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하늘이 찢어진 듯 굵고 요란한 비가 내리는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저 폭우에 한 발짝이라도 내딛으면 그대로 쓸려 영원까지 길 위를 떠돌아야 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밤새 시골집 마당을 울려대며 어둠 속에서 노려보고 있던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잠이 들면서도 집이 무사히 버텨주길 기도하며 잠을 청했다.
새벽에 빈 양철 대문이 요란하게 부딪히는 소리에 놀라 아이들 얼굴을 살피니 소란스러운 소리에도 깨지 않고 다행히 잘 자고 있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의 기운이 모두 쇠했으면 어쩌나, 지붕이 무너져내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밤을 보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아침이 되니 간밤의 태풍 같은 비가 잠잠해졌다. 걱정이 되어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니 작은 실개천이 몇 배로 불어나 강을 이루고 있었고 이제 막 피어난 작약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고개를 한껏 숙이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집은 간간히 들르는 자식들의 숨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처럼 간밤의 광란의 바람을 버텨내 주었다.
여행의 마지막 아침은 아이들과 산책으로 시작했다. 모내기 준비로 한창인 논길 옆으로 잘 정돈된 산책길이 있고 거기엔 벚꽃나무와 아카시아, 청둥오리, 백로들이 소란스러웠던 밤을 잘 견딘 것에 대해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이웃 어른들이 주신 반찬과 엄마가 생전에 담가놓은 7년 묵은 묵은지로 김치찌개를 끓여 맛있게 아침을 먹고 골목에서 아이들과 피구를 하며 놀아주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집은 언제나 떠날 때 뭔가 가슴에 무거운 돌이 얹히는 그런 먹먹함이 있다. 한동안 다시 혼자가 될 집을 위해 꼼꼼히 청소도 하고 낡은 수건들도 다시 세탁해서 마루 한편에 널어두고 창문 사이로 얕은 숨구멍처럼 바람구멍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허전해 다시 고향집을 둘러보니 해마다 마당 한편에 농사짓던 작물들이 올해는 하나도 없어 땅이 텅 비어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 옆집 아주머니가 고구마순과 옥수수를 주셔서 빈 땅에 작은 고랑을 만들어 심어두었다.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작물보다 풀이 먼저 무성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엄마가 생전에 빈 땅을 놀리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땅을 채워두고 오고 싶었다.
부모님의 시골집 담벼락은 곧 쓰러질 듯한 모습이지만 매 해 봄이 되면 노란 야생화가 그 낡은 담에 기대어 피어나주고 있다. 자신을 지켜주리란 믿음으로 허물어져가는 담을 버팀목 삼아 피어나는 노란 꽃 덕분에 낡은 담도 한 해, 두 해 시간을 견디며 버텨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꽃에게 감사인사를 마지막으로 하고 한동안 다시 오지 못 할 대문을 잠그고 돌아섰다. 바람만 휑하게 드나들 시골집에 노랗게 피어난 꽃들이 집도, 마당도, 부모님도 걱정하지 말라며 생그럽게 웃어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