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음"은 단순한 작음이 아니라, 시선을 붙들어 두는 힘이다.
제주 여행 중.
제주 현대 미술관에 들르다.
1평 미술관을 만나다.
가장 작은 공간이, 가장 큰 질문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
우리는 종종 크기를 통해 가치를 가늠한다.
크면 더 중요하고, 넓으면 더 풍부하며, 규모가 클수록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미술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웅장한 건물, 끝없이 이어지는 전시실,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동선.
그 안에 볼 것이 많고 좋은 전시가 있을 것이라 쉽게 판단한다.
얼마 전, 큰 전시장에서 있었던 고흐전, 샤갈전이 그랬고, 클림트전이 그랬다.
이 믿음은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에,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조차 없었다.
이 판단은 무의식 속에 학습된 "익숙한 감각"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집사람과 나)는 "멈춤과 쉼"의 주제로 제주에 머물고 있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경우 외에는 도서관, 성당, 미술관등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제주현대미술관을 방문했던 어느 날,
미술관에 대한 그 "익숙한 감각"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경험을 하였다.
본관의 전시를 감상한 뒤 건물 바깥을 따라 걷던 중,
"1평 미술관"이라는 표지를 보았다.
표지판은 즉각적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미술관이 1평이라니...."
그 단어의 조합은 마치 ‘사각형의 원’처럼, 쉽게 납득되지 않는 어색함을 품고 있었다.
실제로 마주한 공간은 더욱 어색했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설 수 있을 만큼의 크기.
안에는 작은 의자 한 개, 평면 디스플레이 한 대와 프로젝터가 직각으로 위치하여 전시물을 소개하고 있었다.
몇 걸음도 과분할 지경인, 말 그대로 한 평짜리 너무도 작은 공간이었다.
잠시 감각이 멈춰 섰다.
아주 짧은 순간,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미술관이 아니다."
이 판단은 공간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미술관은 커야 한다"는 전제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벽과 가까워지는 거리, 시선을 돌리면 한눈에 모든 것이 들어오는 구조.
그곳에서는 더 이상 "둘러본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마주한다"는 말이 더 자연스러웠다.
감상이 아니라 작가와 독대를 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메시지에 더욱 몰입을 하게 되고, 내 의식은 작가가 이끄는 방향으로 상상의 나래를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조그만 우주선 조종실에 앉아 작가의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인이 된 그런 기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큰 공간의 어느 유명한 작품 전시보다도 이 작은 공간의 전시물이 내 의식을 더 오래 붙잡고 있었다.
유명한 작품 전시회에서는 작품 사이를 이동하느라 바빴다.
다음 전시실, 다음 작품, 다음 해설로 시선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작품 앞에서 조용히 사유할 시간을 갖기에는 애당초 무리였다.
엄청난 수의 관객에 떠밀려 다니다가.... 감상이 값싸게 종료되고는 했다.
중간에 감상을 중단하고 전시장을 빠져나온 불행한 경우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공간이 작아서가 아니라, 시선이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작다"는 것은 단순한 작음이 아니라,
시선을 한 곳에 붙들어 두는 힘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 힘은 감상자의 상상을 자극하고, 한계 없는 무한의 세계로 이끄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공간적인 작음은 의식의 거대함을 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선입견은 이렇게 작동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보기 전에 이미 그에 대한 틀을 만들어 놓는다. 실제로 마주했을 때,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쉽게 의심하거나 배제해 버린다.
"이것은 미술관이 아니다"라는 생각 역시 그런 과정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 틀을 잠시 내려놓았다.
아주 작은 공간 안에서, 이전보다 더 또렷하게 "본다, 상상한다"는 감각을 경험했다.
어쩌면, 미술관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깊이 있게 시선을 붙잡아 두고 사유하게 만드는가?"이다.
"1평 미술관"은 하나의 역설을 보여주었다.
가장 작은 공간이 가장 큰 질문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PS: 1평 미술관 기획자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