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책의 상징 읽기
글·그림 패트리샤 폴라코, 옮긴이 김서정 / 미래아이
작가이면서 화가인 패트리샤 폴라코는 1944년 미국 미시간 주에서 태어나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예술사를 공부했다. 러시아에서 이민 온 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작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으며 자란 것이 작품을 뼈대가 되었다. 1989년 <레첸카의 알>로 국제도서연합회 청소년도서상을 수상했으며, 대표작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 <천둥 케이크> <꿀벌나무>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할머니의 조각보> 등이 있다.
안나는 러시아의 로이노브카라는 작은 마을에서 부모님과 갓난아기인 여동생과 살고 있었다. 안나네는 엄마가 소중히 여기는 찻주전자 세트가 있었다. 엄마의 숙모 레베카가 축복의 마음을 담아 보낸 선물이었다. 그 축복대로 안나 가족은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기쁨과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군인들이 나타나 예배당을 불태우며 유대인들은 모두 러시아를 떠나라고 위협했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미국으로 가기 위한 여정을 계속하던 중 안나 아버지가 지쳐 쓰러졌다. 곤경에 빠졌을 때 한 의사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안나 가족은 미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안나 엄마는 찻주전자 세트를 의사에게 선물로 주고 찻잔 하나를 남겼다. 그것을 죽기 전에 안나에게, 안나는 딸에게, 딸은 또 그의 딸에게 축복을 담아 전해 주었다.
첫 장면이다. 왼쪽은 평화로운 마을의 정경인데 예배당으로 보이는 건물에 유대교를 상징하는 표식 다윗의 별이 달려 있다. 설명 없이도 유대마을이라는 걸 알려 준다. 오른쪽 그림에는 주인공 안나가 무엇을 보고 놀란 듯 입을 틀어막고 있다.
다음 장면을 보면 아이가 왜 놀랐는지 알 수 있다. 유대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는 군인들이 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이유없이 수시로 들이닥쳐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런 속에서도 안나 가족은 소중하게 간직해 온 찻잔으로 차를 마시며 기도를 잃지 않았다. 이 찻주전자 세트는 안나 엄마의 숙모 레베카가 결혼 선물로 보낸 것이었다. 이 찻잔으로 차를 마시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평생 배고프지 않고 사랑과 기쁨을 알며 복된 삶을 살 거라는 축복의 말이 든 편지와 함께.
안나 가족은 그 축복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은총)을 받았어, 하고 안나는 생각했어. 날마다 저녁 먹기 전에 엄마가 이렇게 기도하거든
“여기 우리의 삶은 언제나 넉넉합니다.”
안나의 집에는 사랑과 기쁨이 넘쳤어. 돈이 별로 없어서 살림살이는 소박했지만 아빠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어.
“우리는 임금님보다 더부유하단다. 왜 그런지 아니?”
“아빠는 안나를 아끼고, 안나는 아빠를 아끼니까!”
안나는 로이노브카 사람들이 전부 다 부유하다고 생각했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서로서로 아꼈으니까.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의 모습이 담긴 장면이다. 어른과 아이 모두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나누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독자의 눈을 끄는 빨간색이 있다. 빨간 스카프를 쓴 것으로 보아 이 아이가 안나이다. 그 옆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이 안나 엄마, 그 옆이 안나 아빠임을 알아볼 수 있다.
마을의 평화는 하루아침에 군인들에게 짓밟힌다. 시뻘건 불길에 싸인 광경이 아까의 그림과 대조를 이룬다. 마을의 평화와 행복은 깨지고 공포가 가득하다. 유대인은 러시아를 떠나라는 황제의 명령이었다. 불길 속에 보이는 다윗의 별이 유대인에 대한 러시아의 핍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왜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더러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자기들과 다르다는 거지... 자기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게 두려운 거야.”
러시아 제국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 인구를 수용했다. 유대인은 공동체를 이루어 유대교의 독특한 신앙과 전통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1880년대부터 반유대주의에서 비롯된 유대인에 대한 약탈과 대학살이 수십 년 동안 러시아를 휩쓸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1880년과 1920년 사이에 러시아를 떠나 미국과 이스라엘 등지로 갔다. 안나네 가족이 당한 상황이 바로 이 시기의 일로 짐작된다.
안나네는 신앙생활을 위한 성경책, 기도용 숄 등과 함께 찻주전자 세트를 수레에 싣고 마을을 떠났다. 그들은 찻잔에 차를 마시면서 삶이 소금처럼 맛을 지니기를, 사랑을 잃지 않기를 기도했다.
서로 다르다고 미워하며 못살게 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 러시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같이 수레를 끌며 힘겹게 일을 하던 안나의 아빠가 쓰러졌다. 안나의 가족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러시아인 의사 푸시킨이 아빠를 치료해 주고 먹을 것을 제공하며 자기 집에서 머물게 해 주었다. 눈이 나쁜 안나에게 안경도 맞춰 주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아끼던 양탄자를 팔아 안나 가족이 미국에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서류와 기차표, 배표까지 마련해 주었다. 자신과 다른 민족, 다른 사람이지만 헌신적인 온정을 베푸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안나 엄마가 자신이 받은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황금빛의 둥근 불빛이 푸시킨의 따뜻한 마음, 사랑과 감사로 충만한 그들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엄마는 찻주전자 세트를 풀어놓고, 홍차를 진하게 끓였어.
“이게 주님의 축복(은총)을 가져다 줄 거예요. 그 축복(은총)이 영원히 아저씨에게 머물기를 기도할게요.”
엄마는 게냐 아저씨에게 빵과 소금과 사랑에 대한 기도, 왕보다 더 부유해지는 기도를 알려 주었어.
문제는 번역문에서 ‘축복’이란 말을 잘못 사용한 데 있다. ‘축복(祝福)’은 ‘복을 비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시라고 신에게 비는(기도하는) 것이 축복이다. ‘하나님의 축복’이나 ‘주님의 축복’은 잘못된 표현이다. 하나님은 복을 내리는 주체이지 다른 누군가에게 복을 달라고 비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어떤 사전에 ‘축복’을 ‘하나님이 복을 내림’으로 풀이해 놓은 것도 보았는데, ‘축(祝)’은 ‘빌다, 기원하다’의 뜻이지 ‘내리다’의 뜻은 없다. 한자의 뜻을 모르고 붙인 해석이다.
이 책 중요한 장면마다 ‘축복’이라 번역한 말이 나오는데, 잘못된 번역이 글을 이해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위 문장에서 괄호 안에 파란 색깔로 써 놓은 것처럼 축복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일 때는 ‘복’이나 ‘은총’이란 말로 번역해야 한다. 뒤에 나오는 ‘축복의 잔’도 ‘복의 잔’으로 바꾸어야 한다.
안나 엄마가 쓴 거야.
“친애하는 아저씨, 언제나 기억할게요. 아저씨는 우리를 먹여 살린 빵이에요. 우리 삶을 맛있게 해 주는 소금이에요. 우리를 함께 묶어 주는 사랑과 기쁨이에요. 아저씨의 그 친절한 황금빛 마음이 아저씨를 정말로 부유하게 해 줄 거예요... 아저씨는 평생 가난해지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찻주전자 세트를 남기고 갑니다. 잘 지켜 주실 거라고 믿어요. 찻잔 하나만 가지고 갈게요. 우리는 이거면 충분해요. 우리 네 식구가 모두 축복(복)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마침내 안나네 가족은 미국에 도착했다. 사람들 눈앞에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상징이다.
안나 가족은 차를 나누어 마시면서 빵과 소금과 사랑, 함께 있으면서 부유해지는 일을 기억했다. 의사 푸시킨도 잊지 않았다. 안나는 엄마에게서 그 찻잔을 물려 받아 평생 그 찻잔으로 가족과 함께 복을 나누었고 죽기 전에 딸 칼레에게 물려주었다.
우리 할머니 칼레는 그 찻잔을 ‘축복(복)의 잔’이라 불렀어. 그리고 항상 그 축복(복)을 나누었어.
복의 잔은 그 뒤로 칼레 할머니에게서 우리 엄마에게로, 엄마에게서 내게로 결혼식날 선물로 전해졌다. 아이가 둘인 ‘나’는 찻잔이 하나인 게 아쉬웠는데 어느 날 지진으로 찻잔이 두 동강이 났다.
내려다보니 깨진 그릇 조각들 한가운데 축복(복)의 잔이 있었어. 정확하게 두 쪽이 난 상태로. 꼭 안 보이는 어떤 손이 디자인한 것처럼 말이야.
나는 내 두 아이를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어. 그리고 그 두 조각을 들어 올려 가슴에 소중히 품었단다.
그 순간 나는 내 모든 조상들이 나의 빵이었다는 걸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깨달았어. 내 삶의 소금과 모든 맛들은 그들의 이야기였어. 내 조상들이 그 이야기를 지켰고, 그 덕분에 나는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몇 세대에 걸쳐 사랑받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야. 나는 정말로 부유한 사람이란다.
이야기의 중심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들이 있다. ‘빵’, ‘소금’, ‘부유하다’라는 말이다.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핵심어들임에 틀림없다.
먼저 ‘빵’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을 상징한다. 빵은 일용할 양식이며 생명의 공급이다. 육체적 양식이자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은총이다. 안나 엄마의 숙모가 찻주전자 속에 넣어 보낸 편지의 내용을 다시 보자.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평생 배고프지 않고 사랑과 기쁨을 알며 복된 삶을 살라.”
평생 배고프지 않고 사랑과 기쁨을 알며 복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는 빵과 소금과 사랑, 함께 있으면서 부유해지는 일을 기억했어./
엄마는 게냐 아저씨에게 빵과 소금과 사랑에 대한 기도, 왕보다 더 부유해지는 기도를 알려 주었어.
하나님의 은총은 다른 사람을 통해 받기도 한다.
“내 모든 조상들이 나의 빵이었다.”/
“친애하는 아저씨, 언제나 기억할게요. 아저씨는 우리를 먹여 살린 빵이에요.”
소금은 음식의 부패와 변질을 막는 성질을 가졌으므로 ‘변치 않음’, 즉 ‘신뢰’를 상징한다. 성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민수기 18장 19절)
또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는 원천이다. 사람들이 서로 음식을 나누듯 복과 사랑을 나누는 일. 그것이 삶에 맛을 내는 일이다.
엄마는 게냐 아저씨에게 빵과 소금과 사랑에 대한 기도, 왕보다 더 부유해지는 기도를 알려 주었어./
“내 삶의 소금과 모든 맛들은 그들의 이야기였어.”
또 이들이 말하는 부유함이란 재물이 많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며 자신이 받은 복과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의 부요함을 뜻한다.
안나는 로이노브카 사람들이 전부 다 부유하다고 생각했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서로서로 아꼈으니까./
“우리는 임금님보다 더 부유하단다.”/
우리는 빵과 소금과 사랑, 함께 있으면서 부유해지는 일을 기억했어./
왕보다 더 부유해지는 기도를 알려 주었어./
나는 정말로 부유한 사람이란다.
또 한 가지, ‘찻잔’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중심소재인 ‘찻잔’은 이들의 신앙 유산을 상징한다. 또한 자손들을 향한 축복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자손 대대로 이어지길 바라는 조상들의 축복이 담긴 상징물이다. 매일 차를 마실 때마다 자신들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랑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매개체, 그게 찻잔이다. 각자 잔을 들고 마실 때도, 여럿이 잔 하나를 돌려가며 마실 때도 그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잔이 쪼개져서 더 이상 차를 마시지 못하게 되어도 이 찻잔의 상징적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서술자는 다른 민족의 멸시와 박해, 낯선 땅을 향한 긴 여정의 고달픔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후손을 위한 조상들의 축복이 자신에게 이르렀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한다.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행복한 삶에 대해 말하며 이야기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