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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Mar 07. 2024

영화 : 호우시절(好雨時節, 2009)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1.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     


얼마 전 중국 청두(成都)지역의 ‘두보초당(杜甫草堂)’과 ‘판다 연구기지(成都大熊猫繁育研究基地)’, 그리고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과 유비를 모신 ‘무후사(武候)’라는 사당을 찾았다.     


첫날 찾은 '두보초당'은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이백'과 쌍벽을 이루었던 '두보'가 4년간 기거하며 240편 이상의 詩를 탄생시킨 곳으로 유명하며 『호우시절(好雨時節)』(2009)이라는 영화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두부초당 (2024.01.20) by 정미숙


'호우시절(好雨時節)'이란 「춘야희우(春夜喜雨·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라는 글의 첫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로 해석되며 허진호 감독은 이 '비'를 의인화해 영화를 만들었다.    


두보의 시에 나오는 ‘좋은 비’는 ‘필요한 시점에서 알맞게 내려주는 비'다. 이 비를 의인화함으로써 과거의 연인이었던 두 사람의 만남도 좋은 비가 되기를 바라는 과정을 녹여낸다.


영화는 두보의 시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을 만큼 시를 좋아하는 여 주인공 ‘메이(고원원)’가 청도지역 두보초당에서 가이드로 일하면서, 유학시절을 함께 보낸 과거 詩를 사랑한 남자 주인공 동하(정우성)를 만나 애틋한 사랑을 엮어 가는 내용이다.  


오랜시절 떨어져 지낸 두 사람의 만남을 두보초당 정원의 아름다운 배경하에 각자 다른 삶에서 생활하다 기적적으로 우여곡절 끋에 사랑을 채워간다는 잔잔하고 따뜻한 로맨스 중국 합장 영화이다. 주인공 동하와 메이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내면 깊숙이 묻어두었던 두사람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2. '호우시절' 영화 줄거리   


영화는, 박동하(정우성) 헤어진 여자친구인 메이(고원원)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사람은 과거 유학시절의 추억과 지나간 또 하나의 아픈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첫 장면은 동하가 건설 중장비회사 팀장으로 중국으로 출장을 떠나는 비행기 안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비행기 안에서 동하는 들고있던 책갈피 속에서  청두지역 '판다기지'  빽빽한 대나무숲이 찍혀있는 한장의 엽서를 들어다본다.  클로즈업된 대나무 숲이 보이는 엽서 배경을 주시하며 빙그레 미소짓는 동하. 그곳엔 그만의 비밀스런 추억이라도 있는 걸까.  엽서를 보는 그의 미소에서 그리움의 대상이 있었음을 예견케 한다.

 

청두에 도착한 동하는 출장 첫날부터 ‘두보초당’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유학시절 친구 ‘메이(고원원)’ 보게 된다. 좋은 비처럼  때를 알고 나타난 그 시절 좋아했던 그녀. 서로의 마음에 각인된 채 각자의 생활끝에 만나게된 기적의 연인.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동하는 당시의 일들을 기억하며 자신이 메이를 좋아했었다고 고백한다.


출처 : 네이버(영화 컷)

  

끌림으로 희석된 어색함도 잠시, 동하는 메이에게 미국 유학시절 자전거를 가르쳐주었고 키스도 했었다는 기억을 전하며 재차 메이의 의중을 떠본다. 그리고 이를 부정하려 드는 메이에게 친구로부터 당시의 사진을 전송받아 그 시절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듯 보여준다.


하지만 동하의 고백에 반해 이를 수줍게 부정하려드는 메이의 태도. 무언가  어색해지는 간지러운 상황. 이렇게 동하의 진심에 소극적인 메이의 행동이 석연치 않은 상태로 영화는 흘러간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때 분명 동하는 자신이 타던 노란 자전거를 그녀에게 선물했었다. 동하는 그 자전거의 출처를 물었고 그 질문에  선뜻 팔았다고 대답하는 메이.  이렇게 이들의 대화는 엇갈린다.


이렇듯 동하의 접근을 슬쩍 차단하는 듯한 메이이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메이의 행동은 뭔가 석연치 않음이 느껴진다. 동하가 선물한 자전거에 대한 추억을 극구 부정하는 것은 어쩌면 자전거에 깃든 말할수 없는 사건이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것으로 메이에게는 자전거에 관한 이야기를 애써 숨겨야 한다는 심리적인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는 무언의 복선이 깔린 대목이기도 하다.
자전거에 대한 그녀의 복잡한 감정. 메이는 말한다. "동하,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봄이오니 꽃이 피는 걸까".


출처 : 네이버(영화 컷)


짧은 데이트가 끝나고 출장을 마치고 돌아갈 날이 되어 공항에 도착한 동하 앞으로 시집선물을 들고 찾아온 메이. 동하는 비행기 탑승시간이 되었음에도 마시고 있던 커피를 리필시켜가며 시간을 연장하고 메이곁에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그리고 저녁 술자리의 분위기가 시작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눈치없는 대명사'격인 지사장(김상호)의 합석으로 둘은 불편하기만 하다. 그는 이들 앞에서 '사랑에는 국경이 있다'라 말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게다가 스스로를 '나 그렇게 눈치 없지 않아요'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역시 눈치없는 행동을 보이는 그로 인해 지루한 술자리는 이어진다.


메이의 전화기에서는 진동벨이 계속 울려대고 밖으로 나간 메이앞으로 동하가 나타난다. 대나무가 보이는 밖에는 비가 내리고, 밖으로 나온 동하와 메이는 서로를 안고 키스를 나눈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을 누를 수 없었던 메이의 입에서 한마디 말이 힘없이 떨어진다. "동하 나 결혼 했어~~"  무너져 내리는 동하의 마음.  


그녀의 말에 동하는 실망감과 허탈감에 힘없이 주저않고 홀로 호텔에 들어온 동하는 마지막 밤을 술로 버텨낸다.     


다음 날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며 찾아온 메이. 그녀의 마지막 청으로 동하는 메이의 차에 올라 공항으로 향하고 도로 한복판에서 메이의 차는 사고를 일으킨다. 어쩌면 단순한 사고였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차문밖으로 나와 기절해 버리는 메이. 사고 순간 그녀의 뇌리에는 얼마전 대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된 잔해에서 환자를 이송하는 들것의 모습이 스친것이다.  


이렇게 병원으로 실려간 메이. 하지만 결혼을 했다던 그녀에게 보호자인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메이의 직장 상사에게 메이의 남편은 이미 1년 전 발생한 대지진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 교통사고 장면이야말로 이곳 지역의 교통체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메이를 통해 지진의 참상을 부각시킨 감독이 의도한 고도의 신(scene)이 아니었나란 생각이다.  

  

실제 2008년 5월 12일 중국 쓰촨성(四川省)엔 리히터 규모 8.0의 대 지진이 발생했었다. 당시 사망자만 최소 6만 9천명에 달하는 큰 지진이었고 허진호 감독은 이 실제의 사건을 들어 영화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컷)


지진 피해를 도울 수 있는 중장비란 기계, 그 회사의 팀장인 주인공 동하, 동하가 돌아간 후 남편을 추도하는 메이의 모습, 출장 초반에 보여준 무너진 잔해, 그간 이해할 수 없었던 메이의 행동. 결혼을 고백했던 마지막 날,  술자리에서 메이의 전화기 진동으로 계속 울렸던 것은 그날이 바로 죽은 남편의 기일로 같이 참석하자는시어머니의 연락이었다. 남편의 존재에 대한 사실을 말해버린 메이는 비 속을 달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영정사진 앞에서 향을 피운다.


이렇듯 작품은 단순하고 가벼운 기존의 풋내기 로맨스 영화와는 차별되는,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진 남녀의 사랑이란 점에서 어른 동화를 보는 듯 예쁘고 가슴시리게 잔잔히 펼쳐진다.


출장을 마친 동하는 떠나가고 시간이 흘러 그로부터 엽서 한 장이 도착한다.      


“- 메이에게- 

답장이 늦어서 미안해. 서울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아마 청두에 내리던 비가 여기로 건너온 거겠지.

 곧 다시 만나길 바랄게. 그리고 보고 싶어. -동하가-     


메이는 동하가 보내온 노란 자전거 속 엽서을 펼쳐본다. 잘 조립한 노란 자전거.

첫 폐달의 뒤뚱거림도 잠시. 메이는 시원한 초당 정원 내부의 신선한 바람을 마시며 자전거 폐달을 밟아간다. 몸으로 익힌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법.  사랑도 자전거 타는 법도 마찬가지.  


영화 초반에 동하가 준 노란 자전거를 팔아버렸다고 말했던 메이였다. 하지만 이 자전거는 메이에게도 소중했다. 하지만 그곳 지진은 남편까지 앗아갈 정도의  큰 사건이었던 만큼 자전거 또한 지진으로 인해 폐허의 잔해에 묻혀버리진 않았을까라는 추측이다.


남편도 자전거의 추억도 입밖으로 꺼내기 힘겨웠을 메이의 상황에 동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때를 알고 내려주는 좋은 비'처럼, 때를 알고 쏟아주는 동하의 사랑이야말로 메이에게  단비같은 위로는 아니었을까.


힘껏 폐달을 밟아가며 환한 미소를 짓는 메이의 모습으로 그들의 사랑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들이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내렸던 비. 유학시절 첫 만남을 시작으로 두보초당에서의 재회를 거쳐 사랑의 결실로 이어지는 이들의 인연. 이들의 만남은 과거 추억과 함께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가 되어 결실을 향해 청두의 멋진 배경 속으로 화면은 사라진다.     



3. 감상평 -두보의 詩와 영화


영화는 두보의 시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을 만큼 시를 좋아하는 여 주인공 ‘메이(고원원)’가 청도지역 두보초당에서 가이드로 일하면서, 유학시절을 함께 보낸 과거 시를 사랑한 남자 주인공 동하(정우성)를 만나 애틋한 사랑을 엮어 가는 내용이다.   


작품은 대지진으로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진 메이에게 동하의 출현이야말로 단비 같은, 때를 알고 찾아온 고마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허진호 감독은 1년 전 대지진이라는 실제상황을 떠올리며 두보의 시를 통해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지진으로 인한 그곳의 처참했던 실태. 그리고 이들의 만남 속 가려진 아픔의 존재를 들추며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한국인과 중국인의 만남이란 점에서도 특별하다. 때문에 이들이 주고받는 언어가 대부분 영어로 소통되고 간간이 중국어가 섞여있다는 점에서도 한.중 합작영화의 독특한 묘미를 선사한.  


판다기지 (2024.01.21) by 정미숙 - 비가 오는 관계로 엉덩이만 보이고 누워있는 판다


출장길에서 우연히 다시만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가는 아픔과 성숙한 남녀의 연애이야기. 특별하지 않은 듯 야릇한 특별한 영화. 잔잔한 수면속의 격정적인 파도처럼 평면적인 듯 풍요로움이 돋보이는 영화.


유명세만큼이나 그곳의 1월은 포근했고, 겨울날씨임에도 두보가 좋아했다던 붉은 복숭아와 매화꽃이 광대한 정원을 수놓았던 아름다운 장소.


두보가 말년에 시를 짓고 살았다던 이곳. 자연이 삶이고 삶이 자연이었을 두보에게 이곳 경관이야말로 시가 읊어지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자연이 어우러진 그곳 ‘초당’에서 저절로 시상에 젖어 있었을 두보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나에게  영화 ‘호우시절’ 배경인 그곳 청두지역은 장면 장면마다 하나 하나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춘야희우(春夜喜雨)>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 좋은 비는 때를 알아서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 올해도 어김없이 오누나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 야밤에 바람과 함께 오가면서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 소리도 없이 슬그머니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 구름 덮인 들길은 칠흑처럼 까만데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 외로운 강 나룻배 등불 하나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 새벽하늘 불그스레한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 금관성에 꽃이 활짝 피었네.     


출처 : 시니어每日(http://www.senior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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