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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han Mar 11. 2024

1. 미국 문화 그리고 직장 적응기

1. 한국 공기업을 그만두다

미국인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고 고민이 커졌다. 롱디를 언제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고 같이 미래를 꿈꾸다 보니 자연스럽게 앞으로 살 곳을 서로 얘기하게 되었다. 아내는 한국에 대해 열려 있었지만 평생을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새롭게 다른 나라에 가서 커리어를 전부 버리는 것에 걱정이 가득했다.


아내는

"한국에서 원어민 선생을 구하는 곳이 많으니 한 일이 년 살아보자 그리고 또 결혼에 대해 고민해 보자" 했다.

좋은 계획 같다. 아내는 이제 해외봉사활동을 막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직장을 이제 알아보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 공기업에 입사서 이제 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한 때였다.


사실 공기업은 이곳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 공기업은 문화가 참 어려웠다. 왜 이런 쓸데없는 것에 다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군대 비슷한 문화도 좀 있었다. 내 미래를 생각해 볼 때, 잘 하든 못 하든 30년 후의 나는 저기 앉아있는 부장이나 팀장 중 하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해외봉사를 떠났다. 마치 대학 가기 전에는 대학에 들어가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던 것처럼 공기업 가면 인생이 풀린다는 짧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막상 3년 차가 되니 도리어 그 안정성이 무서웠다. 출장 외에는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나는 급하게 해외봉사를 결정했고 그렇게 간절히 원해서 들어갔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또 다른 봉사활돌 프로그램으로 같은 지역에 온 아내 해외봉사활동 중에 만났 나는 먼저 귀국하여 또 다른 공기업 공채에 늦은 나이에 합격하였다.


그래 원어민은 원룸도 구해준다고 하고 또 그 당시 여자친구는 해외생활에 대한 두움이나 걱정이 크게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에서의 미래계획을 짰다.

여느 다른 날처럼 영상통화를 하며, 여자친구는 내게 물었다.

 "네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여기는 장인어른 될 사람에게 결혼을 허락 맡아야 돼. 그리고, 적어도 한 번은 미국에 와서 내 가족들과 친구들은 만나야 하지 않을까?"


맞는 얘기다. 여자친구는 이미 한국에 두 번 길게 방문했고 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은 한국 여행을 오셨을 때 뵙지만 그때는 사실 사귈 때도 아니었고 여행 가이드 같은 역할이었다. 사실 미국 땅을 밟아본 적도 없는 내가 결혼을 얘기하는 것 좀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이제 입사한 나는 휴가를 길게 낼 수도 없기에 추석 연휴를 이용해서 5박 6일로 뉴욕을 가게 되었다.

그중 이틀은 비행기와 이동에 보낸 것 같고 시차 문제로 매일 낮잠을 짧게라도 잤다. 여자친구와 부모님은 너무 따듯했고, 친척들과 친구들이 매일 방문해서 우리와 시간을 보냈다. 그중 하루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서프라이즈!".

한 이주 뒤에 있을 내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얼마 만에 생일 파티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모까지 찾아와 축하 카드와 선물들을 주었다.  또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직접 케이크를 만드시고 이쁘게 이름도 쓰셨다. 혹시 아침에 케이크 굽는 걸 눈치챘었냐고 물어보셨다. 그 당시 오븐이 뭔지도 잘 모르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파티 중 눈물이 나는걸 아무도 모르게 닦아냈다.


그 여행 이후 내 생각이 많아졌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에게서 아내를 빼앗아 한국에 데려올 수는 없다. 그리고 아내에게서 이 사람들을 떼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해외봉사로 2년 동안 딸을 그리워하면 살았을 텐데.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도 그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 영상통화로 여자친구와 얘기를 나눴다. 내가 미국에 가겠다. 그 대신 한동안 직장이 없을 텐데 괜찮을까라고 물었다. 여자친구는 걱정 말라고 자기가 먹여 살리겠다며 웃었다.


 그래서 난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사직서를 내었다. 하지만 이번 공기업은 정말 가고 싶은 곳이었고 사람들도 참 좋았다. 일도 보람이 있었고 이곳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동기 모임에서 항상 난 우리 회사가 얼마나 좋은 회사인지 얘기하곤 했었다.

그런 내가 그만둔다고 하자 몇몇의 동기들이 물었다. "형 진짜 그만두려고요? 우리 보고는 그렇게 잘 다니라고 그래놓고는 후회 안 하겠어요?" 또 다른 질문은 "어떻게 결혼에 확신이 드는 거예요? 직장을 그만둘 만큼"

내 대답을 그랬다. "정말 좋은 직장이긴 한데, 이런 직장은 살다 보면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이런 사람은 또 못 만날 것 같아" 참 눈에 뭐가 씐 때였던 것 같지만, 결혼 10주년이 지난 지금도 답은 같다. 

여하튼 그렇게 퇴직을 하고 미국에 넘어왔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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