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나 결혼 전까지 친한 친구들은 내가 음식도 하나도 못 하고 집안일도 안 하는 공주과라고 생각했다. 오죽하면 서른에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친구 두 명이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며 아기 돌보듯 돌봐줬었다. 사실 음식도 곧잘 하고 손도 빨랐는데 친정에서는 많은 집안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밖에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 못하는 척을 했었다.
또 친구들은 항상 날 아기 돌보듯 했기 때문에 못 하는 척 항상 기대어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게 결혼 후에는 한시도 쉬지 않고 음식을 하고 있다. 외식을 싫어하는 신랑 덕분에 365일 아침저녁을 하는데 그게 익숙해지니 여행을 와도 점심 이외엔 숙소에서 해 먹는 게 편한 상태가 되었다. 어제 욕심껏 잡아온 동죽으로 칼국수를 해먹기도 하고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서 해장국으로도 맛있게 먹었다. 주위에도 골고루 나눠드리니 보답으로 김치며 반찬거리가 돌아와서 매번 상차림이 화려해지는 기쁨이 있다.
찐분홍의 아카시아
오후엔 부모님 산소 주변으로 가득 심어진 나무들을 정리한다고 오빠 식구들과 동생이 왔다. 새언니가 아프기 때문에 식사 준비며 다른 것들을 준비하느라 하루종일 부엌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아이들을 데리고 산과 들을 산책하며 나물도 채취해 오고 못 보던 식물들도 발견하는 즐거움을 가졌다.
처음보는 아카시아
야생의 부처꽃
낡은 담벼락 밑의 아름다운 야생화
그중에서도 처음 본 찐 분홍의 아카시아는 향은 흰 아카시아보다 덜 했지만 화려한 분홍빛 꽃이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아이들과 논두렁사이를 달리며 작은 올림픽도 하고 벌레들의 애정행각을 지켜보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함께 모여 서로에게 기대어 추억을 쌓으니 더없이 아름다운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