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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건 나쁜 노래야!!

by 이혜연
엄마, 이건 나쁜 노래야!!

"웃는 얼굴

예쁜 얼굴

웃어요, 웃어요, 웃어요

.

.

언제나 어디서나 미소를 지어봅시다."


차 안이 지루함으로 가득 찰 즈음 아이들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해서 틀었더니 이 노래가 나왔다. 그런데 뒷좌석에 있던 둘째가 대뜸 "엄마, 이건 나쁜 노래야!!"라고 소리쳤다.

어떤 상황이 와도 웃음을 짓는 여유로운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을 품으라고 독려하는 노래가 왜 갑자기 나쁜 노래라고 하는 거지? 궁금한 마음에 "왜 이게 나쁜 노래야?"라고 둘째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니, 어떻게 맨날 웃어? 그럼 누가 놀려도 웃고, 때려도 웃어야 해?"


언제나 엉뚱하고, 사고뭉치에, 아픈데도 많고, 말도 한 번에 안 듣는데도 예쁘고, 귀엽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자꾸 만지고 뽀뽀하고 싶은 둘째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다. 손만 대면 물건이 깨지고 부서지며 약시라 교정용으로 맞춘 안경은 2개월 만에 3번을 다시 맞출 정도로 조심성이 없다. 반면에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고, 궁금한 게 많고, 애교가 많은 둘째는 이번에도 엉뚱하지만 일리 있는 말로 교통체증으로 지쳐있던 차 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맨날 어떻게, 언제나 어디서나 웃을 수 있단 말인가. 노래로 세뇌돼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야만 어른인 것처럼, 교양 있는 것처럼, 성숙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부모가 되어서는 더욱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같은 것이 생겼었다. 항상 조곤조곤 말로 설명하고 화내지 않으며 얼굴 찌푸리지 않고 아이를 설득시킬 수 있는 완벽한 부모상을 만들어놓고 스스로 미달되는 날은 자다가도 얼마나 이불킥을 하며 아직 덜 성숙한 인간이 엄마의 자격으로 있어 아이들이 잘못되는 건 아닌지 한가득 걱정을 품에 안고 잠들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야만 한다'라는 이상향은 고도를 기다리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만큼이나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누구인지는 모르는 '고도'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완벽한 엄마는 이제 내 삶 속에서 기다리는 대상이 아니다. 완벽할 수 없는 내가, 아직도 가야 할 길 위에 있는 나그네인 한 여자가 작은 그림자 둘을 이끌며 새로운 길로 들어섰을 뿐이다. 더 세심히 살피고, 조금 더 숙고하며 길을 들어서야 하고, 비바람을 막을 방법을 강구하거나, 아늑한 밤을 준비해 주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들을 모두 완벽한 어떤 것으로 매번 완성시킬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집은 엉망이 되어있다. 아직 감기기운이 많아서 치워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식구들 먹을 밑반찬은 또 언제 만든단 말인가. 하지만 다시 일상은 시작되었고, 언제나 어디서나 웃을 수는 없지만 즐거운 여행을 다녀온 후 평안한 일상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안면근육을 조금 늘려보며 웃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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