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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물동이를 이고

by 이혜연
너의 물동이를 이고

살면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물동이가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감추고 싶은 것들을 넣기도 하고, 생명수를 채워 갈증을 해소하기도 하며, 그 안에 보물을 숨겨 숨이 막힐 정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숲을 건너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남이 해줄 수 없는 일이며 갈증이 난다고 무작정 한 번에 배를 채울 수도 없다.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고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한 변수는 우리가 알 수가 없다.


그 안에 어떤 물건을 넣었든 간에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으며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달려오는 어떤 물건이나 동물들을 필할 수 있는 민첩성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어두운 곳에서 발목을 노리는 것들을 피할 수 있는 기민성도 지녀야 한다. 시선은 항상 한 발치 앞서 보아야 돌부리를 피할 수 있다. 그렇게 해도 우리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 아무리 재빠르다고 해도 어떤 상황은 정말 예고치 않은 방향에서 돌이 날아올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항아이리가 깨진다고 해도 인생의 목적이 항아리에 있는 것이 아닌 내가 걷는 것에 있다면 우리는 언제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주일간의 방과 후 공개수업에 다녀온 날. 오늘은 두 아이가 생명과학이라는 같은 수업을 듣기 때문에 한 수업에서 두 아이의 태도를 관찰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역시나 의젓하고 집중력 좋은 첫째와 까불까불 장난기 가득한 둘째가 한치의 예상도 어긋나지 않는 자세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조개의 생태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직접 대합과 바지락을 해부해보기도 하고 영상을 보며 움직임을 관찰하기도 하며 조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클레이와 인어공주, 조개 모형을 가지고 등을 만드는 것으로 수업을 마쳤다. 어른이 들어도 재밌는 수업이어서인지 아이들도 집중력 있게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수업 중에 조개가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위험물질에 대한 방어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진주라고 하는 설명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통 속에 만들어지는 것들이 삶을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은 조개도 인간도 같은가 보다. 방과 후 선생님께서 학부모용까지 등을 준비해 주셔서 참관온 부모들도 오래간만에 클레이로 만들기 수업을 해보며 즐겁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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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차가운 비와 날 선 바람이 봄 답지 않게 추위와 스산함을 선사하더니 오늘은 그야말로 쾌청한 하늘과 따스한 햇살로 마음을 부드럽게 안아주는 느낌이 드는 날입니다. 오늘이라는 여정도 반을 지나 나보다 길어진 그림자가 지나온 길을 뒤따르고 있는 오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곁에서 불어오는 바람, 청량한 새소리, 나뭇잎이 바스락대며 노래하는 것들을 들을 수 있어야 지루하지 않게 물동이를 이고 목적지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더없이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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