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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

by 이혜연 Mar 24. 2025
정물 정물 

그림을 오전에 마치면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엔 혼자 결정해 둔 마감시간이 되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오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한 자 한 자 글을 적는다. 그러다 어떤 날엔 내 아집으로 이렇게 혼자서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신랑이 이야기하는 '아무 쓸모도 없는 일'에 하루를 온전히 낭비한다는 비판이 어쩌면 맞는 말은 아닐까 고민도 된다. 


어떤 날은 허공에 매달아 놓은 작은 줄 하나로 자기 속에 갇혀 꿈을 꾸던 번데기가 끈이 떨어진지도 모르고 계속 그 안에서 나비가 될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섬뜩하기도 하다. 그런데도 다시 아침이 되면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는 굴레에 빠진 어리석은 나를 보기도 한다. 아름답게 피었지만 뿌리를 잃어 곧 시들게 될 화병의 꽃처럼 후세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이 고집스러운 걸음을 쉬어볼까 하는 유혹도 있다. 시작의 마음이 어떠했더라도 하지 못할 변명이나 이유를 찾아내기는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쩐지 그림을 그리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나의 작은 방을 들어와 볼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오늘의 그림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 안에 채워지는 흔적들이 반복되는 시간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지는 까닭에, 오늘도 나는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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