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
사회생활을 이미 할 만큼 경험한 경력사원들이 모인 입사 연수 현장. 새로운 조직에 대한 기대와 이전 직장에서 가져온 피로감이 교차하던 그 자리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강연자는 뜻밖에도 감사팀의 베테랑 직원이었다. 빳빳한 정장을 입고 단상에 오른 그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포스터를 화면에 띄우며 입을 뗐다.
“여러분은 이미 다 알고 오신 분들이니 잘 아시겠지요. 직장은 여러분의 전문성을 꽃피우는 무대이기 이전에, 이 세 부류의 놈들이 뒤섞여 혈투를 벌이는 만주 벌판과 같습니다. 우리는 초인류 회사지만 직장은 다 똑같다”
그의 말은 경력자들의 닳고 닳은 마음을 단번에 꿰뚫는 서늘한 통찰이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그 비유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체감한다. 나는 강의실에 가끔 학생들과 고객 전략을 설명할때 이 ‘놈놈놈’ 모델을 활용해 조직 관리와 고객 세분화를 강의하곤 한다. 학생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현실적으로 웃음 뒤에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해야 하는 누군가에 대한 피로감이 서려 있다.
우리는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이들 놈놈놈과 보낸다. 가끔은 도망치고 싶어도 퇴사라는 극단적인 선택 없이는 끊어낼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이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생긴다. 왜 회사는 이토록 다양한 인간 군상을 한데 모아놓았으며, 왜 우리는 특정 인물 때문에 조직 전체의 성과가 갉아먹히는 과정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가? 한 사람의 이상한 판단 때문에 상처 받고, 직장경력이 단절 되는 일까지.. 단순히 '성격 차이'나 '운이 없어서'라는 말로는 이 거대한 비효율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번 편에서는 우리는 왜 이 ‘놈놈놈’들 때문에 고통받으며, 이들이 조직의 성과를 정체시키는 실질적인 메커니즘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정리 해본다.
착한 놈은 본성이 선하고 도덕적이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냉정한 생태계에서 그의 '선함'은 종종 '무책임'과 동의어가 된다. 그는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무리한 부탁도 "예"라고 답하며 무식하게 일을 끌어안지만, 결국 감당하지 못한 업무는 기한을 넘기거나 부실한 결과물로 돌아온다. 그는 혼자 스트레스를 받으며 희생자인 척하지만, 실상은 주변 동료들에게 업무 폭탄을 투척하는 공범이다.
특히 이 유형이 리더가 되었을 때 비극은 극에 달한다. 팀원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고, 불편한 결정을 미루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쓴다. 그 결과 조직의 기강은 무너지고, 성과는 산으로 간다. 그의 착한 미소 뒤에는 무너진 시스템을 온몸으로 때우고 있는 부하 직원들의 한숨이 서려 있다.
이들은 세련된 악의 (Sophisticated Malice)를 저지르는 부류, 절대 폭언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놓고 법을 어기는 행동을 저지르지 않고, 정장이나 세련되게 행동하며 우아하게 말로된 칼을 휘두르거나, 도저히 이해 못할 행위를 저지른다.
전형적인 행동은 '밀정'이다. 앞에서는 아군인 척 정보를 수집하고 뒤에서는 윗선에 보고하며 경쟁자를 제거한다. 동료가 밤새 만든 기획안의 핵심 아이디어를 교묘하게 가로채 자기 이름으로 포장해 발표하는 일에도 능숙하다. 이들에게 동료란 '함께 가는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승진과 생존을 위해 딛고 올라가야 할 '일회용 소모품'일 뿐이다. 그들은 웃으면서 당신의 공을 훔치고, 당신이 소외될 때 가장 먼저 등을 돌리는 이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조직의 최상위를 차지하는 확률이 높다.
가장 다루기 힘든 난제다. 나쁜 놈은 '이익'이라는 확실한 동기라도 있지만, 이상한 놈은 동기조차 알 수 없다. 상식적인 데이터나 논리적 인과관계로는 이들의 행동을 해석할 수 없다. 회의의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질문을 던져 흐름을 끊거나, 모두가 A라고 할 때 합당한 근거 없이 B를 고집하며 프로젝트를 고사시킨다.
이들은 조직의 프로세스상에서 '블랙홀' 같은 역할을 한다. 1시간이면 끝날 일을 3일로 늘려놓고, 정작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판을 엎어버린다. 동료들이 가장 괴로운 건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쏟아부어야 하는 막대한 정신적 소모다. 이들과 30분만 대화해도 온몸의 진이 빠지는 이유, 그것은 당신의 상식과 에너지가 이들의 비논리에 흡수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놈의 전형: 맥락을 집어삼키는 블랙홀]
나쁜 놈은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착한 놈은 감정을 위해 움직이지만, 이상한 놈은 오직 '자기 세계'를 위해 움직인다. 이들은 대화의 목적이나 비즈니스의 맥락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저 눈앞의 상대를 자신의 정보를 배설할 '수신함' 정도로 여길 뿐이다.
이들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장면이 있다. 어느 날, 사회생활 2년 차 후배에게 한 선배가 물었다. "듣기로는 미국에서 학교 나오셨죠?"
평범한 직장인의 대화라면 "네, 버클리에서 공부했습니다"로 끝났을 1초짜리 문답이다. 하지만 이상한 놈의 입을 거치면 대화는 기묘한 지리 수업과 자기 과시의 혼종으로 변질된다.
"네, 캘리포니아라고 아시나요? 거기 북쪽에 샌프란시스코라고 불리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서 다리를 건너면 버클리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 있는 학교입니다. 아, 참고로 지금 사는 곳은 강남역에서 버스 타고 가면 있는 서초동이고요."
이 짧은 대답에는 소름 돋는 지점이 가득하다. 우선 맥락 없는 과시적 정보 배설(Context-Free Information Dumping)이다. 상대가 궁금해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배경을 배설함으로써 존재감을 확인하려 든다. 또한 상대를 자신보다 무지한 존재로 상정하고 기초적인 상식부터 가르치려 드는 오만한 Condescending Mansplaining이 저변에 깔려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의 ‘눈빛’이다. 소통이 아니라 독백을 하고 있기에, 그의 초점은 상대가 아닌 허공 어딘가에 풀린 채 머물러 있다. 이는 타인과의 공감적 연결이 끊어진 사회적 신호 감지 불능(Social Signal Blindness)의 상태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이상한 놈’들의 기묘한 행동 패턴은 크게 네 가지 전형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앞선 사례와 같은 친절한 무시 (Mansplaining)다. 상대가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엑셀 합계를 구하려면 SUM이라는 영단어를 알아야 한다"며 철자 하나하나를 짚어주는 식이다. 지식을 나누려는 호의가 아니라,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심리적 배설이다. 둘째는 질문의 궤도를 이탈하는 TMI 폭격 (The Context-Free TMI)이다. 마감 시간을 묻는 질문에 느닷없이 한강의 지리적 특징을 늘어놓으며 상대의 시간과 맥락을 무참히 짓밟는다. 셋째는 논리적 근거 없는 감정의 널뛰기(Emotional Rollercoaster)이다. 평소엔 침묵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책상을 내리치며 "왜 내 의견을 무시하느냐"고 고함을 지른다. 정작 그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동료들은 그의 기분을 살피느라 업무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이런 Emotional Rollercoaster는 요새 갑질로 많이 잡혀간다. 마지막은 노골적인 과시(Explicit Flex)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예전 사장 시절 비서가 타주던 맛"을 운운하며 과거의 영광을 소환한다. 이는 현재의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을 때 나타나는 열등감의 변종이다.
거래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The Weird는 조정 비용(Coordination Cost)을 무한대로 증폭시키는 주범이다. 1초면 끝날 답변을 듣기 위해 1분의 지리 수업을 견뎌야 하듯, 엇나간 맥락을 업무로 다시 끌어오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이들이 입을 열 때마다 조직은 멈추고, 동료들의 정신적 피해비용, 육체의 감가상각은 가속화된다.
결국, 이 '이상한 놈'들은 고칠 수 있는 고장이 아니라 피해야 할 재난에 가깝다. 그 선배가 풀린 눈빛을 본 순간 느꼈던 서늘한 예감처럼, 이들의 세계에는 타인이 들어갈 틈도, 타인의 목소리가 들릴 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과 섞여 지내야 하는 동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그들의 비논리가 우리들의 일상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세우는 단단한 마음의 벽을 준비해야 한다.
시장이나 조직 내에서 협력을 수행할 때는 단순히 일하는 시간 외에도 정보를 탐색하고, 협상하며, 계약을 감시하고 이행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투입된다. 이를 거래비용 (Transaction Cost)이라 정의한다. 흥미로운 점은 직장 내 '놈놈놈'들이 바로 직장내 협업의 유무형 비용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라는 사실이다.
먼저 착한 놈과의 거래에서는 '탐색 및 이행 비용'이 발생한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과의 협업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착한 놈은 자신의 역량을 벗어나는 일조차 거절하지 못한 채 "알겠다"고 답한다. 결국 조직은 그가 실제로 일을 완수할 능력이 있는지, 혹은 마감 기한을 지킬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재탐색하고 확인하는 데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특히 리더가 지나치게 착할 경우, 부적절한 배려와 결단력 부족으로 인해 조직 전체의 기회비용이 폭증하며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심지어는 회사를 파산하게 이를 경우도 있다.
반면 나쁜 놈과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감시 및 구속’의 영역이다. 이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근본적인 '불신'에 뿌리를 둔다. 나쁜 놈이 언제 내 공로를 가로챌지, 혹은 언제 뒤에서 칼을 꽂을지 감시하는 데 막대한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아무리 업무 분장을 촘촘하게 짜고 메일로 증거를 남겨도, 이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막기 위한 '심리적 방어 비용'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조직 내 협업의 윤활유를 말려버린다.
가장 최악의 구간은 이상한 놈과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정보 및 조정 비용’이다. 이들은 의사결정 프로세스상에 거대한 '노이즈(Noise)'를 만들어낸다. 앞서 언급한 '풀린 눈의 후배' 사례처럼, 이들의 기묘한 의도를 파악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린 결정을 다시 본 궤도로 조정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때로 업무 본연의 가치보다 커지곤 한다. 대화의 맥락을 회복하고 상식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쏟아붓는 에너지는 조직의 생산성을 바닥까지 긁어내린다.
결국 직장에서 만나는 '놈놈놈'들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조직의 유한한 자원을 '관계의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낭비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저해요소다. 우리가 이들의 유형을 파악하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소중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이 비효율적인 거래로부터 지켜내기 위함이다.
조직 내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정점에 서 있는 팀장이 어떤 유형이냐에 따라, 그 팀이 지불해야 하는 거래비용의 성격과 규모가 결정된다. 팀장의 페르소나는 단순히 개인의 성향을 넘어 팀원 전체의 생존 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먼저 착한 팀장 밑에서 팀원들은 ‘운영 비용의 과다’로 인해 번아웃(Burn-out)된다. 팀장이 거절하지 못하고 가져온 무리한 업무들, 그리고 리더로서 내리지 못한 결단력의 공백은 고스란히 팀원들의 몫으로 전이된다. 팀원들은 팀장의 부족한 실행력을 메우기 위해 무식하리만큼 몰아치는 업무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결국 조직의 운영 시스템 자체가 개인의 희생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나쁜 팀장 밑에서는 ‘조직 응집력의 붕괴’라는 치명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팀장이 자신의 안위와 공적을 위해 밀정과 뒷담화를 활용하는 순간, 팀원들은 서로를 협력자가 아닌 잠재적 밀고자나 경쟁자로 인식하게 된다. 정보 공유는 차단되고 불신이 만연해지며, 언제 칼을 맞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발생하는 ‘상호 감시 비용’은 팀을 모래성처럼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팀장은 ‘혁신 비용의 전멸’을 초래한다. 앞선 사례처럼 상식 밖의 행동을 일삼는 팀장 밑에서 팀원들은 일의 본질에 집중하는 대신, 상사의 기상천외한 기분을 살피고 돌발 행동을 해석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질문의 궤도를 이탈하는 상사와의 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팀원들은 스스로 '사고(Thinking)'를 멈추는 생존 방식을 택한다. 이로 인해 조직 내 비판적 검토나 창의적인 제안은 사라지고, 대화를 단절한채 오직 상사의 비논리에 맞춘 기묘한 의사결정만이 남게 된다.
세 부류 중 조직에 가장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는 빌런은 단연 ‘이상한 놈’이다.
나쁜 놈은 ‘감시’라는 시스템으로 통제할 수 있고, 착한 놈은 ‘프로세스’로 보완이 가능하다. (예로, 착하면 착한 사람들이 하는 일을 시켜면 되거나, 승진 안시키면 된다) 하지만 이상한 놈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재앙에 가깝다. 거래비용이론의 핵심은 정보의 대칭과 조정에 있는데, 이상한 놈은 맥락이 결여된 정보로 소통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든다.
1초면 끝날 답변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지리 수업을 견뎌야 하는 상황처럼, 이들이 입을 열 때마다 발생하는 ‘시간의 증발’과 ‘정신적 탈진’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기회비용을 낳는다. 특히 이들이 의사결정 라인에 끼어들 때 발생하는 노이즈는 조직의 시계를 멈추고, 멀쩡한 동료들마저 ‘상사 해석’에 에너지를 쏟게 만들어 집단지성을 마비시킨다.
결국 조직이 지불해야 하는 가장 큰 비용은 나쁜 의도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의도’에서 발생한다. 효율을 추구하는 조직에서 상식 밖의 행동으로 맥락을 파괴하는 존재는 시스템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우리가 그들의 ‘풀린 눈’을 마주할 때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내 소중한 에너지가 무의미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조직 내 거래비용이 임계치를 넘어설 때 조직은 해체되거나 외부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여기서 우리는 내부 감시자(Internal Affairs/Auditor)의 결정적인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이때의 감시자는 단순히 적발을 전문으로 하는 감사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동종의 업무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동료일 수도, 혹은 강력한 책임감을 지닌 회사의 주인(Owner)일 수도 있다. 합리적인 감사는 조직 내에 산재한 비효율적인 거래비용을 선별하고 분석하며, 통제 불능의 '놈놈놈'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협업하게 만드는 신기한 조정자 역할을 수행한다.
시스템이라는 투명한 유리창 앞에서 나쁜 놈은 자신의 기회주의적 본성을 숨긴 채 규율에 순응하고, 이상한 놈은 돌발 행동을 억제하며 시스템의 틀 안에서 순화된다. 그리고 비로소 착한 놈은 무책임한 배려가 아닌 정당한 권리로서 부당한 희생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비극은 이 강력한 통제 기제가 사라질 때 시작된다. 합리적인 감사가 부재하거나 오너십이 실종된 조직에서 '놈놈놈'은 각자의 본능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생태계를 파괴한다. 많은 이들이 경험했거나 지금 이 순간도 겪고 있듯이, 통제되지 않는 조직은 거대한 비용의 늪에 빠져 결국 자멸의 길을 걷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들의 복잡한 거래 관계를 냉철하게 정의하고, 시스템을 통해 그 비효율적인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뿐이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동료에게 얼마짜리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조직은 이 기묘한 생태계의 비용을 구별할 눈을 가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