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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 감기는 누가 걸리나

by 이혜연
오뉴월 감기는 누가 걸리나

텃밭엔 감자, 고추

열 맞춰 심어 두고

겨우내 거름 뿌려 준비한 논엔

산 너머 저수지물 끌어다

찰방찰방 오월 따스한 햇살 가득 담아두었는데

논두렁 비탈진 곳까지

살뜰히 옥수수 심어놓은 그이는

때아닌 오뉴월 감기로

봄 하늘 밑에 늘어져있네


저기 밭고랑 사이로

상추씨를 더 뿌려둘까나

봄 햇살도 녹이지 못 한 한기에

으슬으슬 떨리는 어깨너머로

산그림자 짙게 깔린

질척 질척 물러진 논에

모 심을 날짜 헤아려본다



장맛비처럼 내리는 비에 갇혀 하루종일 빈 텃밭을 보자니 어렸을 적 이맘때 생각이 어제일처럼 떠올랐습니다. 어린 내 손까지 빌려야 할 정도로 바빴던 오월에 하릴없이 오뉴월 감기까지 걸려 운신이 어렵습니다. 덕분에 쏟아지는 빗소리를 마음껏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예전 엄마라면 고추모종 옮겨 심고 고구마 심어놓고 모내기 준비하는 이때 내리는 비를 단비라며 고마워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버이날이 코앞이라 자식들 내려온 이웃집 담장너머에 두런두런 이야기소리가 들려올 때면 아무것도 심어져있지 않은 시골집 텃밭처럼 허전한 마음 가눌 수가 없습니다. 텅 빈 마당 가득 커다란 빗소리가 가득 울리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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