따뜻한 우리 집.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포켓몬 카드 한 묶음으로 사 주세요."


아들 둘은 아들 하나와 다르다.

장난이나 상상초월한 일들에 복리효과가 엄청 센 캐릭터들이 된다.

둘째가 5살 때부터 요놈들은 사진만 찍자고 하면 요상한 포즈들을 취해서 이제는 사진 찍는 걸 포기하고 있다. 안 볼 때 몰래 찍거나 무언가 몰두해 있을 때 고개를 들지 않는 모습으로만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역시나 엄마 아빠 화해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며 첫째가 핸드폰을 들이댔을 때 둘째는 자신만의 포즈로 열심히 존재를 어필하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요 며칠 냉랭한 찬바람이 쌩쌩부는 모습에 불안했는지 둘이 머리를 쓰고 뭔가 꾸미더니 오밤중에 이런 일을 계획했나 보다. 웃음도 나고, 반성도 되고 또 마음이 짠하면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감동도 밀려왔다.


나는 여자이고 사회인이며 누군가의 아내이기도 하지만 그중에 가장 큰 영광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이름일 것이다. 엉뚱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불안하지 않게 내 안의 마그마를 잠재우고 불을 내뿜는 티라노 사우르스를 물리쳐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른해지는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