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아니 사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보드게임에 입문하고 보드게임에 조금 더 진심이고 싶어 이것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궁리했고 경성대에 있는 보드게임 카페에 목돈을 투자했다. 운영은 본사에서 대행하고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수익금을 정산하는 시스템인데 수년간 정산금을 받아보니 이게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이 보드게임 카페를 하나 더 해보려고 한다. 바로 성수동에 있는 새로운 보드게임 카페 말이다. 이 보드게임 카페가 나에게 또 하나의 파이프라인이 될 것이다.
콘텐츠들의 공간 - 성수
홍대, 강남, 건대 서울에는 번화가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 많은 번화가들은 내 눈에 다 똑같아 보인다. 홍대에 있는 것은 강남에도 있고, 강남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건대에도 있으니까, 하지만 성수동은 좀 달랐다. 성수동에 가야지만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이 있다. 팝업스토어도 많고, 낡은 공장을 개조한 감성 있는 카페들도 많다. 프랜차이즈들로 도배되어 있는 흔한 번화가의 모습과는 다르게 성수에는 그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별한 향기가 있다.
성수에는 흘러간 시간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이곳은 왕이 행차하고 군사들을 사열하는 공간이었다. 백 년 전 이곳은 이곳은 논과 밭이였다. 오십 년 전 이곳은 신발을 만들던 공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MZ세대의 놀이터가 되었다.
성수의 매력은 카오스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 중 하나가 된 성수는 서울에서 가장 낡은 곳이다.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지만 그것도 일부에만 한정되어 있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이 집은 새 건물이고 옆 집은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용한다. 여기는 다 쓰러져가는 낡은 공장이고 저기는 하늘 높이 치솟은 마천루이다. 골목 하나를 경계로 이곳은 주거공간이고 저곳은 상업공간, 반대편은 업무공간이다. 이 공간, 여기 담벼락 하나하나 성수스러운 특색이 있고 흘러왔던 시간이 담겨있다. 그래서 성수는 힙하다.
이곳이 언제까지 힙(Hip)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성수동을 좋아한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곳이 영원히 합(Hip)한 공간으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나는 사실 인스타그램 감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은 외부에서 봤을 때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실상은 그 화려함을 위해 발버둥 치는 오리 물갈퀴이다.
나는 진짜 힙함이란 가성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당장 남들에게 멋있어 보이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라 오늘보다 내일을 더 잘 살기 위해 가성비 좋은 음식을 먹고, 가성비 좋은 옷을 입으면서도 남들에게 당당할 수 있는 모습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힙(Hip)이다.
그래서 성수의 힙함이 유지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바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임대료이다. 아직까지성수는 기존에 터를 잡고 있던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노력으로 가성비가 좋은 음식들이 주를 이루지만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한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려야만 할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의 방문이 줄면서 기존 상인들은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럼 그 빈자리는 다른 경쟁력 있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메우게 될 것이다. 성수에서만 볼 수 있었던 특색 있는 가게가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프랜차이즈 말이다. 그런 프랜차이즈들이 즐비한 거리라면 우리는 성수에 갈 이유가 없다.
이 현상을 젠틀리피케이션이라고 하더라. 이 보드게임 카페에 투자를 결정했을 때도 겁이 났다. 이 거리가 압구정 가로수길처럼 될까봐 겁이 났다. 아니 지금도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동네인데 땅값이 오르는 만큼 앞으로 임대료는 지금보다도 더 치솟는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고 팝업스토어 같은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성수의 랜드마크들이 있는데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보드게임카페를 한다는 것 또한 망설여진다. 보드게임 할 거면 집 근처 보드게임카페를 가면 되지 않겠는가.
잘 모르겠다. 걱정은 해봐야 소용이 없다. 당장 성수에는 유동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는 까봐야 알 것이다. 이 보드게임 카페는 2월 1일에 오픈예정인데 처음 한 두 달 정도의 경영실적에 내 희비가 갈릴 것 같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내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포기하면 그게 더 후회되니까 말이다. 온 우주의 행운이 나에게로 오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