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도

아버지를 회상하며

by 이창훈 리 갤러리

우리 세대는 자식들을 위해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엄마의 기도를 보고 자랐다.

이러한 경험은 신앙적 전통과

가족애가 어우러진 정서적, 문화적 자산으로

한국 사회에 남아 있다.


그에 반해 아버지의 기도는 누구에게도

표현되지 않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과묵한 기도인 것 같다.

자식들을 위해 말없이 희생하셨던

우리들의 아버지,

그들의 보이지 않는 기도가

있었기에 우리들이 무탈하게 성장했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의 아버지도 말없이 희생하셨다.

자신보다 튼튼하게 자라는 아들의 팔뚝을

어루만지면서 흐뭇해하셨던 나의 아버지,

그런 속 깊은 아버지의 기도가 있었기에

내가 존재한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을

웃으며 물끄러미 쳐다보시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60세가 조금 지나 떠나시고

나는 아버지가 사셨던 나이를 지나

두 딸의 아버지로 살고 있다.


내가 매일 새벽 두 딸을 위해 기도하듯

나의 아버지도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속 깊은 기도를 드리셨다.


내가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의 기도를 떠올려

성장한 두 딸에게 나도 아버지의 기도를 한다. 특별히 잘해준 것 없어도 스스로 잘 자라준

딸들이 고맙다.


아직 각자의 길을 확실하게 찾아가지 못하고

있어도 나보다 많이 공부한 똑똑한 딸들이기에

간섭보다는 두 딸을 향한 기도로 살고 있다.


두 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딸을 응원하며 고운 시선으로

묵묵히 바라보는 것이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맙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고

삐뚤어진 심성으로 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추석 명절이 되어 산소를 찾는

마음에 불어오는 아버지에 대한 향수,

우리 부모님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셨겠다는 생각에 듣고 읽어보는

"아버지와 나"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PartⅠ

노래넥스트1993.01.01) 에서 -


"아버지와 나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 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듯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즈음에야 이루어질까.


오늘 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이런 글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진다.

나도 이런 마음으로 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오늘을 사는 자식들의 마음도 이러한 마음일까?

생각에 잠긴다.


그가 아버지를 회상했던 시간은

덧없이 흘러 지금의 자식들은

공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시대를 공유했던 나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아버지의 고마움에 사무칠 때는

아버지는 내 곁에 없다.

우리도, 우리의 자식들도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두 딸이 둥지를 떠나 각자의 길을 가고 있어도

아버지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기도'를 한다.


건강하고 밝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어려움은 긍정으로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범사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거짓 없이 착한 삶,

그 길을 걸어가라고,

세상에서 가장 큰 마음의 부자로 살라고,

가까운데서 행복을 찾으라고.

욕심이 화를 불러온다고.

우리의 삶은 수평으로만 살 수가 없다.

산다는 게 쉬운 것이 아니다.

서로 이해하며 양보하면 쉬울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난 그래서 두 딸에게 이타적인 삶을 배우며

살라고 기도한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내가 자신감을 잃어 우울증으로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아내와 두 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은 열정적으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서 내가 내게 대견하다 말한다.


내 마음을 빛으로 수를 놓아 아내에게,

두 딸에게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의 두 딸을 위한 기도는 적성에 맞는 직장,

선한 꿈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하기를 바람한다.


나름 생각이 건전하고 부모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두 딸이어서 무엇이든 잘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리라

믿고 감사한다.


추석인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을 열어

글을 쓴다.

우울증을 떨쳐 보낸 후 매일 4시 이전에

일어나 생산적인 일을 하며 글을 3년 이상

지속해서 쓰고 있는 나의 변화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일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셨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기도.

자신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친구 장로님을 칭찬하시면서

교회에 나가는 것을 권유하셨던 나의 아버지,

그 깊은 마음에 담겨 있던 아버지의 기도를

음미해 본다.

내게 믿음이 최고의 선물로 다가오고 있다.

매일 새벽 기도로 무장하고

하루의 일상을 시작한다.

모든 일을 즐기려 노력한다.

언제나 청춘, 나이 든 청춘으로 살겠다는

다짐으로

나의 아버지가 그리한 것처럼

두 딸을 위한 아버지의 기도를 담아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를 보내고

조상님들과 선친의 고마움을 떠올리면서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